차마역이 있는 리장 골목길

2017. 2. 21. 09:00중국 여행기/윈난성 여행 2016

사통팔달의 리장의 골목길은 정말 복잡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지요.

그 많은 수로를 따라 꽃문양이 있는 오화석으로 바닥을 깐 아름다운 골목길이 있는 리장입니다.

수로를 따라 꽃을 가꾸어 물과 꽃이 늘 지천이기에 더 아름다운 길이죠.

여러분은 이런 게 많은 리장의 골목길 중 어디가 기억에 남습니까?

 

돌아오는 길에 꾸청의 다른 길을 따라 통과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대석교(大石橋) 부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좁고 짧은 다리 위에는 늘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지요.

 

아침 무렵에는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아침대로 한가하고 아름답고...

저녁에는 주변에 불을 밝혀 더 화려하고...

 

다리 모습도 보기 좋지만, 다리 위나 그곳에서 수로를 바라보면 수로 양쪽으로 버드나무와 많은 꽃을 심어

수로와 아주 조화롭게 보여 좋습니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지요?

이런 아름다움에 빠져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리장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지 싶습니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가까이 다가서서 바라보아도 아름다운 곳.

바로 대석교 부근이 아닌가 확신합니다.

佳人 개인적으로 리장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옛날 험준한 차마고도를 넘고 건너 마방들이 모처럼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중간 역참인 마을.

위의 사진에 보이는 차마역(茶馬驛)이 있었던 곳.

마방이 다녔던 차마고도에는 수많은 차마역이 있었겠지만, 그중 가장 큰 곳이 리장이 아니었던가요?

그 옛날 차마역을 표기했던 석비가 아직도 대석교 부근에는 남아있습니다.

그냥 보면 돌에다 새긴 글자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리장 고성 골목길을 걷다 보면 앞사람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걷게 되는데

잠시 고개를 아래로 내려다보면 바로 이런 석비를 찾을 수 있습니다.

비록 작고 볼품없는 표지석에 불과하지만, 이 표지석 하나가 과거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줍니다.

리장을 가신다면 차마역의 석비를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리장은 모계사회인 나시족의 자치주지요.

여자가 주인의 세상에서 그럼 남자는 무얼 하며 소일할까요?

나시족 남자의 삶이란...

 

리장은 여자가 가정의 중심이 되고 집안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지요.

나시족 여자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저 땅에 태어났다고 하지요.

그럼 남자는?

 

삼신 할머니에게 엉덩이가 퍼렇게 되도록 얻어맞으며 태어나는 것이 제일 처음의 일이었고.

두 번째로는 여자의 부름을 받아 장가드는 일이 아닐까요?

물론, 그런 부름도 받지 못해 그냥 살아가는 남자도 아직 많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는 인류의 무한한 번영을 위해 자손을 생산하는 거룩한 일을 하지만,

그러나 자식에 대한 부양의 의무는 전혀 없다고 하지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며 사내란 화초를 키우거나 새도 기르는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는 일을 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무릎에 힘이 빠지면 유효기간이 임박해짐을 자각하게 되고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양지바른 담장 아래 사내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배 피우는 일이 전부일까요?

설마 나시족 남자의 삶이 이렇지는 않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나 리장으로 돌아갈래~~~

 

차가운 개울을 건너기 싫어하는 남편을 치마를 걷어가며 업고 강물을 건네주는 강한 나시족 여인들.

우스갯소리로 등짐을 지고 가던 나시족 여인의 등 바구니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자

뒤를 따르던 사람이 등 바구니에 불이 났다고 일러주니 나시족 여인이 뒤를 돌아보고 빙그레 미소 지으며

"우리 서방이 등 바구니 안에 있구먼요~~"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비록 우스갯소리지만 그 속에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강인한 나시족 여인이라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그녀들의 옷인 피성대월에서도 우리는 나시족 여인들의 억척같은 삶을 보았습니다.

만약, 이 말이 어느 정도 만이라도 맞는다면 정말 난 리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우리 흔히 리장이라고 하면 꾸청만 생각하는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나시족 상형문자 동파문도 있다고 하지요.

이들의 고유문화나 음악 등 나시족만의 독특한 면도 많다고 합니다.

동파(東巴)란 나시 언어로 "지혜로운 사람" 또는 "큰 스승"이라는 말로 이 말은 함축적으로 

나시족의 종교, 동파문, 제사 행위, 그리고 우리 한지와 같은 종이 등의 복합적인 의미라고 하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현존하는 유일한 상형문자가 나시족의 동파문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이곳에서만 하는 말로 얼마 전 구이저우 성 여행을 할 때 수이족(水族) 마을의 우연하게 들렀습니다.

그곳에도 이와 비슷한 수이족만의 상형문자인 수이서(水书)가 있었고 문자 박물관까지 보았습니다.

그러니 유일하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까요?

아니면 수이족 글자는 글자가 아니라 그냥 그림일까요?

 

중국의 한자란 어느 누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지역마다 서로 조금씩 다른 상형문자를 사용하다 보니

이런 글자의 공통점이 자연발생적으로 지금의 한자가 되었으며 한자는 사실 어렵고 사용하기 불편해

일부 계급층에만 사용했고 예전에는 글 모르는 많은 사람이 시장통에서 설서인이라는 사람이 읽어주는

삼국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80% 이상의 중국인이 자기나라 글도 모른 체 살았지요.

오죽했으면 루쉰이 한자가 없어지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망한다'(漢字不滅 中國必亡)라고 주창했고

이미 남북조시대부터 간체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1964년 중국 정부는 간체자를 공식 공포하기에 이르렀을까요?

중국은 그들 스스로도 한자에 대한 불편함과 근대화의 걸림돌로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세상 최고의 글자는 한글뿐임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