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밴의 중간 역참, 아이트 벤 하도우

2024. 5. 20. 03:50모로코 여행기 2024

 

아이트 벤 하도우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입장료는 없습니다.

만약, 중국 같으면 마을 근처까지 오지 못하도록 하고 먼 곳에 입구를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그곳에서 버스를 이용해 여기까지 실어 날랐을 겁니다.

 

 

물론, 버스비까지 입장료와는 별도로 받고요.

이 마을 주민의 주수입은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주민이 오래전부터 사용했던

전통적인 생활용품에서 그림 등을 팔아 버는 게 전부인 듯합니다.

 

 

물론, 여행객을 상대로 숙박업을 하는 곳도 보이고

음식점도 보이기는 합니다만.

이용하는 여행객은 거의 없는 듯 보이네요.

 

 

그러나 예전의 이곳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온 캐러밴이 험하디 험한

4.000m 높이의 높은 아틀라스 산맥의 설산을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재충전을 위해 머물다 가야 할 곳이지요.

 

 

아이트 벤 하도우는 지도를 통해 보면 모로코의 중앙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따라서 마라케시나 에사우이라와 같은 대도시를 가기 위해 아틀라스 산맥을

가로질러 동서 간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곳을 거쳐가야만 하는 곳이지요.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그 옛날 장사 다니던 캐러밴이 머물다 가는 중요한 중간 역참 중

한 곳으로 더군다나 당시 이곳에서 약 50여 km 떨어진 소금광산(Ancient Salt Mine of

Télouet)을 오가기 위해서는 아이트 벤 하도우를 반드시 거쳐가야만 하는 길목인 셈이지요.

 

 

옛날에 소금만큼 소중한 교역품은 없잖아요.

소금 교역은 대체로 국가가 직접 경영했던 소중한 상품 중 하나였고요.

오죽하면 조조도 소금과 철광석은 개인거래를 하지 못하게 염철관영을 선언했을까요.

 

 

이렇게 이곳은 중동지역에서 사하라 사막을 건너온 캐러밴이 머물고 갔던

중간 역참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이 지역의 특산물을 운송했던 중간 마을이지요.

그때는 오히려 지금보다 살기에는 더 좋았을 듯합니다.

 

 

사막을 건너다니는 캐러밴은 늘 위험이 따랐으나 이들은 그 위험에

목숨을 걸고 정면으로 도전하며 사막을 건너 다녔을 겁니다.

그럼 위험이 큰만큼 이들에게 돌아오는 소득은 짭짤했을 듯합니다.

그런 소득이 이곳을 지나며 이 마을의 번성을 이끌었지 싶습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은 아이트 벤 하도우 골목길을 걷다가 열린 창문 사이로 보이는

당시 캐러밴의 모습인데 황토흙으로 만들어 상품으로 팔고 있는 낙타입니다.

뛰어나지는 않은 상품이지만, 이 마을에서는 오래전에 보았던 그런 풍경이지 싶습니다.

 

 

캐러밴은 모로코 서부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사람과 중동지역에

사는 사람과의 교역을 하며 사하라 사막을 건너왔던 상인들이 낙타를 이용해

다녔던 길 도중에 있는 마을입니다.

 

 

그렇기에 캐러밴을 상대로 숙소도 제공하며 음식도 대접하여

돈을 벌었던 마을이었답니다.

또 이곳에서 양 지역의 물건을 구비해 두어 중간 교역도 했을 듯합니다.

 

 

이렇게 수천 년을 이곳에서 대를 이어 살다 보니 변한 게 전혀 없이

가옥의 형태가 예전 방식 그대로 짓고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이런 마을이기에 오히려 여행자에게 좋은 여행지가 되지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이곳에 베르베르인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는데 그 옛날에는 이 마을을 지나는 캐러밴을 상대로

숙소를 제공하고 음식을 파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을 듯합니다.

 

 

그런 곳에는 마을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지 않았을까요?

동양에서는 역참이라고 하여 제법 흥청거렸던 곳이 이런 곳이지요.

이동하는 캐러밴은 물론, 이곳에 좌판을 펼치고 중계교역도 했을 것이고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여기는 사하라 사막을 건너온 캐러밴이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대서양 연안의 큰 도시로

가기 위해 중간에 반드시 머물러야 할 지리적인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마을입니다.

아틀라스 산맥을 동서로 오가던 캐러밴은 물론, 이 지역에서 채굴했던 암염의

이동로로 중요한 길목이었기에 많은 대상이나 낙타가 머물렀다 가는 곳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