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2. 03:30ㆍ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발길 머물렀던 곳
삼국지에 등장했던 촉한의 무덤을 보실까요?
위의 무덤은 성도에 있는 유비의 무덤인 혜릉입니다.
왕릉이라서 역시 큽니다.
워낙 크고 사진 찍을 공간이 부족하기에 전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습니다.
무덤의 둘레가 80여 m에 높이가 10여 m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넘버 쓰리였던 관우의 무덤보다는 작습니다.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한다고 무리하게 출정했다가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릉의 호아산에서
젊은 애송이라고 깔보았던 오나라 샛별 육손의 화공에 병사 대부분을 잃고 백제성으로 도피해
그곳에서 화병으로 죽었다는데 무덤은 촉한의 본진이었던 지금의 청두로 돌아왔지요.
유비는 분노라는 무기를 앞세워 자신과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번에 보시는 무덤은 관우의 무덤입니다.
높이가 10m이며 너비가 250m인 관우의 무덤은 묘가 아니라 거대한 산처럼 보입니다.
머리만 묻혔는데 마치 과대 포장한 과자 봉지처럼 부풀린 모습이네요.
무덤조차 관우는 주군이나 공명의 무덤에 비해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관우는 마지막 전투에서 목이 잘려 죽으며 몸과 머리가 분리되어 머리만 이곳에
낙양에 있던 조조에게 보내지는 바람에 조조는 관우를 왕의 예를 갖추어
향나무로 몸을 만들어 이곳에 묻었다고 하지요.
그래서 관우의 무덤은 머리만 이곳 낙양의 관제묘에 묻혀있습니다.
이번에 보이는 묘는 장비의 무덤으로 성질 더러운 성격 때문에 무리수를 두다가
수하인 장강과 범달에 의해 자다가 목이 잘리며 관우와 마찬가지로 분리되어 몸만
여기에 묻혔는데 장수는 싸움터에서 죽어야지 왜 침대에서 죽습니까?
장비가 무슨 카사노바입니까?
일부당관만부막적(一夫當關 萬夫莫敵)이라고 했던 장비의 무덤은 랑중이라는 지역에 있는데
그곳에는 환장후사라는 거대한 사당을 짓고 무덤을 만들어 두었더라고요.
관우와는 반대로 장비는 머리는 사라지고 몸만 이곳 랑중에 묻혔습니다.
이렇게 도원결의를 했던 유, 관, 장 세 사람의 무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One more thing, 보너스로 한 사람의 무덤을 도 소개합니다.
제일 초라하게 보이는 무덤은 봉추라는 방통의 묘입니다.
이카로스의 꿈처럼 사라질까 봐 어린 봉황이라는 봉추 방통의 무덤은
돌로 둘러싸고 솥뚜껑 같은 모습으로 봉분을 덮어버렸습니다.
못 생겨서 죄송했다는 어린 봉황은 꿈도 펴지 못한 채 백마관 언덕 위에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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