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7. 03:00ㆍ모로코 여행기 2024
볼루빌리스는 지진의 영향 등으로 워낙 훼손이 심한 곳이지만,
그런대로 마음에 남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오늘 볼루빌리스를 떠나며 들었던 생각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이곳 유적 안에 있는 건축물 중 가장 온전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물은
바로 위의 사진 속에 보이는 개선문이지요.
로마에 있는 개선문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화려한 모습입니다.
사실 로마 콜로세움 옆에 있는 개선문은 다른 곳의 석재들을 주워 모아 재활용하여
만든 것이지만, 이곳 개선문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네요.
명칭은 승리의 개선문(Triumpfbogen)이라고 적혀있는데 로마 시대의 황제 카라칼라 시대에
만들었다고 하니 분명 카라칼라 개선문( Arch of Caracalla :Triumphal Arch)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원래 로마의 황제들은 어디 원정을 다녀오면 까이꺼 인생 뭐 있어!라고 하며
기념식수 하듯이 이런 개선문 하나 정도는 만드는 게 미덕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죠.
구글 지도에서는 Site Archéologique de Volubilis를 검색하시면 쉽게 접근할 수 있겠네요.
현재까지 발굴된 주요 유적지를 구글지도로 찾아보았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나머지도 더는 발굴하기도 쉽지 않지 싶습니다.
대체로 이름을 붙인 것은 유적에서 발굴된 모자이크나 형태를 볼 때 유추한 이름이랍니다.
모로코에서 만날 수 있는 볼루빌리스 귀중한 로마 유적지입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도 일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하네요.
로마가 이곳까지 진출해 그들의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 대단히 놀랍네요.
그러니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지요.
기원전 3세기경부터 건립되기 시작해 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로마 정착지가 존재했던 대규모 고고학 유적지로 이곳을 방문한다는 의미는
지금 우리는 2천 년을 뛰어넘어 시간여행을 하는 중입니다.
볼루빌리스는 모로코의 고고학 유적지로 메크네스페스로 가는 길에 방문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설립되었으며, 서기 1세기부터 로마의 지배하에 성장했습니다.
이 지역은 약 700년 동안 이곳을 점령한 지역 주민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결국 서기 11세기에 버려졌습니다.
18세기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모로코 통치자들이 메크네스에 왕궁을 짓기 위해
이곳의 석재를 가져가며 지금처럼 더 황폐화된 유적으로 변했습니다.
그 후 지각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하며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모로코의 다른 관광지에 비해 이곳은 매우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장엄하고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약간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 풍경과 아주 잘
어울리는 곳으로 주변으로는 무너져버린 유적이 들꽃과 어우러져 시간여행을 알려줍니다.
입장료는 70 디르함으로 우리 돈 약 10.000원 내외이나 유적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들러야 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를 가지고 왔다면 주차비가 별도로 20 디르함입니다.
바닥 모자이크, 집 벽, 입구 및 집 사이의 도로가 보존되었습니다.
특히 모자이크는 로마시대에 가장 널리 사용되었던 장식으로 이곳에는 대단히 많은
바닥 모자이크를 구경할 수 있더라고요.
100년 전 지진으로 인해 많이 무너져 버렸다고 하는데 글레디에이터라는 영화에서 본
로마시대를 떠올리며 조용히 걸어 보며 당시를 상상하기에도 아주 좋은 곳입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시공을 초월해 당시로 돌아갈 수 있어 좋습니다.
볼루빌리스 유적지 한쪽 구석에 그냥 방치되어 수줍은 듯 숨어있는 재미있는 돌조각입니다.
무엇일까 고민하지는마세요.
여러분이 상상한 바로 그것이 맞습니다.
너무 사실적으로 예술성 높게 제대로 잘 만든 작품이기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습니다.
이런 조각은 특히 로마제국의 살아있는 유적인 폼페이를 다니다 보면 쉽게 볼 수 있지요.
폼페이에는 집을 알리는 문패의 역할도 하고 골목입구에 만들어 놓아 골목길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하며 누구는 유곽을 알리는 사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그런데 유곽과는 연관이 없는 곳에도 있고 집안을 장식했던 그림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폼페이 전부가 유곽은 아닐진대...
그러나 사실은 당시 로마의 시대상으로는 남성의 상징은 풍요와 악귀를 쫓는
부적과도 같은 것이었다네요.
폼페이에 유난히 많이 발굴된 남자의 상징은 바로 프리아푸스(Priapus)를 섬기는
그런 행위이기 때문이고 프리아푸스(Priapus)는 악귀를 쫓아낼 뿐 아니라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입니다.
당시에는 인구가 바로 국력의 척도이기에 다산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위의 사진은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 중인 프리아푸스 신의 석상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렇게 융성했던 볼루빌리스도 서기 285년 무렵 주변 지역 부족들에게 함락되고
이후 로마가 다시는 이 도시를 회복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는 지리적으로 로마제국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겠지요.
11세기에는 권력 소재지가 페스로 이전하면서 급속히 황폐화하고 도시 거주민 중
상당수는 이곳에서 약 5km 떨어진 물레이 이드리스 제르훈(Moulay Idriss Zerhoun)이라는
새로운 마을로 옮겨가며 이제는 흔적조차 별로 없는 그런 폐허상태의 유적으로 남아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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