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다의 옛이름은 아우구스타 에메리타랍니다.

2015. 8. 6. 08:00스페인 여행기 2014/메리다

메리다는 로마의 상징인 맑은 물 공수작전의 대표선수인 로마 수도교가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있는데 이 말은 메리다에 거주했던 주민이 무척 많았다는 말이잖아요?

그리고 바로 옆을 흐르는 강물을 식수로 이용하지 않고 메리다에서 수 km 떨어진 곳에

댐을 만들고 그 댐에 저장했던 깨끗한 물만 사용했다는데 그 댐이 아직도 이 도시의

상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이미 우리는 여행 초반에 세고비아에 들러 그 웅대한 로마 수도교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처음 만든 것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보기 좋았으나 이곳 메리다는

위의 사진처럼 형태만 남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늦은 밤 다행스럽게도 수도교를 찾아 형태나마 구경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메리다의 푸엔테 로마노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로마가 건설했던 다리 중 가장 긴 다리라고 합니다.

그 길이가 무료 762m에 달한다 하니...

다리를 건너오며 정말 길다고 느꼈네요.

제일 긴 다리였기에 그만큼 공사도 제일 힘든 곳이었을 겁니다.

 

메리다는 1993년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적이

도시 전체에 골고루 퍼져있습니다.

아마 이 정도의 로마 유적이 있는 도시는 로마를 제외하고는 그리 쉽게 찾을 수 없지 싶네요.

시내로 들어가며 첫 만남부터가 유적으로 시작해 계속 유적 사이로 걸어야 합니다.

많은 건물 아래로 당시의 유적이 보존되는 곳도 많았습니다.

 

아치형으로 만든 다리 교각 부분을 보면 교각 안에 또다시 작은 아치를 만들어 홍수가 났을 때 

물이 그곳 아치로도 빠져나감으로 교각이 받는 물의 압력을 조금 덜 수 있어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교각 사이의 간격도 4m 간격으로 일정하게 교각을 만들었다 합니다.

 

교각 숫자는 모두 60개라 합니다.

로마 다리는 무식하게 돌로 쌓아 만든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과학이 숨어있습니다.

2천 년을 버틴다는 게 과학의 힘이 아니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푸엔테 로마노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무어인이 세운 알카사바가 있습니다.

그 앞에는 메리다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가 있고 입구에 조형물이 하나 우뚝 서 있습니다.

아주 통통한 젖가슴을 가진 늑대입니다.

 

이 조각물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로마입니다.

로마 건국 설화에 나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형제를 표현한 것이지 싶습니다.

저 어린아이가 바로 로물루스와 레무스일 겁니다.

누가 로씨고 누가 레씨인지 알아보라고는 하지 않으시겠죠?

 

헉! 고추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사내아이가 분명합니다.

로마는 이렇게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기에 주변 여러 나라를 빼앗는 횡포를 저질렀나 봅니다.

늑대는 왜 자기 자식을 버리고 인간에게 젖을 먹였을까요?

평범한 늑대라면 젖을 물리기보다 따뜻할 때?

 

그런데 왜 스페인에서는 피지배자로서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고 안방에

저런 로마를 찬양하는 작품을 전시했을까요?

물론, 佳人의 어리석은 생각이겠지만...

이들의 생각을 우리의 잣대로 마름질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말인가요?

 

그런데 왜 이런 조형물을 여기에 만들었을까요?

중국의 치우와 사생결단 하여 그의 목을 쳤다는 황제를 우리나라에 조형물로 만드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때가 그리워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싶어 그럴까요?

불편한 진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다만, 우리 민족과는 다른 낙천적인 성격 탓일까요?

로마란 유럽인에게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해서일 듯합니다.

 

아니면 국민 모두 그때를 잊어버린 집단 치매 증상이 있어 그럴까요?

이런 일을 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일어나는 문화를 우리의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일은

우매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여행이란 묻고 따지고 다니는 게 아니라 그들 속으로 들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참 여행자라고 했나요?

 

조형물 아래 쓰여있는 글을 잠시 보고 갑니다.

스페인어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눈이 있어 보는 것은 어렵지 않잖아요?

이 말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메리다라는 도시의 옛 이름은 아우구스타 에메리타에서 온 말이고

메리다는 로마의 도시 중 한 곳이다.

 

그러니 아우구스타 에메리타가 지금의 메리다가 되었다는 말이지 싶습니다.

이제 이 도시 이름의 어원이 밝혀진 것인가요?

아우구스타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그가 여기에 도시를 건설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기원전 25년 경이라 하네요.

처음 목적은 로마에 헌신했던 퇴역 군인들을 위한 도시로 건설했으니 이 도시의 위치가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에 있잖아요.

목적은 퇴역병을 위해 건설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철광석을 로마로 가져가기 위해 중간에

약탈 방어를 위한 아주 중요한 거점도시를 만들었고 이런 목적에는 민간인보다는

퇴역병이 유리하기에 이주시킨 것으로 생각되네요.

 

죽을 때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다 죽으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때 이 도시에 이주한 퇴역병은 주로 5군단 알라우디와 10군단 제미나의 퇴역병이 주축이

되었다 하니 이제 이 도시가 만들어진 과거를 대충 알겠습니다.

로마는 이렇게 그들의 병사를 늙어 죽을 때까지 최대한 활용했다는 말이 아닌가요?

 

이번에 석판 하나가 보이는데 사자의 얼굴을 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왼쪽에 ANA B B라고 적혀있습니다.

BB크림 선전일까요?

아니면 ANA 항공사 선전일까요.

 

여기에는 메리다를 감싸고 흐르는 과디아나 강의 이야기가 숨어있습니다.

이 석판은 3세기에 만든 것이라 합니다.

과디아나(Guadiana)라는 말은 두 민족의 언어 과디와 아나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로

강이라는 말이라네요.

 

ANA라는 단어는 제일 먼저 이 지역에서 살아왔던 원주민인 고대 켈트 이베리아 사람의 말에서

온 말로 로마가 그 말을 존중하여 그대로 사용했고 그 후 이 도시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모슬렘이 그 앞에 접두사 GUAD를 더해 지금의 과디아나 강이 되었다네요.

 

이 강은 스페인 중부 쿠엥가(이번 우리 부부의 마지막 여행지였음)에서 발원해 비가 적게 내리는

라만차 지방을 지나 에스트레마두라를 거쳐 대서양을 흘러드는 778km의 긴 강이지만

워낙 건조한 지역을 지나다 보니 수량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 강은 우리가 지나왔던 바다호스에서 물길이 급격히 남쪽으로 꺾어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국경을 이루는 강으로 유명하지요.

 

이곳에 큰 도시를 세운 목적은 지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길목에 있기 때문이겠죠.

따라서 메리다는 이 지역 에스트레마두라의 중심 도시로 발전했지 싶네요.

그런데 그 말은 다른 민족도 눈독을 들인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러다 보니 로마 이후에 게르만의 침략을 두 번이나 당하고 이어서 서고트족이 서진하며

이 지역을 침공해 한동안 여기에 도읍으로 삼았다고 하네요.

그다음 번호표를 뽑고 호시탐탐 기다리던 이슬람의 무어인이 또 밀고 올라옵니다.

 

결국, 1230년 알폰소 9세가 메리다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해 스페인의 영토가 되었다네요.

물론, 그 후 이웃에 있는 포르투갈과의 전쟁을 통해 다시 이 도시는 전화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유적은 그리 손상되지 않아 우리 같은 여행자가 찾아오지 않나 생각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유적이 많은 여행지를 방문하면 그 도시의 내력부터 시작해 유적의 의미나 역사 또한 알아야

구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돌아본다면 여행의 의미가 반감되잖아요.

유적이 있는 곳을 방문하는 일은 특이한 자연의 모습을 돌아보는 여행과는 다릅니다.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냥 이동하기 위한 루트를 따라 여행하는 佳人은

참 여행자가 아닌가 봅니다.

국자가 국 속에 들어간다고 해도 국자가 어찌 국 맛을 알겠어요? 그쵸?

여행처럼 쉬운 일도 없지만, 여행처럼 어려운 일도 없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