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엔테 로마노를 걸어서 메리다로

2015. 8. 4. 08:00스페인 여행기 2014/메리다

오랜 역사의 도시인 메리다라는 정적인 환경에서 위의 사진은 아주 역동적인 모습 아닙니까?

혼자 생각이라고요?

위의 사진은 메리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구시가지로 들어가려고 푸엔테 로마노라는

로마 시대에 만든 다리를 지나다가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정을 즐기는 사람이

지나가길래 무심코 찍은 사진입니다.

유적 박물관이라는 메리다와는 관련이 전혀 없는 사진이지만...

 

이 강은 과디아나 강이라고 이미 우리는 바다호스를 지날 때 그 강을 건너 다녔죠.

여기 메리다가 바다호스보다는 상류로 강의 흐름이 마치 호수처럼 정지하고 있는 듯

평화롭고 한가해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이 도시가 겪었던 세상의 풍랑을 모두 가슴속 깊이 안고 있는 듯 말입니다.

그러나 저 멀리 나타난 세 명의 사내가 배를 저어 파문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다리 밑으로 통과하더군요.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강이 잠시 일렁이며 흔들렸지만, 이내 조용해지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다시 조금 전 평화로운 모습으로 돌아가더군요.

로만 브리지 위에 잠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며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이 다리는 로마 시대에 만든 다리로 당시 철광석을 로마로 실어가기 위해 만든

수송로인 은의 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 싶습니다.

그런 철광석으로 로마는 무기를 만들었을 것이며 그 무기를 이용해 이베리아 반도를

다스렸을 것이고 또 다른 나라를 침략해 영토 넓히기에 골몰했지 싶네요.

 

강은 그때 그 모습이겠지만, 세월이 흘러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잠시 세상에 태어나 흘러가는 물처럼 잠시 흔들거렸다가

그렇게 살다가 사라지나 봅니다.

살아가며 찰나 적으로 물결이 일었지만, 지나고 나니 흔적조차 없잖아요.

 

여행자 佳人은 로만 부리지 위에서 혼자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봅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던지듯 佳人의 마음을 흔들어 버립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지나온 삶도 반추해 보고 또 앞으로 살아갈 일도 계획해 보지만,

모두가 다 부질없는 생각이네요.

지금 여기는 바람마저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열린 문틈 사이로 세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는

짧은 순간이라 했습니까?

여기 다리 위에서 바라보니 다리 밑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 척의 보트를 젓는

싱글 스컬 선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세 마리 말이 끄는 마차의 모습을 보기 쉽지 않기에...

정말 촌음을 아껴 쓰며 살아야겠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같은 나이 든 사람은 더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지금 우리는 2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런 세상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걷습니다.

푸엔테 로마노는 그런 세상으로 들어가는 블랙홀인가요?

이곳에는 로마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집터와 석관이며 많은 부장품이 발견된 터가 있기에

그곳도 어슬렁거리며 죽은 자와 교감도 하며 다녀야겠어요.

 

다리가 끝나는 곳에는 또 다른 세상이었던 무어인이 세운 알카사바가 있습니다.

정말 무어인은 이곳에도 뿌리를 내리고 싶어 가는 곳마다 이렇게 튼튼한 시타델을 지어 놓았습니다.

굴러온 돌이랄까 봐 돌에 뿌리를 내리고 박힌 돌 흉내를 내면서 말입니다.

 

2천 년 전의 로마 그리고 천 년 전의 이슬람...

그리고 다시 현재의 에스파냐로 佳人은 발걸음을 옮깁니다.

앞으로 천 년 후에는 또 어떤 세상이 이곳을 지배할까요?

 

여행은 우리에게 시공을 초월해 이동하는 능력을 줍니다.

다만, 우리는 그런 시간 속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여기 메리다는 2천 년을 넘나드는 그런 여행이라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메리다로 접근하는 방법은 우리 부부처럼 천천히 주변 마을도 구경하며 접근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접근하는 방법이 가장 쉬울 것 같습니다.

기차로는 마드리드 아토차 역에서 하루 4-5편의 기차가 운행하며 4시간 20분-7시간이 걸립니다.

 

버스는 하루 8-9편이 운행되며 4시간이 조금 더 걸린답니다.

또 안달루시아 지방인 세비야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방법은 교통편이 많지 않아 평일은 7편 정도이고 토요일이나 공휴일은 네 편밖에 없습니다.

2시간 반 이상이 걸리네요.

그런데 이 방법은 중간에 한 번 버스를 바꿔 타기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국경을 넘어 동쪽으로 달려 도착했습니다.

메리다는 인구 약 5만 3천 명의 작은 도시이네요.

작다는 말은 우리의 생각이지 스페인에서는 제법 큰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적이 있어 이미 2천 년이 넘는 그런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며

그런 유적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그때의 영화를 보여줍니다.

 

어제 이야기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시내로 들어가는 방법은 택시를 이용하면 간단합니다.

시내버스도 있겠지만, 촌놈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시내버스를 타겠어요?

이럴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네! 맞습니다.

제일 확실한 방법은 걷는 겁니다.

지도를 켜면 현재 우리 위치가 보입니다.

지금 표시된 곳이 버스 터미널로 우리가 예약한 숙소 베토니아의 위치가 나타나지요.

630번 루트는 바로 은의 길입니다.

메리다가 佳人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내 손바닥에 너 있다!!!

 

터미널에서 바로 넘어가는 큰 다리가 있고 630번 루트의 다리 사이에 자세하게 나타나지 않은

다리가 있는데 이게 바로 푸엔테 로마노라는 다리입니다.

이번에 저 멋진 오래된 다리를 건너 역사의 블랙홀로 빠져들어 가렵니다.

 

잠시 메리다의 위성 지도를 보고 공부 좀 하고 갑니다.

그래야 동선도 짜고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구경할 게 아니겠어요?

어때요?

이 작은 도시에 로마보다 더 많은 로마 유적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로마 유적의 백화점이지 소매점은 아니지 않나요?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1박만 하기로 하고 다음 예정지인 세비야 숙소를 검색해 예약까지 했으니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네요.

 

좌우지간 일단 갑시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뛰어다니며 최대한 봐야 하지 않겠어요?

함께 구경하실까요?

 

그런데 헐!

이미 석양은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시내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에 입석 하나가 서 있습니다.

이게 아마도 유적이라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변강쇠의 상징일까요.

요상스럽네...

썩 물렀거라!!!

 

로마 브리지라는 푸엔테 로마노 서쪽 입구의 모습입니다.

이런 유적 앞에 서면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왜?

옛날로 들어가는 그런 기분이 들기 때문이죠.

 

이게 2천 년이나 지난 다리라고요?

지금도 처음 목적대로 다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건축물이 아닌가요?

 

세상에 많은 유적이 있지만, 처음 목적대로 그대로 이용되는 유적은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래도록 사용 중이라는 말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유적이라는 말이고

제대로 튼튼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요즈음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건설현장의 부실공사가 왜 자꾸 생각납니까?

로마의 기술이 뛰어난 겁니까?

아니면 요즈음 기술이나 자재가 옛날만 못해 일어나는 사고일까요?

 

지금 이 다리에 탱크가 지나가도 끄떡없겠어요.

물론, 오래도록 보수에 보완을 거듭했지 싶습니다.

중간에는 다리로 올라오는 계단도 만들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했습니다.

 

다리 중간에는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반원형의 쉼터를 만들어 돌로 벤치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죽일 놈의 번뜩이는 재치를 어찌하면 좋겠어요?

다리는 건너 다니는 목적뿐 아니라 이렇게 인간에게 쉴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습니다.

2천 년 전에 말입니다.

 

다리가 끝날 무렵 마주치는 건물입니다.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알카사바라고 하지만, 다리와는 무관한 이슬람 무어족이

로마가 물러간 후 이 도시를 그냥 차지하고 통치하기 위한 왕궁이 있던 곳이지요.

다리 끝에 있다고 다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아까 입구에 서 있던 입석은

다리를 지키는 변강쇠의 거시기였답니까?

나 원 참!!!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공자께서 가라사대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 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 하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여기에 왔습니다.

짧은 두레박 줄로 깊은 우물의 물을 길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감히 佳人은 여행을 즐긴다고 헛소리나 하고 다닙니다.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