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실라 메디나를 지키는 성벽

2025. 3. 17. 04:00모로코 여행기 2024

 

대서양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아실라 해안가의 모습입니다.

메디나 안의 하얀 집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리고 메디나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벽의 모습이 조금은 허술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성벽은 15세기에 이곳을 경영했던 포르투갈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목적은 당시 대서양 연안에서 활동했던 해적의 침입으로부터

아실라 메디나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해안선을 따라 수 km에 걸쳐 쌓은 성벽은 아실라의 벽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성벽 앞으로 넓지는 않지만, 작은 비치도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즌이 아니기에 을씨년스럽기만 하더군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타워(Torre de San Francisco)입니다.

모로코 아실라에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타워는 이 도시의 역사적인 랜드마크 중 하나겠지요?

그러나 이곳에 서 있으면 이곳이 탑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바다에서 보았을 때는 탑의 모양이지만, 메디나에서 진입했을 때는

그냥 성벽 위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탑은 아실라의 오래된 성벽의 일부로,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을 텐데...

 

 

 

아실라는 15세기 포르투갈 점령 시기에 특히 많은 요새와 성벽이 건설되었다는데 

샌프란시스코 타워(Torre de San Francisco)도 그중 하나랍니다.

당시는 외침보다는 해적이 더 두려웠나 봅니다.

 

 

포르투갈이 이렇게 아실라를 지배했을 때 가장 두려운 존재는 페스를 중심으로

내륙지방에 살았던 무슬림 세력이 아니라 바다에서 활동 중인 해적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해적을 막기 위해 이렇게 바다를 향해 성벽을 쌓고 메디나를 보호했다고 하네요.

 

 

이때는 사실, 해적의 활동이 무척 왕성했을 때라고 하네요.

유명한 영국 제독인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경이라는 귀족의 칭호까지 받는 해적이 있었지요.

그는 16세기 해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특히 영국의 함대를 이끌고 당시 세계최강의

해군을 자랑하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깨뜨린 공로로 유명한 해적이지요.

 

 

그 때문에 유럽 무역의 중심이었던 지중해 시대를 끝장내고 대서양 시대를 연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했는데 그 이전에는 스페인도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지중해의 제해권을 두고

당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자랑하던 오스만 제국과의 사생결단에서 승리해 당시 오스만

제국이 틀어쥐었던 지중해의 갑질을 끝내고 국운이 업그레이드되는 행복한 해전이었지요.

 

 

현재 이 탑은 해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오직 관광객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곳이

되어버렸는데 지금은 바로 바다방향이 서쪽이기 때문에 대서양으로 떨어지는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전쟁만 없다면 세월이 세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말았습니다.

이 탑은 아실라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도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전망을 제공해 주는데

또한, 아실라의 예술적이고 보헤미안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겠지요?

 

 

이곳에도 메디나가 있어 모로코의 전통마을을 구경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돌아보니 옛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해안으로 침입하는 외침에 대비해 성벽이 있을 뿐...

그것도 웅장하거나 규모가 큰 게 아니라 아주 작은 지역만을 성벽을 쌓아 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지역은 온화한 기우로 인간이 살기 시작한 때가 기원전 1500여 년 전이라고 하니

사람의 흔적이 대단히 오래된 곳이랍니다.

 

 

이 말은 그만큼 인간이 터를 잡고 살아가기에는

대단히 좋은 조건을 지닌 곳이라는 의미겠지요.

해안을 끼고 있으니 당연히 무역 거점 마을이었을 것이 분명하고요.

 

 

이곳에서 서쪽으로 곧장 배를 타고 나가면 바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기 위한

많은 무역선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가기 위해 오르내리는

길목이 바로 이 앞바다였을 테니까요.

 

 

그야말로 목 좋은 곳이 아실라 앞바다가 분명합니다.

최종적으로 스페인과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고 근세에 이르러서야 겨우 주권을 가진

독립국으로 탄생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러나 이곳을 점령했던 통치자들이 모두 물러가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복원 사업은 적극적으로 할 수 없어 1978년부터 겨우 옛 모습을

점차 찾아가는 중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