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성이라고 하는 노이슈반슈타인 성

2021. 7. 30. 03:28독일·오스트리아 2018/퓌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 Schloss) 성은 독일어지만, 그 의미는

새로운(Neu), 백조(schwan), 석성(stein/Schloss)의 세 단어로 된 의미라고 하네요.

그러니 단단한 암석 위에 새롭게 건축한 백조 형상의 성이라는 의미지 싶은데 성을 바라보면

마치 돌 산 위에 한 마리 우아한 백조가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이곳에 쉽게 오려면 퓌센 기차역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오면 그곳에서 다시

마차를 타고 오르거나 마리엔 다리 앞까지 왕복하는 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조금 걸어야 성에 도착합니다.

 

오히려 울창한 수목 사이로 걸어 내려오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마차를 타고 오르내릴 수도 있더군요.

물론,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으나 올라갈 때는 조금 힘드니 편도만 버스표를 끊어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와도 좋습니다.

 

그런데 마리엔 다리 앞의 버스 내리는 곳에 붙어있는 이것...

바로 백조의 우아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마리엔 다리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들어갈 수 없게 하였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노이슈반슈타인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마리엔 다리를

보수공사를 한다고 위의 사진에 보듯이 들어갈 수 없도록 입구를 막아두었더라고요.

난생처음 사진으로만 보았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아닌가요?

 

마리엔 다리를 건너 테겔베르크 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우리는 운이 없게도 공사를 한다고 마리엔 다리로 들어가는 입구를

폐쇄해 버린 시기에 찾았습니다.

아쉬움에 계곡 아래를 내려가 보았지만...

 

마리엔 다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성으로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내리막으로 계곡으로 내려가면 혹시나 다리 아래에서라도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로 현실은 성의 귀퉁이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산을 기어올라 다리가 보이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 나무 틈 사이로 바라보았지만,

귀퉁이만 쬐끔 보여주고 하늘에 걸린 마리엔 다리만 올려다볼 뿐...

무심한 하늘만 바라봅니다.

 

다시 힘을 내어 산 정상으로 올라가 봅니다.

그나마 나무 사이로 조금만 보여주네요.

 

사실, 이곳에 온 목적은 성 내부를 구경함이 아니라 성 외부와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진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싶었는데 꿈이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마리엔 다리 보수가 끝난 후 다음에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위의 사진이 백조의 성 전경이 가장 많이 보였던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원래 위의 사진처럼 멋진 풍경을 상상하며 이곳을 찾아왔지만,

현실은 우리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곳에서 파는 그림엽서 속에서만 볼 수 있나요?

결국 그림 엽서 몇 장만 사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이제 좋은 풍경은 포기하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백조의 성이라고도 불리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오랫동안

만화 속에서나 봄직한 그런 풍경이었지요.

이곳이 특히 음악과도 많은 연관이 있는 곳이라고 전해옵니다.

 

그 음악의 주인공은 바로 라이프치히 출신의 리하르트 바그너라고 하네요.

우리는 흔히 예술가는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바그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하네요.

바로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왕이 사랑했고 후원했다고 하니 바그너는 행운의 사나이였나 봅니다.

경제적으로 걱정 없이 태어난 사람을 제외하고 예술가에게는 경제적인 궁핍에서 벗어나

걱정 없이 예술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말은 그의 예술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었을 겁니다.

 

바그너와 루트비히 2세와의 만남은 바로 로엔그린이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고 합니다.

물론, 그는 유난스럽게도 바그너의 오페라 백조의 기사나 탄호이저도 좋아했다네요.

루트비히 2세는 어린 시절 바로 앞에 보이는 호엔슈방가우 성에서 우울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그때는 이 성은 있지도 않았을 때였다지요?

 

그랬던 그가 로엔그린이라는 작품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바로 그 작품에 빠짐으로

바그너의 후원자가 됨과 동시에 우정까지 쌓게 되었다니...

예술가의 작품이란 이렇게 예술가는 물론, 그를 후원했던 두 사람의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하니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엔그린이라는 작품을 구경한 후 몇 년이 지나 루트비히 2세가 18살이 되었고

그는 바이에른 왕에 등극하게 되었다네요.

마침 그때 인근의 도시인 뮌헨에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던 바그너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상황에 처했다네요.

이에 루트비히 2세는 편지를 보내 바그너를 호엔슈방가우 성으로 초청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서로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우정을 쌓아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왕의 후원으로 호엔슈방가우 성에서 마음껏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바그너는

당연히 왕을 위해 많은 작품을 쓰게 되었다네요.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그러나 일부에서는 두 사람 사이는 그냥 우정이 아니었다는 의심의 눈초리까지 있었다네요.

그래서 루트비히 2세는 중세의 기사 모습을 그린 오페라를 좋아했기에 이곳에 바그너를 위해

중세의 모습이 연상되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지었고 이때 성 안에는

공연장까지 마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그너를 위했다고 하니 충분히 그런 의심을 살만한 정황도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루트비히 2세는 왕궁의 재정상태에 벗어난 대규모의 성을 지음으로 오히려 왕실은

커다란 채무를 지게 되었고...

아무리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라고 하지만, 빗나간 우정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그런 빗나간 우정이 지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라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탄생케 했으니 세상 일이란 알고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도 이렇게 이 먼 곳까지 찾아와 성을 구경하게 되었으니

후손을 위해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세상 최고의 성이라는 노이슈반슈타인의 완공을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런 사연이 있는 성이라 중세에 지어진 많은 성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지었지만,

이곳은 전혀 관계가 없이 취미생활로 지은 곳이라고 하니 취미도 취미 나름인가 봅니다.

 

사실 짓는 도중에 루트비히 2세도 이곳에 겨우 2주 동안 머무르기도 했다니

2주만 살기 위해 이런 성을 지은 셈이 되었나요?

그는 살아생전에 성에 대한 애착이 강했나 봅니다.

원래 그는 모두 5채나 되는 많은 성을 지을 계획을 했다나요?

 

따라서 이 성도 지금 규모의 몇 배나 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죽고 난 후

성 건축 계획을 1/3로 대폭 축소해 완공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보는 성의 규모는 원래 계획의 반도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봅니다.

 

이런 성에 대한 집착으로 그는 왕의 지위마저 흔들린 적도 있었다네요.

왜 아니겠어요?

왕실의 재정이 흔들리는데 누가 그런 왕을 좋아하겠어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늘은 조금은 허탈해지려고 합니다.

부지런히 멋진 상상을 하며 이곳까지 찾아왔건만, 결국은 그 모습은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여기가 쉽게 올 수 있는 곳이라면 나중을 기약해도 되겠지만,

70이 넘은 우리 나이에 이제는 더는 구경할 수 없는 그런 곳이 되고는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