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다 장묘장 columbarios

2015. 8. 25. 08:00스페인 여행기 2014/메리다

위의 사진은 로마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의 모습입니다.

로물루스의 이름에서 로마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했나요?

로마인에 의해 건설되고 로마의 지배를 받은 메리다는 이런 조형물을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랑스럽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왜?

바로 이곳 주민은 로마의 후손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 싶네요.

 

무척 길고 화려했던 역사의 현장인 메리다.

그런 화려한 생활을 했던 이들이 천년만년 살지는 못했지요.

이들도 결국 인간의 수명을 다하면 가는 곳이 있습니다.

로마의 후손이라고 버틸 수는 없잖아요?

 

그런 사람이 마지막으로 가는 곳

오늘은 바로 그런 곳을 찾아갑니다.

찾아간다니 힘들지 않으냐고요?

 

아닙니다.

바로 로마인 주거터와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걸요.

그러니 삶과 죽음이 바로 이웃해 있어 언제든지 오갈 수 있는 곳입니다.

잠시 북쪽으로 이동하면 무덤과 집터 유적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columbarios 라 부른다네요.

 

살아있던 사람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죽은 후의 모습 또한 구경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은 그들이 생명을 다하고 이 세상을 떠날 때의 모습과 시신을 안치했던 장묘문화를

함께 구경할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와는 어떻게 문화가 다른지...

 

주로 석관을 사용했지만, 가끔 그냥 땅에 묻고 돌로 위를 덮은 무덤도 보입니다.

살아서 권력이나 재물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아닐까요?

 

워낙 많은 무덤이 있는 곳이기에 발굴하다가 말고 그냥 방치한 곳도 보이네요.

살아서 귀천이 죽어서도 따라 다닙니다.

 

무덤 안에는 생전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이 집은 이렇게 별도의 무덤을 만들고 그림까지 그려놓은 것으로 보아

금수저 집안이었을 듯합니다.

부부로 보이는 그림은 우리에게 그들이 살았던 생전의 모습을 상상하라 합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옛날 그들의 사랑까지도 느껴보라 합니다.

왼쪽에는 남편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그의 부인으로 보입니다.

다소곳하게 두 손을 마주 잡은 여인은 우리네 여인처럼 현모양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인의 소장품이지 싶네요.

동그란 것은 구리거울이라고 생각되고 여인이 장식품 목걸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왼쪽 아래 작은 것은 반지가 아닐까요?

예나 지금이나 여인은 사랑받고 아름다운 것으로 장식하며 살기를 바랐나 봅니다.

 

장례식의 모습이 아닐까요?

여인들은 우리처럼 하얀 소복을 하고 머리를 풀어 죽은 자의 마지막 길에

최대한 예를 표합니다.

2천 년 전의 이 먼 곳의 모습이 어찌 우리네 장례풍습과 다르지 않단 말입니까?

 

그리고 다음 순서는 우리 식대로 염을 하는 모습이 아닐까요?

슬퍼 우는 자...

그리고 피리 연주로 예를 갖추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화장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그림이 당시에 장례 모습으로 그대로 벽화로 남아있습니다.

오열하는 모습으로 비치어 보면  그는 무척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았지 싶습니다.

그래요.

세상에 태어날 때 모두가 웃었고 혼자 울었지만, 이렇게 세상을 등질 때 혼자 웃고

모두가 울어야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동서양의 차이도 느낄 수 없고 2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죽은 자를 보내는 방법이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다른 게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같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로마의 유적은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구경할 곳이 바로 눈보다는 마음으로 봐야 할 곳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기 그들의 무덤을 하나 살펴봅니다.

여행하다 보니 무덤 안까지 구경합니다.

하나의 무덤 안에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무덤 안을 드나들 때의 상상도입니다.

이상적인 구분을 하여 아마도 가족묘로 사용했을 듯하네요.

로마를 떠나 여기 먼 곳까지 흘러와 이곳의 귀신이 되었나 봅니다.

처음 메리다를 만들 때 로마의 퇴역병을 이주시켰다고 했으니...

 

1993년에 유네스코는 이곳을 매리다 유적군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합니다.

아마도 메리다는 스페인에서는 가장 많은 로마 제국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일 겁니다.

 

로마 제국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에 따라 만든 도시로 무척 많은 로마시대의

유적이 남아있어 메리다를 작은 로마라고 부르나 봅니다.

당시 이곳은 로마 제국의 부속 주였던 루시타니아의 주도로 기원전 25년에 처음 건설되었다 합니다.

로마가 아닌 곳에서 가장 로마다운 곳이 여기가 아닐까요?

 

처음에 도시를 건설할 때 "아우구스타 에메리타(Augusta Emerita)"로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의 이름인 메리다라는 이름이 에메리타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메리다는 은의 길이라고 알려진 북쪽의 히온으로부터 남쪽 세비야에 이르는

중간 지점에 있고 서쪽으로는 리스본과 동쪽의 마드리드를 잇는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그러니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네요.

 

동서 루트와 남북 루트의 접점에 있는 메리다는 그 위치만으로도

충분히 중요점을 인정받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로마 제국은 이 도시에 얼마나 공들여 건설했나 충분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지요.

 

지금의 메리다(Merida)라는 도시는 인구가 5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사통팔달 교통의 중요한 지점이고 "작은 로마"라고 부를 정도로

로마 시대의 유적이 모두 온전하게 남아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스페인에서는 최대로 풍성한 로마 유적이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원전 로마제국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가 식민지화되는 과정에 로마 제국은

주요 포인트마다 그들 나름의 도시를 만들었다 합니다.

이는 로마가 가장 로마다웠던 일이기도 하지요.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고 해야 할까요?

팍스 로마나란 바로 기원전 1세기경 아우구스투스가 내란을 수습하고 200여 년 간이나

지속한 평화롭고 가장 안정된 시기를 일컫는 말이 아니겠어요?

 

이 시기에 바로 메리다가 건설되었으니 이민족의 침입도 없었고 내외적으로

황금기를 구가하던 그런 시기를 보낸 곳이기에 이런 아름다운 유적이 건설되었을 겁니다.

 

사실은 로마는 그게 이 고장을 발전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수탈을 위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유적으로 말미암아 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니 이 또한 나쁜 일만 아닌가 봅니다.

바로 그런 도시 중 가장 완벽하고 많은 유적은 지닌 도시가 메리다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이제 또 다른 유적을 찾아 이동해야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사람은 생각하는 게 적으면 적을수록 더욱더 말이 많아진다고 했습니다.

내용도 별로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나열하니 생각이 없기는 없나 봅니다.

佳人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이런 곳에 언제 다시 오겠느냐는 생각에 다시 다른 곳으로 찾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