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레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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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다의 옛이름은 아우구스타 에메리타랍니다.
메리다는 로마의 상징인 맑은 물 공수작전의 대표선수인 로마 수도교가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있는데 이 말은 메리다에 거주했던 주민이 무척 많았다는 말이잖아요? 그리고 바로 옆을 흐르는 강물을 식수로 이용하지 않고 메리다에서 수 km 떨어진 곳에 댐을 만들고 그 댐에 저장했던 깨끗한 물만 사용했다는데 그 댐이 아직도 이 도시의 상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이미 우리는 여행 초반에 세고비아에 들러 그 웅대한 로마 수도교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처음 만든 것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보기 좋았으나 이곳 메리다는 위의 사진처럼 형태만 남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늦은 밤 다행스럽게도 수도교를 찾아 형태나마 구경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메리다의 푸엔테 로마노는 지금까지 남아있..
2015.08.06 -
푸엔테 로마노를 걸어서 메리다로
오랜 역사의 도시인 메리다라는 정적인 환경에서 위의 사진은 아주 역동적인 모습 아닙니까? 혼자 생각이라고요? 위의 사진은 메리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구시가지로 들어가려고 푸엔테 로마노라는 로마 시대에 만든 다리를 지나다가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정을 즐기는 사람이 지나가길래 무심코 찍은 사진입니다. 유적 박물관이라는 메리다와는 관련이 전혀 없는 사진이지만... 이 강은 과디아나 강이라고 이미 우리는 바다호스를 지날 때 그 강을 건너 다녔죠. 여기 메리다가 바다호스보다는 상류로 강의 흐름이 마치 호수처럼 정지하고 있는 듯 평화롭고 한가해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이 도시가 겪었던 세상의 풍랑을 모두 가슴속 깊이 안고 있는 듯 말입니다. 그러나 저 멀리 나타난 세 명의 사내가 배를 저어 파문을 일으키며 순식..
2015.08.04 -
메리다(Merida)는 작은 로마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돌아볼 메리다(Merida)는 작은 로마라고 부른다는데 그 이유는 이베리아 반도의 모든 도시 중 로마 시대에 만든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겠지요. 우선 위의 사진에 보이는 푸엔테 로마노라는 로만 브리지입니다. 이 다리는 로마 시대에 만든 다리로 그 완벽함이 월등해 아직도 다리로 이용하고 있다지요? 2천 년이나 된 다리가 아직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겠어요? 우리 부부는 일부러 이 다리를 통해 천천히 걸어서 시내로 들어갔습니다. 왜? 이곳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 그게 바로 "백 투 더 퓨처"가 아니겠어요? 비록 시간은 많이 지나 옛날에 만든 유적이지만, 과거의 모습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고 여행은 현실이지만, 우리가 다니는 곳은 시간과 공간을..
2015.08.03 -
카세레스로 돌아가는 길
이제 트루히요를 떠나 카세레스로 돌아갑니다.메리다를 가기 위해 이곳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면 중간에 메데인을 들려 또 다른 콩키스타도르인 에르난 코르테스를 만나고 메리다로 가면 되겠지만, 여기에서는 바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답니다.지도로 루트를 짤 때 마드리드에서 바로 오는 도로가 있어 당연히 버스 편이 있을지 알았지만, 현실은 아니네요. 물론, 어제 숙소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오늘 트루히요 관광안내소에서 확인한 결과 맞는 말이었는데 이럴 때는 차를 빌려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그러나 우리는 순전히 두 발로만 돌아다니는 배낭여행자가 아니겠어요?중국도 그렇게 두 발로만 걸어 다녔는걸요. 일단, 카세레스로 돌아가야 합니다.그래야만 오늘 오후에 배낭을 찾아 메리다로 내려갈 수 있지요.트루히요의 ..
2015.07.31 -
트루히요 알카사바를 향하여
이 도시는 기원전에 이 지방에 살았던 원주민 이베리아 사람이 세운 도시라 합니다. 로마는 이곳을 쳐다보지도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주변의 여느 도시와는 달리 로마 유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이곳은 그들의 목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가 아니겠어요? 그러나 그때는 깡촌이지 싶네요. 촌놈들이 사는 외진 곳 말입니다. 덕분에 오래도록 옛 모습이 남아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그 대신 이곳의 맹주였던 이슬람 무어족의 흔적만 잔뜩 남아있는 곳이죠. 그 후 이슬람이 이곳에 들어와 제대로 된 도시건설을 하게 되었다네요. 지금의 알카사바가 바로 그 흔적이겠지요. 이제 알카사바를 향해 언덕길을 오릅니다. 그 후 1232년 이베리아 반도를 휘몰아친 국토회복운동인 레콩키..
2015.07.27 -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고향 트루히요 가는 길
위의 사진은 트루히요의 중심 광장인 마요르 광장 한가운데 시내를 굽어보며 서 있는 청동으로 만든 기마상인데 말 근육을 보니 아주 다이내믹한 모습입니다. 스페인 정복자가 들어가기 전까지 당시 남미에는 말이 없었다 합니다. 그렇다면 스페인에서 말을 배에 실어 남미로 옮겼다는 말이 아닌가요? 어디 말뿐이겠어요? 무서운 맹견도 끌고 들어가 두 짐승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저런 모습으로 잉카 제국에 나타나니 말을 처음 본 잉카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마라는 켄타우로스(Centauros) 또는 센토(Centaur)처럼 생각되고 그들 전설에 하늘에서 내려오리라는 그런 신으로 생각되어 처음에는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였지 싶네요. 게다가 무서운 개까지 데리고 나타났으니... 올려..
2015.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