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7. 08:00ㆍ스페인 여행기 2014/메리다
로마 음악당에서는 당시 공연은 물론 음악회도 열렸을 것이고 회의장으로도 사용했을 겁니다.
2천 년 전에 말입니다.
얼마나 온전한지 지금도 매년 7-8월이면 위의 사진에 보듯이 메리다 고전 연극제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니 최근에 열렸던 공연의 모습이라 하네요.
그러나 2천 년 전에도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정말 대단한 장관이 아닙니까?
세상에는 수많은 유적이 존재하지만, 대부분 당시 처음 지을 때의 목적대로 사용되고 있는 유적은 많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유적 만리장성도 지금은 관광용으로만 사용되고 있지요.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처음 목적대로 그 모습을 간직한 체 사용된다는 일은 기적입니다.
이 말은 그 유적의 목적이 인간을 이롭게만 하는 유적일 경우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예가 중국에서는 도강언이라고 있기는 합니다.
위의 사진은 무대 앞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객석과 무대 사이에 만든 반원형의 공간으로 아마도 오케스트라의 자리라고 하면 딱 맞지 않을까요?
그리스에서 시작된 이런 형태의 공연장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자리라지만,
원래는 춤추는 공간의 의미라 하더군요.
위의 사진은 무대 공연자들의 대기실로 보입니다,
스케네(Scene)라고 불렀던 뒤편이지요.
바로 무대로 통하는 유일한 문밖의 모습으로 지금은 기둥만 남았지만, 그 당시에는 지붕을 덮지 않았을까요?
대리석을 아름답게 다듬은 기둥은 아직도 쓸만합니다.
이렇게 쓸만한 기둥은 다른 민족이 지배할 때 많이 빼가기도 하지요.
여기에 세운 기둥도 그리스에서 빼 온 기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재활용일까요?
아니면 밑돌 빼다가 위돌 고인 것일까요.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 때 다른 유적에서 빼 온 기둥을 사용하기도 하잖아요.
세상의 많은 유적이 그래서 점차 사라집니다.
우리가 나중에 찾아보았던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도 다른 곳의 기둥을 빼다가 만들었다는데 기둥의 길이가 짧아
그 위로 궁여지책으로 2중 아치를 얹어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워 더 유명해진 곳도 있지요.
위의 사진을 보니 정말 완벽한 상태로 남은 최고의 로마 극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로마를 가보지 못했기에 나중에 가게 되면 꼭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지금도 세상에 많이 보이는 오벨리스크라는 기념비는 오직 이집트만의 전유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에서 가져가 기념물로 세워놓았지요.
그런 나라는 조상의 유물이 빈곤해 그랬을까요?
아니면 문명국이 아니라 문명의 파괴 국가며 약탈 국가라고 자랑하고 싶어 그랬을까요.
이렇게 인류의 유산인 유적은 자꾸 사라집니다.
어느 민족이 융성해지면 다른 민족이 만든 신전 같은 유적의 기둥뿌리를 뽑아 재활용한다는군요.
종교가 다르면 파괴도 일삼고요.
그래도 다행스럽게 여기는 그나마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어 다행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가운데 여신은 케레스라는 여신상입니다.
그러나 여기도 처음부터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는 않았겠지요.
여기도 폐허로 변했지만, 1910년 9월 17일 처음으로 복구 조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제일 가운데 정면으로 보이는 여신인 케레스는 1911년에서야 발굴되었다네요.
좌우지간 극장의 의미는 로마가 세운 도시 안의 여러 시설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라고 봐야 하겠지요.
이는 예술 무대뿐만 아니라 지금의 시의회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겁니다.
회의는 물론 선출을 할 때 모였던 곳이며 황제와 그의 가족의 형상을 만들어 존경의 의미도 담았지 싶네요.
황제 가족의 모습을 조각해 기둥 아래에 모셨고 기둥 위로는 주로 신들의 형상을 모셨다 합니다.
이런 방법은 황제 통치에 관한 존경과 순종을 얻기 위함이리라 생각합니다.
메리다의 경기장에 남은 명문 중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성스러운 카이사르의 아들, 최고 제사장, 열한 번째의 집정관, 열네 번째의 최고사령관"
마치 가슴에 잔뜩 훈장을 단 코메디 같은 집단의 모습을 보는 듯하지는 않나요?
실제 아우구스트 황제 재임 시 이 극장이 완공되었고 오직 소수의 로마 시민이 그리스어를 이해했지만,
실제로 그리스어로 된 연극이 공연되었다 합니다.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는 "연극은 단지 보여주기 위한 공연이었다."라고 정의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인들은 무언극이나 혼합된 몸짓 또는 음악이나 춤을 좋아했다네요.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공연에 왜 로마인들은 환호했을까요?
환호하지 않으면 교양이 없다고 왕따라도 당하기에 그랬을까요?
한마디로 가식적인 행동이 아닌가요?
그런 교양이라면 개나 줘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공연의 입장료는 무료였나 봅니다.
공연 중 여성의 나체쇼도 있었다고 하니 예술성과 교양(?) 모두를 갖춘모습이네요.
지금 위의 통로 위로 보이는 자리는 호민관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자리로 무대와 가깝기에
공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특별석이지 싶네요.
호민관은 평민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의회와 같은 것이라고 했지만, 역시 목에 힘이 들어갔던 부류였지 싶네요.
직접 그곳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왼쪽은 무대로 통하는 문으로 주로 공연하는 사람이 드나들었고 정면으로 보이는 어두운 출입구는 객석의 관중이
드나드는 문이지만, 이 문은 아무나 드나들 수 없고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만 드나들었다 합니다.
바로 출입구 위로 만든 자리가 특별석이었던 모양이죠?
무대 정면에 보이는 여신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인인 리비아(Livia)의 조각상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로마에서 농사의 여신이라는 케레스(Ceres)와 동일시되며
그리스에서는 테메테르 여신과 동일하다고 본다네요.
여기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며 원본은 입구에 있는 로마 박물관에 있다고 하네요.
왼쪽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 음악과 예술을 관장하는 아홉 여신 중 하나인
뮤즈(Muse) 여신의 몸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신의 이름에서 Music이라는 단어가 생겼을까요?
비록 머리 부분은 손실되고 몸체만 남았지만, 아름다운 여신으로 보입니다.
예술을 통한 힐링을 했을까요?
무대 중앙의 오른쪽에는 질병 치유를 하는 힐링의 신이라는 세라피스(Serapis) 신이라 합니다.
세라피스는 다른 신과는 달리 위의 사진처럼 곱슬머리에 턱수염이 요란하며
언제나 머리에 바구니 같은 것을 이고 있습니다.
머리 위로 작은 바구니가 보이시죠?
무대 위로 다양한 조각상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신과 같은 반열에 오르고 싶어서 이곳에 만들었을까요?
갑옷을 입은 조각상은 장군의 모습이고 망토를 걸친 사람은 로마의 황제라 합니다.
장군의 가슴에는 반인반마라는 켄타로우스의 문양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반라의 조각상도 보입니다.
복근 자랑질인가요?
여기에는 모두 세 명의 황제 모습을 조각으로 남겼다 합니다.
황제는 이렇게 벌거벗고만 살았을까요?
토가(TOGA)라고 어깨로부터 걸치는 옷이 있지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우리가 모두 마음속에 꽃 한 송이씩 심는다면 세상은 한층 더 아름다워질 겁니다.
그리고 남에게 꽃을 건넨 내 손에는 아직도 향기가 남아있을 겁니다.
많은 꽃을 심어 키웁시다.
그래야만 더 많은 사람에게 꽃을 건넬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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