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탑사(馬耳山 塔寺)

2022. 12. 9. 04:00금수강산 대한민국/전라북도

마이산(馬耳山)은 그 모습만으로도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곳이지요.

말의 귀처럼 생긴 두 개의 봉우리가 정말 신기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그렇기에 많은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곳이지요.

 

그 두 개의 봉우리 사이에 한 사람의 힘으로 탑을 쌓아 올려 만든 탑사도

그 모습 자체가 기이하기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라 합니다.

예전에 들렀던 것인데 그래서 오늘은 다시 마이산 탑사를 찾았습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1976년 3월 6일 지정)인 마이산 탑사(馬耳山 塔寺)를 오늘 구경합니다.

마이산 탑사는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마이산의 남쪽 사면에 탑사가 있습니다.

이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마이산의 남부주차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수월합니다.

 

주차장으로부터 약 1.9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기에 조금 걸어야 하지요.

그러나 걷는 도중 금당사라는 절이 있어 잠시 고찰을 둘러볼 수 있고요.

 

멋진 풍경과 호수의 반영을 보며 눈요기할 수 있는 탑영지라는 호수 또한 좋았던 곳입니다.

탑영제는 호수에 비친 마이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지요.

그러나 바람이 없는 오늘 같은 날에만 특별히 선명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담락당과 삼의당 시비가 있기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머물며 조선시대의 한 여류 문인의 삶도 엿볼 수 있어 

심심하지 않게 걸어갈 수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약 20여 분을 걸어 오르다 보면 이갑용 처사가 쌓았다는

80여 개의 돌탑으로 유명한 마이산 탑사를 맞이하게 되지요.

그러나 탑사가 있는 곳에 들어서면 마이산 전체의 모습은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돌탑들의 형태는 일자형과 원뿔형이 대부분이고 크기는 다양합니다.

대웅전 뒤의 천지탑 한 쌍이 가장 큰데, 어른 키의 약 3배 정도 높이라고 하네요.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쌓아 올렸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하네요.

 

마이산 탑사는 CNN에서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선정했던 곳이기도 하답니다.

탑사는 1800년대 후반 이갑용 처사가 마이산에 들어와 살면서 혼자 쌓으며

탑사의 면모가 갖추어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런 결과 그 고유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통 사찰로 지정받았다고 합니다.

탑사에는 자갈돌이라는 역암인 마이산에서 떨어져 나온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고깔콘처럼 생긴 원추형 탑 5기와 판판한 돌을 포개 쌓은 외줄탑 등 80여 기의 탑이 있습니다.

 

마이산 탑사의 주탑은 지금 위의 사진에서 보는 천지탑이라는 탑입니다.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음양을 상징하는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위치는 남. 북으로 축조되었다는데 약 3년에 걸쳐 쌓았다고 합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져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 기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천지탑이 있는 곳은 1860년 3월 25일생인 이갑용 처사는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를 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만불탑을 쌓기로 결심하고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 탑들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네요.

 

천지탑을 쌓은 이곳은 마이산 두 봉우리 사이에 있는 곳으로 이 산에서 가장 기가 강한 곳으로 보입니다.

많은 탑이 이곳에 있지만, 대부분 이곳 마이산 주변의 돌로 쌓았고

천지탑 등 주요탑만큼은 전국 팔도의 명산에서 가져온 돌을 조금씩 섞어 쌓았다네요.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五方塔)의 호위를 받고 있는 돌탑의 우두머리 천지탑(天地塔)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규모 또한 가장 큰 한쌍의  탑입니다.

오른쪽 조금 더 높은 탑이 양탑이고 왼쪽에 보이는 탑이 음탑이라고 하네요.

따라서 천지탑 앞에 서서 기도를 하면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고 하니...

 

그 앞의 외줄탑은 오방탑이라고 부르는데 동서남북 네 방향과 그 중앙인 가운데에

탑을 쌓아 음양오행의 조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라보면 조금은 불안해 보이고 강한 바람만 불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보이는데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탑은 석재를 가공해 쌓은 전통적인 방법의 탑과는 달리 가동되지 않은 막돌허튼식이라는

천연석을 그대로 사용했고 큰 돌과 작은 돌을 서로 맞물리게 쌓은 것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게 쌓았다네요.

탑의 높이는 1m에서 15m까지 다양하며 탑의 크기도 제각각이네요.

주요 돌탑은 각각의 이름을 붙여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고 역할도 나누었군요.

 

맨 앞 양쪽에 있는  두 개의 탑을 탑을 일광탑과 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탑을 쌓은 사람이 바람의 방향 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네요.

 

이 월광탑은 암마이봉의 기운을 흠뻑 받고 있는 음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이갑룡 처사의 첫 번째 공든 탑이라고 하네요.

이 탑은 끝을 상징하듯이 하루를 마감하여 태양이 월광탑 방향으로 기울어져 하르를 마감한다고 합니다.

 

일광탑입니다.

이 탑에서 하루가 시작된다는 의미로 새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네요.

태양이 아침에 떠오르면 바로 이곳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나도산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쌓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광탑과 원광탑은 서로 반대방향애 있어 바깥쪽으로 기울어진 형태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탑은 약사탑입니다.

사람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병고와 육체적 질병으로부터 치료를 바라는 의미로 만든 탑으로

보는 쪽에서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지게 쌓았답니다.

 

원래 이 지역은 담수호였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지질의 변화를 겪으며 융기현상으로 땅으로 변하며

특히 마이산은 불쑥 솟아올라 지금의 형태를 보인다고 하네요.

 

그렇기에 자갈돌이라고 부르는 역암의 모습으로 그곳에서는 물고기의 화석도 발견되고 있기에

이 지역의 지질형태를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하네요.

 

이 산을 더욱 기억에 남게 하는 것은, 산의 형세도 기이하지만,

암마이봉 바로 아래의 탑사(塔寺)때문이지 싶습니다.

탑사의 탑들은 전북 임실 태생의 이경의(흔히 이갑룡 처사라 불림)씨가 1900년대 초에

손수 쌓은 탑들이라 전해지며, 원래는 108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삼국지 제갈량의 팔진도법(八陣圖法)에 따라 돌탑들을 배치했다고 하며

외줄탑, 원뿔탑 등 돌로만 쌓았는데도 태풍이나 바람에도 넘어지지 않는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네요.

 

큰 돌덩이에서부터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돌에 돌을 포개 얹어

크고 작은 외줄 돌탑을 80여 개  쌓아 만든 석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마이산 탑사(馬耳山塔寺)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홈을 파서 서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1백여 년의 풍상 속에 태풍과 회오리바람에도 끄덕 없이

견고하게 버티고 서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보기 드문 불가사의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신비로운 얘기는 1백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지요.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 호 석정)는 1860년 3월 25일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효령대군 16대 손으로 수행을 위해 1885년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부근 은수사에서 수도 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고 만불탑을 쌓기로 결심하고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 탑들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네요.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것이었다네요.

이 처사는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고 전해옵니다.

 

이 처사는 탑을 쌓기 위해 30여 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 부분을 쌓았고,

상단 부분에 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전해진다네요.

이렇게 모아 온 돌로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 부분은 기공법(氣功琺)을 이용하여 쌓았다고 하네요.
 

이 불가사의에 더하여 마이산 탑사에는 또 하나의 신비가 있다네요.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역고드름이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마이산 운수사 본당 동쪽에 위치한 취수단 주변으로 영하 5~6도 되는 날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면 물이 담긴 그릇에서 고드름이 위로 뻗쳐 오른다네요.

 

탑영제에서 탑사를 올려다보면 산에 가리어져 탑은 보이지 않지만

암마이봉과 나도산 봉두굴이 유연한 자태로 탑영제 수면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곳은 큰 가뭄이 들 때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방생의 최적지로 꼽힌다네요.

 

사족으로 마이산의 생성 이야기입니다.

아득한 먼 옛날 큰 죄를 지어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한 산신 부부 내외가 이 세상에 살며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면서 수 억겁 동안 속죄의 시간을 보냈다네요.

오랜 속죄의 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하늘 천상계로 승천의 기회가 열렸는데...

 

이때 남편 산신이 아내 산신에게 말했다.

"이제 하늘나라로 다시 올라갈 때가 되었소.

그러나 우리가 승천하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면 부정을 탈것이니 사람들이 깊이 잠든

한밤중을 택해 승천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한밤중은 너무 무섭습니다.

게다가 밤중에 일을 치르자면 너무 피곤합니다.

 

그러니 푹 자고 나서 이른 새벽에 올라가십시다.

누가 꼭두새벽에 잠 안 자고 우리들이 승천하는 것을 훔쳐보고 있겠습니까?"

남편 산신은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었지만 아내 산신의 고집을 꺾지 못했답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이 무위로 돌아갈지도 몰라 불안했지만 이튿날 새벽에 승천하기로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다네요.

이튿날 새벽, 산신 부부는 마침내 승천을 시도했답니다.

 

하늘을 향해 산이 쑥쑥 솟아가고 있을 때 아랫마을의 어느 부지런한 아낙네가

치성을 드리기 위해 정화수를 뜨려고 우물을 찾았다가 그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답니다.

아낙네는 생전 처음 보는 그 광경에 놀라 비명을 질러댔겠네요.

 

이 소리에 부정을 탄 산신 부부는 결국 꿈에도 그리던 승천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져 지금의 암수 마이봉이 되었다고 합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 산신은 아내 산신을 걷어차고는

두 아이를 빼앗아 버렸다는 뒷얘기도 전해진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의 수마이봉(해발 673m)은 두 아이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고,

암마이봉(667m)은 수마이봉을 등지고 앉아 한없이 고개를 떨군 채 후회하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