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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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어 선제후 궁(Electoral Palace)과 피마르크트 광장 욕장(Thermen Am Viehmarkt)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 있네요.꽃밭 너머 멀리 화려한 궁전이 보이고요.이곳은 트리어에 있는 선제후 궁(Electoral Palace)입니다. 로마 시대에 지은 유적 구경을 하다가 엉뚱하게 산에 올라 포도밭은 거닐다 내려왔습니다.여행이란 이렇게 계획에 없었던 산책도 했네요.이제 구시가지로 다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길을 건너 구시가지 방향으로 가려고 하니 앞에 성벽이 가로막고 있고위의 사진처럼 성문이 보입니다.분명 옛날의 트리어 성벽은 훨씬 더 바깥에 있었을 텐데... 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 보이고 멋진 궁전 건물이 보이네요.이곳이 트리에서 거주했던 선제후 겸 대주교의 거처였다고 합니다.그러니 방금 들어온 성벽은 바로 이곳 선제후 궁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담장의 역할을 했나 ..
2021.04.28 -
바티칸 박물관의 많은 조각작품
아주 역동적인 멋진 황소 한 마리와 두 명의 여신이 보이는 조각품입니다.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우로페(Europe)라는 여신과 관련이 있는 작품입니다.에우로페(Europe)는 영어로는 유로파라고 하던가요?이 말이 지금의 유럽의 어원이 되지 않았을까요?신화에 따르면 꽃을 따러 나온 에우로페에 반해버린 제우스가 위의 작품처럼 황소로 변신해 그녀에게 접근했고 멋진 황소에 반한 에우로페가 황소의 등에 오르자 황소는 냅다 달려 산 넘고 바다 건너 크레타로 가 그만 사고를 쳤던 모양입니다.그러니 제우스는 여신을 유괴에 납치는 물론, 강간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말이네요.황소의 힘으로... 신이라는 존재가 했던 일이 여신의 유인, 납치에 강간이라니...에우로페가 미성년자는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본인이 여신이..
2016.07.21 -
메두사의 목을 자른 페르세우스
메두사의 목을 자른 페르세우스(Perseus)입니다.안토니오 카노바가 벨베데레 아폴로 상을 보고 영감을 얻어 불과 몇 달 만에 만든 것으로페르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영웅으로 폴리테크테스의 명령으로 메두사의 목을 잘라 가져 오던 중 바다 괴물에 제물로 바쳐질 뻔한 아이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를 구하고 결혼함으로 그녀를 부인으로 삼았다지요. 누구나 메두사를 보면 돌로 변한다는데 그가 메두사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헤르메스의 하늘을 나는 신발을 신고 메두사가 머문다는 동굴로 찾아가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하데스의 투구를 쓰고 직접 메두사를 보면 돌로 변하기에 아테나의 방패를 이용해 방패에 비친 메두사의 모습을 보며 다가가 목을 잘랐다고 합니다.지금 사진에 보이는 메두사의 머리를 보신 분..
2016.07.20 -
헤르메스와 황금의 나라 카람볼로
위의 사진은 카람볼로 보물이라는 타르테소스(Tartessos) 족의 유물로 추정하는 황금 장신구로 보입니다.타르테소스 족은 기원전 5-6세기경 세비야를 중심으로 왕국을 건설하고 살다가홀연히 사라져버린 미스터리 한 민족이었나 봅니다.역사가 남지 않은 민족은 원래 미스터리 하다고 하겠지요? 아!!! 황금입니다.이들이 만든 금장식입니다.기원전 5-6세기라면 무척 오래 전일진대 당시의 기술로 황금을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오늘도 세비야 고고학 박물관의 소장품을 위주로 구경하려고 합니다. 지하는 주로 토기 위주라 크게 눈에 띄는 게 없고 1층에 전시된 유물 중에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가장 눈에 띕니다.그리스에서 부르는 이름이 헤르메스고 로마에서는 메르쿠리우스라고 불러야 한..
2015.09.17 -
에페소스... 그 화려함
에페소스는 신약성서에도 나오는 도시로 B, C 7세기경부터 무역을 바탕으로 발달한 도시로로마시대에는 이곳의 인구가 25만여 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한 도시였나 봅니다.당시에 25만의 인구라 하면 무척 큰 도시가 아니겠습니까?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으로 수도를 정한 조선 초기의 한양 인구가 고작 10여만 명이었다고 하니 에페소스의 25만 인구란 정말 대단히 큰 도시임이 분명합니다. 잠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에 멤미우스 기념관이 있습니다.지금은 대부분 무너지고 기둥 몇 개와 조각이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대단히 아름다운 건물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비록 많이 훼손되었지만, 아직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슬픔을 달래기 위한 추모관이나 다름없습니다.로마 공화정 시기..
201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