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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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의 창랑(長廊 : 장랑)과 더허위안(德和園 : 덕화원)
더허위안(德和園 : 덕화원)이라는 건물은 건륭제 때 지은 건물로천하의 풍류객인 건륭제는 이곳에 신하를 모아놓고 연회를 베풀곤 했다 하네요.그 후 광서제 때 다시 새롭게 지었답니다.후에는 주로 서태후가 좋아했던 경극을 위한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다 합니다.맨날 먹고 입고 사치만 한 지 알았는데 문화예술에 이런 감각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덕화원은 내부수리 관계로 문이 잠겼습니다. 21m 높이의 3층 규모의 대희루는 경극 공연이 열렸던 곳이고 건너편에 있는 이락전에서 서태후는 경극을 즐겼다 하네요.이런 이유로 중국의 경극이라는 예술활동이 서태후 시절에 만개했다 하네요.중국의 경극이 사랑받는 이유가 서태후도 한몫 크게 한 셈이겠지요? 무대 시설이 당시로는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
2012.01.18 -
이화원의 러서우탕(樂壽堂 : 낙수당)과 스웨이무쯔진(水木自親 : 수목자친)
의운관(宜芸館) 정전은 광서제의 황후 침궁입니다.황후는 서태후인 자희 태후와 같은 성이 엽혁나랍씨로 자희의 질녀입니다.광서 15년 황제의 부인이 된다는 꿈을 안고 오문 가운데 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와 그날 황후로 책립 되었지만. 그녀의 삶은 이곳에서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요? 1908년 하루 사이로 서방인 광서와 서태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저세상으로 갔습니다.비록 서방을 마음에 묻었지만, 서태후는 땅에 묻어버렸을 겁니다.그녀는 그날로 다음 황제인 부의가 황상의 자리에 오르자 황태후가 되며 세상의 뒤안길로 조용히 물러나게 됩니다.비록 뒤로 물러났지만, 그녀는 제대로 숨도 쉬며 진정한 자유를 얻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어느 누가 죽어야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나..
2012.01.17 -
이화원 위란탕(玉瀾堂 : 옥란당)에는 아픈 이야기가 있네요.
호수를 따라 걷습니다.이화원은 바삐 구경하고 가는 곳이 아니라 천천히 산책하듯 즐기며 걸어야 하는 곳이지 싶은데 물론, 많은 사람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지라도 여유롭게 돌아봐야 할 곳입니다.아까 내려왔던 호숫가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치열한 암투와 생존경쟁을 했다는 건물이 많은 곳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우리 한국인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서 뭐든 제시간에 일을 마쳐야 하기에 핏속으로 흐르는 빨리빨리의 정신 때문에 여행도 빨리빨리 진행하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도 먹고살만하니 조금 더 여유롭고 느리게 여행하는 것은 어떻겠어요?이제는 보릿고개라는 말도 없는 세상이 되었잖아요. 제일 먼저 위란탕(玉瀾堂 : 옥란당)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보렵니다.이 집은 사합원 양식으로 지어진 곳입니다.한때 서태후에 맞서려던 광..
2012.01.16 -
쿤밍후(昆明湖 : 곤명호)와 스치콩치아오(十七孔橋 : 십칠공교)
문창원은 나와 남쪽으로 호수를 따라 계속 걷습니다.바람도 살랑거리며 불고...오늘은 맑은 하늘에 산책하기에는 날씨가 무척 좋습니다.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호수를 쿤밍후(昆明湖 : 곤명호)라고 부른다네요. 이 쿤밍후는 이화원에서 가장 넓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호수입니다.물론 인공호수로 물 좋은 이화원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든 호수입니다.그러니 순전히 삽질로만 파낸 호수라는 말입니까?중국을 구경 다니다 보니 이런 곳에 제법 많이 있네요. 처음 삽질을 시작한 사람은 몽골족인 원나라 시기였다고 하더군요.처음에는 관계용 수리시설로 시작했다 하며 명나라에 이르러 주변에 나무를 심고 가꾸다 보니 아름다운 호수로 변신하게 되었다네요. 그럼 이곳에 있던 흙은 어찌했을까요?비로 이곳에 있는 만수산이 여기서 파낸..
2012.01.14 -
이화원의 인수전과 문창원
이제 이화원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시내버스 종점에 내리면 바로 앞에 위의 사진처럼 파이러우(牌樓 : 패루)가 보입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패루 중 아름답게 꾸민 것으로는 으뜸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크기도 크고 아름답습니다. 이화원은 처음에 청의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합니다. 이 의미는 물놀이하는 곳이라는 의미라 하네요. 원래 파이러우(牌樓 : 패루)는 원림의 입구에 세우는 표식이랍니다. 이화원 동궁문 앞에 세운 대패루는 그 크기와 화려함에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다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청조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누가 보수하지 않아 흉물스럽게 변해간다는 것이지요. 이미 대패루는 기울기 시작해 버팀목을 세우지 않았으면 벌써 쓰러졌을 겁니다. 이런 것도 귀중한 문화재가 아닐까요? 아무리..
2012.01.13 -
서태후와 만두, 그리고 이화원.
10월 17일 여행 7일째오늘은 이화원을 가보렵니다.이화원은 중국 최대의 황실 정원이라고 했나요?만약, 이화원을 구경하고 오후에 시간이 나면 그 옆에 있다는 원명원에도 다녀오렵니다.오늘이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오늘 밤에는 미리 기차표를 예약한 대로 내몽골의 성도라는 후허하오터를 향하여 갈 예정입니다. 어제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구부리라는 만두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서태후 마네킹을 이용한 선전을 하는군요.이 가게는 원래 톈진에 있었던 만두가게라 하더군요.그런데 당시 서양 연합군과의 혼란한 격동기에 우연히 서태후가 톈진의 구부리라는 만두가게를 들렸던 모양으로 워낙 식탐이 많고 미식가였던 서태후는 그곳에서 만두를 맛본 후 그만 그 맛에 반한 모양입니다.나중에 전쟁을 피해 시안으로 잠시 몸을..
2012.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