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바를 떠나 부하라로

2019. 10. 17. 09:00우즈베키스탄 2019/부하라

 

히바에서 2박을 했습니다.

이찬 칼라는 워낙 작고 한정된 장소라 바쁘신 분은 반나절만 돌아보면 충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부부만 이곳에 왔다면 1박으로 끝내고 떠났을 겁니다.

 

 

오늘은 부하라로 가는 날입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하신 여자분께서 예전에 여행 중 먼 길을 갈 때 주먹밥을 미리 만들어 가면

도움이 된다고 제안하셔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함께 밥을 해 일행 모두 먹을 수 있도록

여섯 사람분의 주먹밥부터 준비하는데 먼 길을 가야 하기에

시간 또한 기차 안에서 많이 보내야 하기에 미리 점심을 준비하는 겁니다.

 

 

오늘 이동할 부하라는 히바에서 500km나 떨어진 곳이기에 미리 한국에서 출발 전

인터넷으로 우즈베키스탄 철도청에 들어가 오늘 출발한 기차표를 보름 전에 예매해

두었고 예약번호로 타슈켄트에 도착했던 날 남부역에서 전부 발권을 마쳤습니다.

예약번호만 있으면 여권만 제시하고 어느 역에서나 발권이 된다고 합니다.

 

 

이 기차는 아침 8시 55분에 출발하는 기차로 7시간이나 걸려 500여km 떨어진 

부하라에 오후 2시 50분에 도착했는게 시속 80km도 내지 못하는 일반 열차입니다.

이 구간은 아직 특급열차가 다니지 않기에 일반 열차로 예매했지요.

 

 

부하라는 우리 여행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두 번째 찾아가는 곳으로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길목에 있어 히바와 쌍벽을 이루고 살았던

부하라 왕국이 있었던 곳이라네요.

2019년 4월 26일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태운 기차는 북쪽에 있는 우르겐치로 올라간 후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달리는데 히바에서 우르겐치 사이는 제법 인가도 보이고 나무도 보입니다.

그러나 우르겐치를 지나면서 인가조차 보이지 않는 사막 안으로 들어가 달립니다.

 

 

위의 사진은 히바 이찬 칼라를 돌아다니다가 보았던 마차 바퀴를 찍은 사진입니다.

우리나라 마차 바퀴와는 다르게 바퀴에 둥그런 쇠로 스파이크 같은 것을 박아

놓았는데 사막길에 쉽게 다니려고 그랬을까요?

아니면 바퀴를 오래 사용하기 위해 붙여두었을까요?

 

 

마차를 보니 실제 사용되었던 마차로 보입니다.

아무리 스파이크를 박았다 하더라고 푹푹 빠지는 모래사막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그러나 이곳 이찬 칼라를 벗어나면 바로 황토로 다져진 곳이라

그런 길에는 도움이 되지 싶네요.

 

 

히바 올드타운을 다니다 보면 쉽게 위의 사진에 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건축이 진행 중인 것처럼 건축 당시에 보강했던 나무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둔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이 건물이 완공된 지 수 백 년은 더 흘렀을 텐데...

 

 

이렇게 미완성된 듯하게 두는 이유는 민속 신앙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건물이 완공되면 나쁜 악귀가 모여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건물이 완공되지 않아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귀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말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보강재로 사용했던 나무를 흉물스럽지만, 그대로 둔다고 합니다.

 

 

우리가 볼 때 흉가처럼 보여 악귀가 더 좋아하지 싶은데...

이곳 귀신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깔끔한 것을 좋아하나 봅니다.

도시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 보니 이런 길을 어떻게 걸어서 이동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예전에 이런 사막을 낙타를 끌고 건너다녔을 것 아닌가요?

그러나 사막의 모습이 완전 모래로만 이루어진 곳도 있지만, 대부분 흙이기에

위의 사진처럼 낙타풀이라고 부르는 사막덤불이 자라며 비만 충분히 내린다면

농작물도 자랄 수 있는 여건은 된다네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길인데... 위의 사진에 보이는 사막길을 기차로도 몇 시간을 가야 하는데

걸어서 간다고 생각하니...

길을 가다가 모래바람이라도 만났으면 어쩌겠어요?

 

 

위의 사진에 보는 것은 우리가 타고 간 기차의 창문입니다.

밀폐된 창문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틈으로 들어온 모래가 기차 안 창가에도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실크로드를 걷는 대상들은 이런 모래바람이 부는 길을 걸었습니다.

 

 

실크로드는 인류가 만든 최초의 문명길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이런 척박한 길이 바로 그런 문명의 길이었네요.

동서양의 교류는 바로 실크로드라는 비단길로 시작했지 싶습니다.

 

 

그러니 이 길은 동서양 물질문명만 오간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 또한 오고 갔던 길이겠지요.

이들 대상이 낙타를 끌고 오갔던 그 길목의 많은 쉼터 중 중요한 곳이었던 히바나 부하라는

문명의 정류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히바나 부하라 자체는 하나의 거대한 동서양 문명의 박물관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그때는 이 길이 고단한 길이었지만, 세상의 중심길이라고도 생각했을 겁니다.

대상들에게는 삶의 길이요, 개척자의 길이요,

용기 있는 자만이 걷는 위대한 길이었습니다.

3.000년이나 이 지방은 동서양의 중간 기착지였을 테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하늘길이 열리고 바닷길이 열리며 이제 실크로드는

이곳을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 속의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냥 보기에는 사막의 먼지만 휘날리는 볼품 없는 오아시스의 도시라고 생각이 들지만,

당시는 세계 최첨단의 문명이 이 도시를 지나갔다고 봐야 하겠지요.

캐러밴은 장사를 하러 다녔지만, 동서양을 아우르는 인류 문명의 전파자였을 겁니다.

 

 

이렇게 뽕나무가 잘 자라는 길은 정말 좋은 길이었을 겁니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는 이렇게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네요.

뽕나무가 잘 자라는 오아시스 부근은 누에고치를 키우기 좋은 곳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비단길이 생겼지 싶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의 주요 도시는 모두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자연발생적인 도시들이겠지요.

그때는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물이 나오는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부락을 이루며 살았을 겁니다.

그런 부락 사이를 오가면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점차 전문적인 상인이 나타나며

사막에서는 강한 생존본능을 지닌 낙타를 이끌고 다녔던

캐러밴이 자연적으로 생겨났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