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30.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위의 사진이 바로 검문관이라는 관문입니다.
지금 관문 주위에 촉한의 군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강유는 어디 있나 보이지 않네요.
이 문을 보려고 들어오려면 입장료가 100원입니다.
물론 반표는 50원이고요.
정말 중국의 입장료는 비싸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싸니까 젊은이들에게 옛날 병사의 옷을 입혀 깜짝 쇼를 하겠네요.
그러나 검문관 경구 안을 천천히 산책하듯 다니다 보면 제법 볼 게 있고 주변의
풍경도 좋고 물론 주변에 산책하며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지만,
사실 이곳의 백미는 바로 이 관문이 아니겠어요?
100원을 주고 들어왔더라도 50원어치만 보고 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200원어치를 보고 가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기왕 들어온 거 우리 300원어치를 보고 가면 오히려 저렴한 게 아닌가요?
그러러면 아주 두리번거리며 자세히 둘러봐야 합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시비도 걸어가며 구경하실까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세밀히 구경하여 비싼 입장료를 상쇄하려고 합니다.
우선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제일관(第一關)이라는 아주 오래된 듯한 석비가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고 피곤한 듯 비스듬히 자빠지듯 서 있습니다.
이 비석은 청나라 옹정 12년인 1734년에 과친왕인 윤례가 황제의 명으로 달라이 라마를
모시고 티베트로 갈 때 여기 검문관을 지나게 되었다 합니다.
윤례는 검문관 주변의 웅장하고 멋진 풍경과 이곳의 험한 길을 보고 압도되어
마음 깊이 감동을 받았나 봅니다.
그 감흥을 시로 쓰고 여기에 돌에다 글을 하나 남겼는데 그 글이 바로 위에 보이는
제일관이라는 비석입니다.
얼마나 험하고 멋진 풍경이었으면 넘버 원이라는 글을 남겼을까요.
이번에는 금우교(金牛橋)라는 다리가 보입니다.
다리 이름도 금소 다리라 하니 이상하네요.
이 다리는 오정과 관련이 있는 다리라 합니다.
오정이 상서로운 금소를 끌고 여기를 지나다 그 중 한 마리가 바로 야간을 틈타
이 계곡 안으로 도망했다 합니다.
이 검문 계곡 안에 살던 주민은 도망온 금소를 잘 돌보아 주었다네요.
그리고 금소가 안전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들었던 다리를 홍수로부터
보다 안전하게 건너다닐 수 있도록 돌다리로 바꾸어 금우교라고 불렀기에
그때부터 이 다리를 금우교로 이름 지었다 합니다.
오정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이 다리를 지나 산으로 올라가면 잔도를 만들어 놓아 아주 풍광이 뛰어난
멋진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처음 들어갈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이 길을 걸어보고 싶어 북문으로 나갔다
다시 차를 타고 남문으로 올라왔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서 보는 그런 길입니다.
만약, 이곳을 구경오시는 분은 이곳의 잔도를 먼저 올라갔다가 내려오시면
동선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힘든 잔도가 아니기에 아주 멋진 산책길을 걸어보실 수 있는 곳입니다.
한바퀴 돌아 바로 조금 아래의 길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금우교를 지나면, 간이 공연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뒤로는 삼국시대의 연회 모습을 석각으로 새겨놓았네요.
이번에는 주군의 마지막 유업인 북벌을 위해 떠나는 장면으로 보입니다.
당시에 북벌을 위해 군사뿐 아니라 전투에 필요한 식량이나 무기의 운송도
큰일 중의 하나였을 겁니다.
그 앞으로 양쪽 끝에 목우와 유마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위의 사진이 목우로 보이고 아래 사진은 유마로 생각되네요.
목우와 유마는 공명의 발명품이라 하더군요.
운송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명은 이런 운송기구를 만들었답니다.
삼국지라는 소설을 읽을 때 공명의 발명품이라고 해 대단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소나 말을 이용해 운송하면 좋지만, 그 소나 말은 또 자기도 먹을 양식을 함께
운송해야 하기에 먹지 않고 성질도 부리지 않는 목우와 유마는 무척 활용도가 높았다 합니다.
보시면 알 수 있겠네요.
그러나 이런 모습을 보고 얼마나 과장된 이야기였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佳人의 속된 평범한 시각으로 보았을 때 말입니다.
이게 모터를 달아 자동으로 간다면 얼마나 편리했겠어요.
소나 말을 없어도 되지만, 이게 움직이려면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소나 말은 전투 중 나중에 식량이 부족하면 비상 식량으로 잡아먹을 수 있지만,
목우 유마를 운전하는 사람을 잡아 먹을 수는 없잖아요?
식인문화가 광범위한 나라라면 모를까...
그러나 좁은 잔도를 우마차로 다니기보다는 이렇게 작은 목우유마가
유용했을수도 있었다 합니다.
전쟁은 지금이나 그때나 적시적기에 보급품을 얼마나 정확히 보내주느냐일 겁니다.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사기입니다.
많은 군사가 전투에 참전한다고 이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나 군사의 사기가 높으냐 일 것이고 이는 바로 배불리 먹이고
많은 무기로 지원해야합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 한가운데 제일 아래에 개는 왜?
비상식량인가요?
인육도 먹은 사람들인데 개는 안 먹었다는 말은 하지 않을겁니다.
개는 자기도 신선한 비상식량인지도 모르고 아주 행복하게 따라갑니다.
전투에 승리하면 아군의 승전 파티용이고 패하면 적군의 승전 파티용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요?
누가?
개나 소나 말 말입니다.
이번 장면은 군사의 이동을 보여주네요.
장수야 말을 타고 이동했지만, 일반 병사는 걸어서 수천 리 길을 걸어 전투에
참전했을 텐데 무슨 힘으로 전투에 임했을까요?
바로 이곳은 촉한에서 북벌을 위해 중원으로 16번이나 올라갔던 길목이 아니겠어요?
정말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출세해야 하나 봅니다.
佳人 같은 민초는 언제나 슬픈 존재인가 봐요.
제일 앞에 사륜거를 타고 학우선을 든 사람이 바로 공명일 겁니다.
공명도 이렇게 편히 사륜거를 타고 가지만, 그 뒤를 미는 저 병사들은 무슨 생고생일까요?
사륜거 뒤를 미는 덜수의 표정을 보세요.
"우쒸 모터 달면 저절로 갈 텐데..."
공명을 몇 번이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길을 걸어...
아니군요?
사륜거를 타고 오르내렸을까요?
저게 늘 제대로 갈 수는 없겠죠?
가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정비병은 또 고생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공명의 발명품 연노입니다.
그때까지 화살은 한 발씩 쏘게 되었지만, 공명은 여러 발이 한꺼번에 발사되도록
활을 발명했다 하는데 소총을 기관총으로 바꾼 것일까요?
아마도 크루즈 미사일 정도의 화력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거리가 짧아 마치 나이 든 사내의 오줌발처럼 멀리 날아가지는
못했고 저기다가 '멀리가그라'라는 약이라도 바르고 쏘면 워싱턴까지 날아가는
대륙 간 탄도미사일 정도는 되지 않겠어요?
그랬더라면, 불바다로 만들 텐데...
그러나 실제로 사거리가 짧아 전투에 임해서는 크게 활용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 후 마군이라는 사람에 의해 개량되며 실제 전투에서 큰 힘을 나타냈다 합니다.
역시 여기가 강유가 마지막까지 성공적으로 위군을 막았지만, 촉한의 패망소식을
듣고 문을 연 곳이라 의전용 무기를 전시했나 봅니다.
이번에 보이는 다리는 그 이름이 수관교입니다.
의미는 관문을 지키는 다리라는 의미일 겁니다.
멀리 검문관의 지붕이 보이네요.
검문관이 있는 곳은 저렇게 험한 절벽 사이로 유일하게 뚫린 바로 저런 곳이었습니다.
유선이 항복하고 촉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강유는 적에게 머리를 숙이고 항복을 한다는 일이 쉽게 용납되지 않았겠지요.
종회가 이끄는 20만의 위나라군은 비록 2-3만의 군대지만 강유의 지휘 아래
여기에서는 한 걸음도 촉의 땅으로 넘어오지 못했으니까요.
이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이 여기에 강유의 석상을 만들었고 다리를 만들었고
그 이름을 관문을 훌륭히 방어한 강유를 기리며 수관교라고 불렀겠네요.
석상의 모습을 보면 뒤에 서 있는 강유가 보이고 앞에 세 명의 장수가 보입니다.
하늘을 보며 땅을 바라보며 절망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찡합니다.
아~ 하늘이시여~
이제 촉한을 버리시나이까?
이곳 전투에서는 성공적으로 종회의 20만 대군을 2만의 군사로 충분히 저지하며
막고 있었지만, 위군의 또 다른 장수인 등애는 검문관은 난공불락이라 생각하고 이곳을
포기하고 병력을 일부 몰래 빼내 음평이라는 험한 곳으로 이동하여 우회 전략을 펴고
돌아들어 가 촉한의 도읍인 청두 바로 들이닥칩니다.
후주인 유선은 기다리고 있었듯이 항복하자 이제 더는 버틸 수 없기에
허탈한 표정을 그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 비까지 추적거리며 내리니 강유의 모습이 더 측은합니다.
그대들...
충분히 임무를 완수했고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이제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지내세요.
고개를 들라!
슬퍼하지도 마라!
눈물도 사치스러운 일이니라!
일은 사람이 도모하지만, 그 결과는 하늘이 정하는 법...
한숨도 쉬지 마라!
눈물도 보이지 마라!
그대들은 맡은바 소임을 200%도 넘게 달성했나니...
하늘의 뜻은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느리라!
비록 띨띨이 유선이 그대를 실망시켰을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그래서 청두 무후사에는 유선의 조상이 보이지 않지요.
왕따 당한 유선입니다.
지금 우리가 걸어가는 방향은 촉의 진영인 서천에서 중원 방향인 북쪽을 향해 걸어갑니다.
이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하나씩 눈에 보이는 대로 두리번거리며 보려고 합니다.
저 앞에 이 동네의 주인공인 잘 생긴 관루 하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방금 걸었던 길을 산에 올라 위에서 내려다본 사진입니다.
이쪽 촉한 지역은 평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검문관이 서 있는 곳을 지나면 급격한 경사를 이루어 아래로 내려가게 된
곳이라서 북쪽에서 이 문으로 통과하려면 오르막을 빡세게 올라야 하기에
공격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군사가 밀어닥친다 하더라도 좁은 곳으로 통과하여야 하기에
여기만큼 수비하기가 유리한 곳은 없지요.
군사적으로 아주 절묘한 곳이 분명합니다.
위의 사진은 이 지형을 알기 쉽게 만든 모형도입니다.
모형도가 남북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위쪽 높은 곳이 남쪽으로 촉한 지역이고 아래가 북쪽으로 위나라로 가는
곳으로 이런 천 길도 더 높은 돌산이 앞을 가로막은 곳에 유일하게 검문관이
있는 곳만 틈이 있어 통과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늘이 내린 유일한 통로...
바로 그곳에 검문관이 있는데 이제 여러분도 이곳에 가지 않으셔도
왜 검문관이 삼국지에서 중요한 지역인가 아시겠죠?
강유가 왜 이곳을 지킨 지도요.
잠시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검문관을 바라본 사진을 먼저 보여 드리겠습니다.
바로 위나라에서 촉한을 공격할 때 아래에서 강유가 지키는 촉군의 검문관을 바라본
모습으로 관문을 공격해 돌파하기 전에 먼저 이 험난한 골짜기인 자연과 싸워야 하는데
이런 지형이니 종회가 얼마나 피똥 싸며 공격해도 성공하지 못한 곳으로 남았지요.
어디 하루 이틀 쌌겠어요?
여러 달 쌌다고 하데요.
그리고 아무리 군사가 많으면 뭐하겠어요?
이렇게 좁은 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여기가 촉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인가요?
내일도 또 걷고 걸어보며 기웃거립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그러니 이 말은 촉한에서는 수비에 무척 유리한 지형이라는 의미가 되겠네요.
이런 곳에 검문관 양쪽으로 성벽을 쌓고 관문을 만들었으니
무척 탁월한 지리적 선택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이렇게 험했으니 위군의 종회는 대병력을 거느리고도 여기를 돌파하지 못하고
발이 묶여버렸나 봅니다.
20만의 군사가 오면 무엇합니까?
아무리 길을 잘 닦아 놓았더라고 고속도로에서 1차선으로만 가라 하면
오히려 정체만 불러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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