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이야기 하나

2008. 10. 23. 00:08중국 여행기/소주, 항주, 상하이 여행

이곳 수저우(蘇州)에는 중국의 4대 정원 중 두 개나 있다.

하나는 졸정원이라는 곳이고 또 하나는 유원(留園)이라는 정원이다.

두 곳 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우리가 찾은 곳은 유원으로 "모든 것을 여유롭게 남겨둔다는 의미"를 가진 정원이다.

이 말에서 그들이 유유자적하는 여유로운 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입장료가 피크시즌은 40원 오프시즌은 30원이다.

우리 돈으로 6.000원이 넘는 돈이다.

 

송대부터 이어진 수저우의 정원은 한때 200개에 이르렀고 지금은 10군데 정도가

복원되어 외부에 개방되고 있다.

그 중 송대의 창랑정(滄浪亭), 원대의 사자림(獅子林), 명대의 졸정원(拙政園)과 오늘 돌아볼

이곳 유원(留園)이 가장 대표적인 강남의 원림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아래 사진이 입구다.

최근에 만든 듯 이곳도 입구와 출구가 다르다.

 

중국의 4대 정원이라 함은 베이징의 이화원과 청더의 승덕피서산장(承德避暑山庄)과 이곳

수저우에 유원과 졸정원으로 이곳에만 두개가 있다.

그러나 이곳 수저우에 있는 두개는 개인 정원이고 나머지 두개는 황실 정원이다. 

유원은 1525년에 만들어진 정원으로 졸정원과 함께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정원으로 이름이 높다.
개인정원으로서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東園이라고 불리었으나 몇 번의 개축을 거쳐 청대에

유원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유원은 명나라 때 관리인 서시태(徐時泰)라는 사람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개인 정원인 동원과 서원을 만들었는데 동원이 유원의 전신이다.

그런데 주인 이름이 서시태라고도 하고 서태시라고도 한다.

佳人이 정원 등기부 등본을 떼어보지 못해 뭐라 말 못한다. 

좌우지간 서씨가 주인이다.

 

아래 사진의 吳下名園이라 함은 吳나라의 유명한 정원이라는 자부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정원은 오나라때 만들어진게 아니고 명나라때 만들어 졌다.

그렇지만 수저우 사람들은 이곳이 기원전 오나라의 수도였다는 것에 대하여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吳라는 글자를 많이 쓴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아버지로 부터 집안을 물려받는 날 도장의 인주가 마르기도 전에 졸정원

주인과 정원을 걸고 도박을 하여 그날로 유원을 날려 버렸단다.

그런 졸정원 주인의 아들도 나중에 도박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마찬가지로 알거지가 되었다니

중국 정원들의 팔자가 사납기 이를데 없다.

 

그후 이 아름다운 유원은 20여 명의 주인이 손바뀜을 하며 내려오다 모택동이 중국을

공산국가로 만들면서 국가 소유가 되어 버렸다.

하긴 모택동이 정원만 국가소유로 만들었나?

지금 모든 유지 관리는 국가에서 하고 있다.

물론 입장료도 정부에서 관리한다.

전국을 모두 국가 소유로 만들었으니 세계에서 제일 부자 나라가 중국이다.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유원의 팔자는 정말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도박 좋아하는 자식놈 하나 잘못 두면 이렇게 상속하는 그날로 명의이전이 될 수도 있다.

적당히 로또 복권이나 몇장 사고 말 일이지 올 인하면 패가망신 한다.

엄마만 뿔났나?

아빠도 뿔났다.

이 세상에 부모들은 꺼진불만 살필게 아니다.

지금 자고 있는 자식놈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 세상 부모들은 신경 쓸 일이 많아 너무 바쁘다.

 

위의 사진의 원탁은 가운데가 둘로 나누어지게 된 원탁이다.

이 원탁은 남자가 외출을 하면 양쪽 끝에 있는 의자쪽으로 띄어 넣고 귀가하면 다시 붙여

놓아 주인장이 집에 있음을 표시한다고 한다.

모든 출입문은 신분에 따라 드나드는 뮨이 다 다르단다.

예전의 중국은 남존여비의 사상이 심했다고 한다.

그러니 남편이 드나드는 문과 부인이나 아이들 그리고 하인들이 드나드는 문이 모두 달랐단다.

 

바닥의 돌도 흰 무늬가 있는 돌로 만들었다.

이것의 의미는 마치 구름 위를 걷듯이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뜻일 것이다.

마치 겉고 있노라 佳人도 바람에 실려 걷는 그런 기분이다.

 

여러분들은 의자와 걸상의 차이점을 아세요?

의자는 사진에서 보듯 뒤로 기댈 수 있게 등받이가 있고 팔걸이도 있다.

걸상은 등받이가 없는 그냥 걸터 앉는 床이다.

예전 중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의자에 앉을 수 있단다.

부부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니까 기댈 수 있는 권리가 있으나 미혼자는 걸상에만 앉는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때는 몰래 앉아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다.

 

아래 사진을 보자.

멋진 모습이 아니냐?

마치 그림에서 본듯한 산수화 바로 그 모습이다.

태호석으로 한껏 멋을 부려 여러군데에다 만들어 놓았다.

 

 

가만히 쳐다 보고 있노라면 佳人이 마치 삼산유곡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이곳을 돌아 볼 때는 음악이라도 들으며 여유를 갖고 돌아 본다면 한결 좋겠다. 

유원이 너무 넓어 오늘 하루에 다 쓰고 사진 올리기가 벅차다.

내일 하루 더 유원을  돌아보자.

 

유원이란.....

모든것을 여유롭게 남겨 둔다 했거늘.....

佳人도 여유롭게 하루를 남겨둔다.

 

오늘 뉴스에 중국 남부지역에 많은 비가 내려 100여명이 사망하고 1.0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올해 중국에는 유난히 사고 사건이 많다.

중국에는 이런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수천만명의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

그들도 재해지역 선포라도 할까?

그럼 佳人이 며칠전 다녀온 아름다운 이곳도 물에 잠겼을까?

그들은 이런 재해를 하늘이 내려준 일상으로 받아드릴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도 수로가 도로와의 높이 차이가 크지 않으니 비만 오면 시내는 모두 잠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어진다.  
 

글쓴이 : 佳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