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 꾸어위(郭 峪 : 곽욕)촌

2012. 5. 3. 08:00중국 여행기/산서성(山西省)

아침 8시부터 일찍 서두른 탓에 오후 1시가 되니 황성상부를 대강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황성상부라는 저택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정말 괜찮았고 여러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점심을 먹고 부근에 있다는 마을 한 곳을 찾아가 보렵니다.

원래 황성상부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던 마을로 황성상부를 지은 진 서방네가 원래 이 마을에 살다가

가세가 확대되니 평수를 늘려 새로운 집을 짓는다는 게 그만 하나의 성을 쌓아버렸다네요.

그러니 진 서방네가 집안을 크게 일으킨 약속의 땅이 바로 지금 찾아가는 곽욕촌이라는 마을인 셈입니다.

 

위치는 아주 찾기 쉽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확인하시다시피 바로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황성상부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무척 찾기도 쉽고 또 가까워 뒷걸음으로 걸어가도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뒤로 걷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중국 국가 문물국에서 중국 역사 문화 명촌이라고 지정한 마을입니다. 

오늘 돌아볼 곳이 한때는 대단한 마을이었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이 바로 이웃에 황성상부라는 성을 쌓아

이사를 한 후 그야말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그런 시시한 마을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슨 역사문화 명촌입니까?

개털 촌입니다.

이렇게 제가 폄훼하는 이유는 제 글을 모두 읽어보시면 아시게 될 겝니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입구에 있는 성벽을 보니 썩어도 너무 썩었나요?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습니다.  

당장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취소하겠습니다.

 

한국사람 중 많은 분이 중국에 가면 후통 투어를 하려 합니다.

물론 후통이라는 게 우리말로 골목이라는 말로 별 게 없지만, 그것도 투어라 돈을 내고 하려 합니다.

이 마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중국의 골목이라는 후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아주 오래된 골목입니다.

여기가 바로 더럽고 지저분하며 냄새가 심하게 나는 후통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선비의 고장이라는 꾸어위(郭 峪 : 곽욕)촌입니다.

이름은 선비의 촌이라 하지만, 그 말은 예전에 그랬다는 말이지요.

이 마을이 선비의 마을인지 도적 떼의 마을인지 이 근처에 오기 전에는 이름조차 알지 못했으나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의 추천으로 이렇게 찾아오니 세상은 무척 좁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위의 사진은 도르래를 이용하여 물을 긷는 우물입니다.

우물도 외부로 노출하지 않고 성벽 아래에 은밀히 감추어 두었네요.

중국을 다니다 보니 이 지방은 우물에 물을 긷는 방법이 다른 곳과 다릅니다.

 

윈난성의 따리나 리지앙같은 마을은 물이 설산에서 흘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무 곳이나 불쑥 솟아오르기에

그냥 샘물을 푸듯 그냥 퍼질러 앉아 푸기만 하면 되잖아요.

그곳은 산얜징(三眼井 : 삼안정)이라는 예쁜 이름의 샘물이었지요.

산얜징이라는 그 우물은 사랑과 정이 넘치고 아낙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들리는 삶의 현장이었지요.

 

이 마을의 위치는 山西省 晉城市 陽城縣 北留鎭이라는 곳입니다.

이 마을은 바로 황청샹푸 근처에 있어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가도 되는 곳입니다.

물론, 마을을 무료로 개방하는 일은 절대로 없지요.

중국은 마을마다 입장료를 받는 재미로 사는 나리잖아요.

 

요즈음 우리나라도 지방자치제를 시행하며 중국처럼 돈을 받는 곳이 제법 생기기 시작했다네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고속도로가 아니라도 지역마다 일반도로도 톨 게이트를 설치하고 돈을 받고,

심지어는 마을 부녀자가 떼거리로 몰려나와 길목을 막고 지나가는 차량에 돈을 뜯기도 하지요.

 

그런 일은 징수하는 게 아니라 무법적으로 삥땅 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워낙 옛날부터 도둑이 많았던 나라라 이런 일은 아주 점잖은 방법이죠.

어디 칼만 들어야 강돕니까?

내는 사람의 기분이 더러우면 그게 강도질이나 진배없잖아요. 그쵸?

 

꾸어위(郭 峪 : 곽욕)촌은 입장료가 황청상푸의 반값인 50원이나 받습니다.

그곳에는 공연도 하고 볼 게 많은데 이곳은 어떨까 모르겠네요.

만약, 그런 것도 없는 썩은 준치보다 못한 곳이라면?

샅샅이 파헤쳐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워낙 손바닥만 한 마을이라 잠시 돌아보면 누구네 집의 숟가락이 몇 개라는 것까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마을입니다.

 

골목길 가운데 골목을 걷는 이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집 대문 앞에 이렇게 조벽을 설치했네요.

아름답게 사는 일은 주변 사람은 불편해도 나만 아름답게 살아가면 된다는 강심장의 나라는 아니겠죠?

설마 자기 앞마당을 이웃을 위해 개방하고 다니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아주 앤틱한 모습을 한 집이 있어 기웃거려봅니다.

이곳은 장가대택( 張家大宅)이라는 아주 오래된 귀신이 사는 집처럼 보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 선뜻 들어가기가 겁이나 망설여지는 집입니다.

 

그러나 중국 귀신이라는 강시는 별로 무섭지 않습니다.

그 녀석은 직선으로 깡충깡충 쫓아오기에 직각으로 꺾으며 뛰면 쫓아오지 못하지요.

그리고 귀신이 아무리 떠들어도 우리 부부는 중국말을 모르기에 우리 부부에게 뭐라 해도

지가 답답해 먼저 죽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니 앞에 조벽이 보이네요.

한때는 대단한 영광을 누렸겠지만...

한때의 명예란 세월이 흐르고 나면 모두 이렇게 폐허로 변하나 봅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황폐해지지 않도록 보살피며 살아야겠어요. 그쵸?

 

이 집은 명대인 숭정 9년부터 11년 사이에 중건한 집으로 장붕운(張鵬雲) 형제의 집이라 합니다.

우도어사를 지낸 인물로 집의 규모가 3100제곱미터에 달하는 큰 저택이었지만, 1950년대에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다행히 당시 유행한 두 개의 문은 온전히 남아 당시의 저택 연구에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 합니다.

 

조벽 왼쪽으로 좁은 골목길이 있어 돌아보니 또 하나의 대문이 있습니다.

중국의 세도가가 이렇게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조차도 외부와 단절하게 하여 놓고 살았나 봅니다.

그러니 후통처럼 좁고 구불거리는 길은 도적 떼가 쉽게 말을 타고 들이닥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고 이런 세도가도

대문을 이중으로 그것도 좁은 골목길 안에 빙빙 돌아들어 가게 한 이유도 그와 같지 않겠어요?

 

바깥에 만든 문의 상인방에 쓴 '대중승제(大中丞第)'라는 글은 정부 관리의 저택이라는 의미고

두 번째 문 위에 쓴 글인 병원도련(兵垣都練)은 국방부 관리의 집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우도어사(右都御使)의 집이라 대문이 무척 크고 웅장하게 생겼습니다.

대문 아래 양쪽에 만든 문당 석고를 보면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리고 대문 바로 위의 호대(戶對)는 원형이 아니라 사각형이라 무관의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제일 많은 네 개나 되는군요.

이렇게 대단한 집이 대문부터 자랑하고 싶어 웅장하게 만들어 놓고는 좁은 골목 안에 또 하나의 대문을

감추어 두었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 생각되네요.

 

영벽 위에 지붕을 얹고 그 위에 용마루를 만든 방식은 그리 흔한 방식이 아니지만, 당시에 얼마나

세도를 부리며 살았는지 집의 모습만 보아도 알 것 같습니다.

보이시죠?

벽에다 만든 낭창한 용머리 말입니다.

저 용머리로 세상의 모든 기를 빨아들이려 하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사는 동안 얼마나 굵고 힘 있게 살았나 모르겠지만,

그러나 세월이 흐르니 사람도, 권세도 모두 아침 이슬처럼 잠시였나 봅니다.

지금은 오히려 더 흉물스럽고 안쓰럽게만 보일 뿐입니다.

권불십세 화무십일홍이라 했습니까?

그런데 대문을 걸어놓았네요.

입장료를 받고 대문을 걸어놓은 심보는 도대체 뭐 하자는 심보입니까?

 

이 마을의 위치는 그러니 산시성이 하남성과 마주하는 경계선 부근에 있답니다.

우리 부부는 후커우 폭포를 보고 오느라 늦은 밤에 도착했고 고속도로에서 내려소 걸었지만,

바로 이 마을로 오시려는 분은 타이위안(太原)에서도 직통으로 오는 버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뤄양에서도 쉽게 오실 수 있다 합니다.

물론 진청이나 양청에서도 수시로 버스가 다닙니다.

 

린펀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뤄양 방향이고 동남 방향으로 가다 보면 양청이라는 마을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차편을 수배하면 될 듯합니다.

양청에서 이 마을로 들어오는 公交는 없는 것 같고 3원짜리 작은 빠오쳐가 수시로 다니기에

접근성은 좋은 곳입니다.

아니면 진청이라는 시에 가면 쉽게 이곳으로 올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사당을 찾아왔습니다.

탕제묘(湯帝廟)는 이 마을의 가장 중요한 종교시설입니다.

원나라 시기인 800년 전에 지었다는 탕제묘는 지금은 무대건물과 아홉 칸 너비의 건물만 남아있습니다. 

비록 처음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금 남은 건물 규모로만 보아도 대단히 큰 건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절은 아래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돌난간을 따라 돌계단을 오르면 上院에 이르는데 정면에는 가로 아홉 칸 세로 여섯 칸 규모의

건물이 당당히 서 있습니다.

본건물의 양쪽으로는 각각 세 칸짜리 방이 양쪽으로 있습니다.

下院의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2층 건물이 있고 1층에는 주택이나 객실로 사용되는 방이 10개가 있습니다.

넓은 2층은 무대로 사용되었다 하네요.

 

건물의 귀퉁이에는 창고로 사용되었고 문밖으로는 종루와 고루가 있습니다.

탕제묘는 곽욕촌의 절로써 마을의 모든 행사는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합니다.

그러니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며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말이겠네요.

절이며 동시에 마을회관의 역할도 함께 했다는 다목적 건물입니다.

 

탕제묘로 들어가 왼편을 보면 서성문(西城門)이 보입니다.

곽욕촌의 서쪽 끝이라는 말이겠죠.

이 작은 마을에 성문을 보고 있노라니 살아가며 얼마나 외부와 단절하고 싶었나 느낄 수 있습니다.

조조가 백만 대군을 끌고 이곳을 들이닥쳐도 너끈히 몇 달은 버틸 정도로 튼튼하게 쌓아놓고 지냈습니다.

 

더군다나 이곳은 탕왕을 모신 사당까지 있어 어느 누가 감히 탕왕과 맞짱 뜨려고 덤비겠어요?

성문 밖으로 또 담장을 쌓아 적의 공격을 일차 제압할 수 있도록 규모는 작지만, 옹성을 만들었습니다.

서성문은 다른 이름으로 위의 사진에 보시듯이 영안문(永安門)이라고 합니다.

 

영안문의 의미는 영원히 편안해지라는 말인가요?

그말은 죽으라는 말이 아닌가요?

이 문의 이름은 당시 선서성 순찰사였던 오생이라는 사람이 글을 써주었다 합니다.

이 글 덕분이었나요?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살아왔던 사람은 정말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왔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요.

영원한 안정을 바라며 이 성벽을 쌓았던 사람이나 그 글을 써준 사람이나 지금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살며 100년도 살지 못하지만, 사는 동안 안전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세상 어느 곳에 살았던지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탕제묘는 상나라 황제인 탕왕을 모신 사당으로 마을의 안전과 가정의 행복을 빌기 위해 만든 곳이라 하네요.

그러니 이 마을이 농촌이라 많은 곡식을 수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탕왕을 모신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옛날의 제법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을 모신 사당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도 신사라고 비슷한 것이 많지요?

빌고 싶은 것도 많고 의지하고 싶은 것도 많은 민족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정말 고통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네!

지금 돌아앉았군!

돌아앉아 무얼 그리 고민하시나?

세상의 근심, 걱정을 모두 자네 혼자 안고 계시는가?

그렇군!!!

비싼 입장료는 받았고 보여줄 것은 별로 없고 무안하기도 하고, 고민스러워 얼굴을 돌리고 고민하고 있군...

그게 어디 자네 잘못인가?

돈 독이 잔뜩 오른 이 동네 사람들의 잘못이겠지.

 

원나라 시기인 지정 연간(1341-1368)에 창건한 사찰이니 무척 오래된 사당이네요.

명나라 시기인 정덕 연간에 확장하고 만력 연간에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리모델링과 중축을 한 곳이랍니다.

물론 처음 모습은 많이 퇴색되었겠지만, 아직 남아있는 모습은 당당합니다.

  

지붕은 무척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제일 위에는 기린으로 보이고..

그 아래는 양쪽으로 태양이 이글거리고...

용이 양쪽으로 입을 크게 벌려 태양을 삼키려는 모습입니다.

용이 죽으려고 환장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어요?

냅둬유~

 

탕제묘의 지붕은 무척 화려하게 만들어 제법 볼 게 많네요.

처마가 날렵하게 만들어졌고 화려한 색깔로 지붕을 덮었네요.

지붕 위에 조각 또한 독특하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에 볼 게 지붕 위라니... 나 원 참!!!

 

이곳은 그냥 아래에서만 둘러보지 말고 옆으로 난 성벽 오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두루 살펴보아야 마을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이 탕제묘와 서성문의 위치가 마을의 제일 높은 곳이라 이곳에 오르면 멀리 마을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탕제묘의 아름다운 지붕을 살펴볼 수 있는 일은 이곳에서의 수확입니다.

그런 말을 했다고 만족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직도 본전 생각이 나는 곳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저 도인의 자세는 무척 어려운 자세입니다.

그 노고를 생각해 칭찬하니 인제야 돌아 앉았군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물고기를 주어라!

한 끼를 맛나게 먹을 것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라!

평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지금 당장 입장료 수입이라는 달콤함에 빠져 그냥 만족한다면

앞으로 이곳을 찾아오는 여행자는 없을 것이다.

황성상부 입장료의 반을 받았다면 그 정도 가치를 느끼게 하면

저절로 여행자가 꼬리를 물고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