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869)
-
금편계곡(金鞭溪谷)
금편계곡(金鞭溪谷) 10리 화랑을 내려와 입구에서 금편계곡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10분정도 이동했다. 9시 40분이다. 이곳은 깊은 협곡이다. 우리에게 30분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금편계곡이란 임금님의 채찍처럼 긴 계곡이란 뜻이며 또 금편암이라는 바위를 계곡물이 휘감아 흐른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전체 길이가 7.5km의 긴 협계이다. 전부 다 보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주어지는게 아니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기암들도 범상치 않다. 계곡 속으로 들어가면 천여개의 봉우리들이 양쪽으로 우리 일행을 환영하기 위해 열병하듯 서 있고 수만가지 꽃과 나무들이 우거져 조용하고 호젓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이곳에서도 우리가 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 언제 찍었는지 ..
2008.12.13 -
난징로(南京路)...
상하이 젊음의 거리라는 난징로(南京路)... 우리는 나이가 들었어도 왔다. 혹시 주민증 까보자고 하면 한국에 두고 왔다고 하면 끝~~ 자동차는 일방통행으로 가로로만 다니고 세로로는 못 다닌다. 그러니 보행자 천국이다. 남경로 보행가라고 써 있구먼~~ 이곳이 지하철 1호선과 연결되는 출구이다. 이곳은 걸어서 다니든지 지금 보이는 우리나라 대공원에서 보이는 이런 전기차를 타고 다닌다. 이곳은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하다. 상하이의 젊은이들, 서양 외국인, 그리고 우리 같은 한국 관광객들... 그런데 우리는 왜 낮에 왔지? 이곳은 밤에 와야 하는데.... 밤에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는데.... 우리는 6시 비행기로 돌아간다. 지하철 2호선을 타면 바로 이곳으로 나온다.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난징로와 연결된..
2008.12.13 -
하노이 공항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가자
이 여행기는 초보 여행자의 첫 배낭여행기다. 버스를 타는 이유는? 싸니까... 또 바가지 택시와의 전쟁에서 해방되니까... 그리고 삐끼와의 전쟁과 호객행위에서도 자유로우니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여행 전문가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영어나 현지어를 몰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도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국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말 한 마디라도 하고 탔던가? 많은 관광객들은 공항에서의 첫 이미지로 그나라를 판단한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P.R이 무어냐? 그러니 미리 피할 것은 피하고 알 것은 알고 다니면 좋은 이미지만 간직할 수 있다. 내 돈 들여서 관광을 하며 왜 나쁜 기억들을 지니고 돌아가야 하나..
2008.12.12 -
부부는 이래야 한대요
부부는 이래야 한대요. 부부는 항상 서로 마주 보는 거울과 같은 거래요. 그래서 상대방의 얼굴이 나의 또 다른 얼굴이래요. 내가 웃고 있으면 상대방도 웃고 내가 찡그리면 상대방도 찡그린대요. 그러니 예쁜 거울 속의 나를 보려면 내가 예쁜 얼굴을 해야겠지요. 부부는 평행선과 같아야 한대요. 그래야 평생 같이갈수 있으니까요. 조금만 각도가 좁혀져도 그것이 엇갈리어 결국은 빗나가게 된대요. 부부의 도를 지키고 평생을 반려자로 여기며 살아가야 한대요. 부부는 무촌이래요. 너무 가까워 촌수로 헤아릴 수 없대요. 한 몸이니까요. 그런데 또 반대래요. 등 돌리면 남이래요. 그래서 촌수가 없대요. 이 지구 상에 60억이 살고 있는데 그중의 단 한 사람이래요. 얼마나 소중한... 이 세상에 딱 한 사람... 둘도 아니고..
2008.12.12 -
10리 화랑
한 10분 이동하니 내리란다. 10리 화랑 9시에 첫 번째 볼 곳인 10리 화랑이다. 이곳의 입구는 이런 상점옆을 지나간다. 이곳을 지나면 모노레일 타는곳이 나온다. 여기서 이런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간다. 왜 10리 화랑이냐? 골짜기를 모노레일로 타고 올라가는 거리가 10리라는 이야기다. 골짜기에서 바라..
2008.12.12 -
장부 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매헌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1918년 덕산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을 하나 이듬해 3.1 독립만세 운동을 보며 영향을 받고 식민지 교육에 반기를 들고 자퇴한다. 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유학자 매곡 성주록 선생의 문하생으로 한학을 배우며 이때 매곡으로부터 매헌이란 아호를 받게 된다. 이 기간에 매헌은 300여편의 한시를 지었다. 조국에서 야학의 개설을 통하여 문맹퇴치 운동을 하며 농민독본등 4권의 책을 저술한다. 이곳에는 매헌의 발자취가 순서대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제 우리는 사진을 통하여서 만이라도 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 보자. 아래 사진은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 국내에서의 활동내역이다. 점차 매헌에 대한 감시와 조사등으로 조국에서의 활동에 제한을 받자 계몽운동보다 독립이우선 되어야 한다고 ..
2008.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