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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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은 중국의 뿌리인가 봅니다.
원래 한중이라는 지역은 유방이 떠난 후 쥐 죽은 듯 지냈던 아주 조용한 도시였지요. 워낙 그렇고 그런 곳이라 중원에서도 자치를 인정할 정도였나 봅니다. 유비가 이제 기지개를 켜면 천하통일 운운할 때 여기를 다스렸던 사람은 장로(張魯)라는 사람이라 합니다. 다시 그때로 잠시 돌아가 보렵니다. 전쟁이 잦은 곳은 새로운 수령이 올 때마다 그들의 입맛을 맞추어야 하기에 민초는 무척 골치가 아플 겁니다. 여기 한중이라고 다르겠어요? 양평관 주변 한중 사람들은 전쟁으로 양평관 태수가 자주 바뀔 때마다 아주 골치가 아팠겠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에게 존경받은 인물이 왜 없겠어요. 조조도 유비도 모두 이곳을 거쳐 간 영웅들이죠. 물론 한 고조 유방도 여기서 칼을 갈고 일어선 사내라죠? 그러나 한중 사람들이 가장 높이 ..
2013.05.10 -
파릉교(灞陵橋)
박물관 구경을 끝내고 관우가 조조에 의탁했던 것을 정리하고 유비가 있는 곳을 찾아 떠났다는 파릉교(灞陵橋)로 갑니다.조조는 관우를 보내지 않으려고 피객패까지 방 앞에 걸어두며 일부러 만나주지 않았지만, 관우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지런히 뒤를 따라 바로 오늘 구경할 파릉교에서 만날 수 있었다고 하지요? 박물관에서 시내버스 편을 물어보니 앞으로 난 큰길을 따라가다가 5번 버스를 타라고 알려줍니다.우리 부부의 여행은 늘 이렇게 저렴하고 안전한 시내버스를 타고 구경다닙니다. 5번 버스는 바로 중간에 갈아타는 일 없이 파릉교가 있는 경구 입구까지 갑니다.이제 버스를 내려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박물관에서 나온 시간이 오후 4시 16분...사실 쉬창 박물관은 구경할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그리고 버스를 타고 여기..
2013.02.20 -
파란만장 조조의 삶
위의 사진은 간웅수종(奸雄壽終)이라는 벽화그림입니다. 그 제목이 의미하는 말은 간웅의 목숨이 종 쳤다는 말이 아닐까요? 간웅이 죽었다면 큰 잔치라도 벌여야 하지 않나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어야 하고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조조의 죽음을 애통해합니다. 간웅이라고 욕을 하며 그의 죽음을 애통해한다 하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네요.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간웅이라는 말로 욕보일 필요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아! 그렇군요? 조조의 가족과 친인척, 그리고 조조 아래 한 자리씩 차지하고 호의호식하며 살았던 사람이 조조의 죽음이 슬퍼 우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변할까 봐 걱정되어 우는 것이라고요? 내 처지가 지금보다 못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에 슬퍼서... 세상에 올 때는 나 혼자 울었..
2013.02.16 -
승상부 의사청(議事廳), 부시루(賦詩樓)에서...
영현당 안에는 그동안 조조와 동고동락하며 목숨을 함께 한 문신과 장수의 모습을 한 사람씩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는 이 모든 사람을 합해도 관우나 장비 한 사람보다도 못하게 취급했습니다. 이게 바로 삼국지연의를 지은 나관중의 의도였는지 모릅니다. 어찌 이들의 명석한 두뇌가 공명 한 사람만도 못하고 용맹한 장수들이 모두 모여도 장비 한 사람만도 못하겠어요. 소설이나 영화란 이렇게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하나 봅니다. 곽가, 사마의, 순욱, 정욱, 진림, 순유, 종회, 진군... 이 모든 사람이 공명의 명성에 가려 출연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잖아요. 이들이 바로 촉한의 다섯 배나 되는 많은 사람을 원만히 다스린 이들이 아니겠어요? 영현당 안에는 이렇게 ..
2013.02.15 -
조승상부
오늘은 조승상부를 구경합니다. 춘추루 뒤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조조가 승상으로 있을 때 관청인 조승상부가 보입니다. 그 뒤로는 옛날 허주부위(許州府衛)라는 관청건물이 있습니다. 그 건물은 열쇠로 단단히 잠가놓아 걸어 잠근 상태로 무엇을 보여주려고 만들었나 모르겠습니다. 멋진 패방이 보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조조의 석상이 있습니다. 천하를 모두 품고자 하는 그런 모습으로 보입니다. 생전에는 천하 통일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황제보다 더 황제 짓을 하고 살다 갔기에 후회도 여한도 없을 겁니다. 만약, 아직도 이루지 못한 게 있다고 한다면 그건 조조의 탐욕일 뿐입니다. 조조 석상이 있는 곳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조승상부로 들어가는 문이 보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서 조조가 칼을 든 손으로 친절하..
2013.02.14 -
조조가 쉬창(許昌)으로 간 까닭..
춘추루에서 관우를 만나고 다시 걸어서 조승상부로 갑니다. 조승상부... 조조가 황제를 이곳에 모시고 원래 머물던 곳을 헌제에게 양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새로 승상부라고 지어 그곳에 머물렀지요. 두 곳은 그리 먼 곳이 아닙니다. 걸어서 가도 금방 도착하네요. 지도를 한번 볼까요? 어때요? 지도를 보시니 찾아가기가 너무 쉽지요? 일단, 춘추루를 다시 나와 뒤쪽인 북쪽으로 그냥 쭈욱 올라가면 됩니다. 멀리서 조조가 우리의 방문을 반기고 있습니다. 아! 어쩌면 좋겠습니까? 천하를 가슴에 품은 저 위풍당당한 모습을... 간웅이라고요? 컥! 어디 앞모습만 위풍당당이라고 할 수 있나요? 뒷모습에서도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나요? 팬클럽 회원들이 무척 많았겠어요. 그쵸? 쉬창에서의 조조는 간웅이 아니라 영웅이었습니다..
2013.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