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5.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영현당 안에는 그동안 조조와 동고동락하며 목숨을 함께 한 문신과
장수의 모습을 한 사람씩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는 이 모든 사람을 합해도 관우나 장비 한 사람보다도 못하게 취급했습니다.
이게 바로 삼국지연의를 지은 나관중의 의도였는지 모릅니다.
어찌 이들의 명석한 두뇌가 공명 한 사람만도 못하고 용맹한 장수들이
모두 모여도 장비 한 사람만도 못하겠어요.
소설이나 영화란 이렇게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하나 봅니다.
곽가, 사마의, 순욱, 정욱, 진림, 순유, 종회, 진군...
이 모든 사람이 공명의 명성에 가려 출연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잖아요.
이들이 바로 촉한의 다섯 배나 되는 많은 사람을 원만히 다스린 이들이 아니겠어요?
영현당 안에는 이렇게 한때 세상을 주름 잡고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며 조조와 함께
천하를 누비며 달렸던 무장들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무장들 위주로 살펴봅니다.
이번에는 16무장이라는 제목으로 싸움꾼들만 모았습니다.
하후돈이 제일 먼저 등장했습니다.
저 숭악한 놈 보세요.
마치 야간업소에서 입으로 불을 뿜는 불 쇼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차라리 불 쑈하는 모습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화살에 박힌 자기 눈일을 빼내 먹는 엽기적인 몬도가네의 모습이죠.
조흥, 하후연, 우금, 조인, 장료, 악진, 이전, 서황, 장합 등
무장들은 아무래도 삼국지가 늘 전투장면으로 채우다 보니 그 장면에서는 주연으로
대우받기에 비록, 악의 축이라는 조조의 장수들이지만, 제법 짭짭한 개런티에
화면 노출이 많다 보니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이름들이네요.
그러나 이 친구들 다 모여도 인기 하나는 꼴통 장비보다도 못합니다.
왜?
작가가 그들의 CEO를 더럽게 그렸으니까요.
한 사람을 미화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일 놈을 만들어야 더 폼 나잖아요.
세상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이렇게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네요.
조조가 워낙 능력 위주로 사람을 선택했기에 인재를 전국적으로 뽑았다 합니다.
그다음 건물이 의사청(議事廳)이라는 건물입니다.
조조가 어떤 결정을 할 때 늘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결정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곳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했다는 자랑질로 보입니다.
위의 사진은 바로 관도대전을 앞두고 민주주의에 입각한 토론 장면입니다.
누구보다 똑똑한 조조는 이렇게 큰 전투를 앞두고 모든 사람이 모여 의견을 개진하게 했으며
그 의견을 받아들여 전투에 임합니다.
유비가 관우 원수 갚겠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독단으로 결정하고 오나라로 출병하려다
장비마저 죽게 했으며 자신도 육손의 화공에 빠져 불고기가 될뻔하며 창피하고 쪽팔린다고
돌아오지도 못하고 백제성에서 씩씩거리며 고민하다 죽음을 맞이한 유비와 대비되는 점이죠.
조조는 늘 이곳에 문신과 장수를 모이라 하고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인 주요 이슈가 있으면
이렇게 민주주의적인 토의를 거쳐 일을 신중히 결정했다 합니다.
이는 권력이 있는 자가 혼자 독단으로 모든 일을 처리했던 것을 많은 사람의 의견을 구하고
다수결의 원칙인 민주주의의 방식을 택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당시로는 경천동지할 일이 아니겠어요?
이게 보여주기 위한 쇼라고요?
그럴 수 있겠네요.
비밀보다는 공개적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간웅이라는 조조가 이렇게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실천한 사람이라니...
또 佳人을 깜짝 놀라게 하네요.
좌석의 배치는 조조를 중심으로 보면 조조의 오른쪽에는 무장들이고
왼쪽은 책사들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좌청룡 우백호인가요?
오늘 이곳에서 조조가 주관하는 회의가 열리나 봅니다.
조조는 함께 근무했던 사람은 무조건 의견을 내도록 늘 아이디어 공모를 했고
이렇게 큰일을 앞두고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결정했다는 것은 조조의 장점입니다.
아마도 아주 중요한 군사작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가만히 서서 이들의 말을 들어봅니다.
혹시 중요한 작전회의면 나중에 공명을 만나 알려줄까 하고요.
중국어도 모르는 佳人이 웃긴다. 그쵸?
佳人이 왜 손을 들고 있느냐고요?
조조가 하문하니 여러 사람이 손을 드는 것 같아 그냥 들었습니다.
그래야 중간이라도 가니까요.
하지만...
佳人이 중국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습니다.
佳人의 여행은 늘 이렇게 98%가 부족한 여행입니다.
그래서 그냥 조조와 그 일행에게 독도는 한국의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만 알리고 말았습니다.
저들도 모두 佳人의 말을 알아들었을 겁니다.
왜?
한국어 외에도 영어와 중국어로도 써서 들었으니까요.
마지막 건물은 부시루(賦詩樓)라는 건물입니다.
당시 사회는 썩고 부패해 나라는 황건기의라고 농민이 농기구를 버리고 창칼을 들고 몰려다니며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일삼았을 때이며 많은 군벌은 서로 자기가 영웅입네 하며 하루도
쉬지 않고 패거리를 몰고 다니며 싸움질로 세월을 보내던 시기였잖아요.
그런데 조조가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생기는 일도 아닌 문학에 매진하다니요.
조조만 한 권력자가 있으면 나와보라 하세요.
어찌 보면 조조라는 사람은 진정한 영웅이며 문화인입니다.
모두가 전쟁만 생각할 때 조조는 전쟁말고도 예술도 생각했습니다.
그 시대 진정한 로맨티스트 조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는 조조 시대에 꽃을 피웠던 건안문학을 알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그리고 부시루 건물 뒤의 양쪽으로 대형 죽간을 만들어 전시했네요.
물론, 대나무가 아니고 그냥 나무지만, 죽간의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건안칠자의 모습입니다.
건안시기에 새로운 조류의 문학을 발전시킨 일곱 명의 문학인입니다.
이는 조조로부터 시작해 조조의 두 아들을 삼조라고 일컫고 이를 계승 발전시킨
인물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건안문학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여기 그 유명한 칠보시가 있습니다.
煮豆持作羹 漉豉以爲汁 (자두지작갱 녹시이위즙)
萁在釜下燃 豆在釜中泣 (기재부하연 두재부중읍)
本自同根生 相煎何太急 (본자동근생 상전하태급)
콩을 쪄서 마실 죽을 만들고, 콩을 삶아 먹을 즙을 만든다.
콩깍지는 가마솥 아래서 불타고, 콩은 솥 안에서 흐느끼는구나.
본디 같은 뿌리에서 나왔건만, (삶아 댐이) 어찌 이리 급하단 말인가?
조식은 조조의 셋째 아들인데 재주가 워낙 출중해 아버지인 조조에게서 총애를 받고,
형님인 조비에게서는 심한 질시와 견제를 받았다고 하지요.
그게 모두 너무 뛰어났기 때문일 겁니다.
佳人처럼 모자란 듯 살아가면 이런 걱정 하지 않아도 됩니다.
조조가 죽은 뒤 조비는 위왕을 세습하고 결국, 선양을 받아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문제라 일컬었는데 왕위에 오른 후에도 자신보다 뛰어난 조식이 걱정되어
해치울 기회만 엿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비는 조식에게 네가 그렇게 시에 뛰어난 재능이 있으면 형제라는 뜻이
들어가되 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명령하며
만약, 그동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칙명을 어긴 이유로 중벌에 처한다는
터무니없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이때 조식이 지은 시가 바로 칠보시인데, 조비는 이 시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동생을 놓아주었다고
하는데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한탄해야 하는데 늘 뛰어난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동물인가 봅니다.
순수 문학을 정쟁에 이용했다니...
여기에 칠보시를 외우며 일곱 걸음 걸어가면서 제대로 외우는 이벤트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칠보시 앞에 서면 옆의 카메라가 선 사람의 얼굴을 찍고
앞의 스크린에 본인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일곱 걸음을 앞으로 걸으며 그 안에 칠보시를 모두 외워야 합니다.
물론, 佳人은 외우지 않고 일곱 걸음만 걸었지요.
흥!!!
외운들 중국어로 말할 수 있겠어요?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佳人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요.
지금은 우리야 놀이 삼아 외워보는 시지만, 당시 조식은 이 시가
자신의 생명을 좌우하는 시였습니다.
일곱 걸음 안에 즉흥적으로 시를 짓고 만약 짓지 못하면
처벌을 하겠다는 형은 형도 아니고 원수지요.
얼마나 더 가져야 속이 시원하겠습니까?
얼마나 더 뺐어야 마음이 흡족합니까?
형제간이라도 권력이 걸리면 남보다도 못한가 봅니다.
아니? 철천지 원수보다도 못한 사이인가 봅니다.
꺼진 불만 다시 보면 아니 아니 아니되옵니다.
건넌방에서 자는 형도 다시 봅시다.
여기 승상부 건물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이곳은 조승상부로 조조가 승상으로 있을 때 업무를 보았던 곳이잖아요.
그런데 주요 건물 세 곳의 의미는 사실 관청의 성격이 아니고 조조의 성향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당시 아홉 시 뉴스에 매일 첫 뉴스가 조조의 동정을 알리는 뉴스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땡조 뉴스라고 시중에 소문이 돌았다 합니다.
황제의 동정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말입니다.
사실, 황제는 뉴스거리도 없습니다.
매일 밥먹고 놀고, 또 밥먹고 놀다가 저녁 먹고 그리고 어두워지면 주색잡기에 들어갔는데
그게 매일 되풀이 되다 보니 딱히 뉴스로 전할 게 없었잖아요.
뉴스에 꼭 한 꼭지라도 올려야 한다면, 어제와 같은 스케쥴이라고 했을 겁니다.
조조가 승상이 된 해가 208년이던가요?
이곳은 조조가 황제를 모셔와(사실 납치라 해야 하나요?) 이곳을 도읍으로
정했기에 허도라고도 한다고 한다네요.
위의 조각을 보면 절대로 납치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조조가 모시고자 하는 정성이 눈물겹게 그려졌어요.
남들은 쇼라고 하지만, 조조는 진심이었답니다.
왜?
당시 뤄양은 동탁이 시안으로 갈 때 모두 불태워 폐허뿐으로 이슬조차 피할 수 없는 곳으로
그곳에 황제를 모신다는 일은 조조는 불충이라 생각하고 좀 더 편한
쉬창으로 모시려고 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25년간 여기 쉬창은 도읍으로 있다가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유방이 세운 한나라를 절단 내고
조 서방의 나라를 세우며 다시 낙양으로 돌아갈 때까지 여기 쉬창은 한나라의 도읍으로 있었지요.
조조...
사내의 처지에서 알면 알수록 매력있는 사내입니다.
위의 사진은 가장 조조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고 알려진 그림입니다.
그를 지근거리에서 만나보니 남자로서 호감이 가는 사내네요.
이러다간 조조의 팬클럽에 가입할 것 같습니다.
우짜면 좋겠습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많은 사람이 조조를 간웅이라 욕을 합니다.
과연 조조가 간웅일까요?
조조를 알면 알수록 간웅이라기보다 천하의 영웅으로 생각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佳人만의 엉뚱한 생각일까요?
당시 조조처럼 살지 않았다면 깊은 산 속에 들어가 고사리 나물로 연명하며 살았을 것 같습니다.
'삼국지 기행 > 삼국지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조... 간웅인가, 영웅인가 (0) | 2013.02.18 |
---|---|
파란만장 조조의 삶 (0) | 2013.02.16 |
조승상부 (0) | 2013.02.14 |
조조가 쉬창(許昌)으로 간 까닭.. (0) | 2013.02.13 |
한비어천가 삼국지연의 (0) | 2013.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