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0. 08:00ㆍ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원래 한중이라는 지역은 유방이 떠난 후 쥐 죽은 듯 지냈던 아주 조용한 도시였지요.
워낙 그렇고 그런 곳이라 중원에서도 자치를 인정할 정도였나 봅니다.
유비가 이제 기지개를 켜면 천하통일 운운할 때 여기를 다스렸던 사람은
장로(張魯)라는 사람이라 합니다.
다시 그때로 잠시 돌아가 보렵니다.
전쟁이 잦은 곳은 새로운 수령이 올 때마다 그들의 입맛을 맞추어야 하기에
민초는 무척 골치가 아플 겁니다.
여기 한중이라고 다르겠어요?
양평관 주변 한중 사람들은 전쟁으로 양평관 태수가 자주 바뀔 때마다
아주 골치가 아팠겠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들에게 존경받은 인물이 왜 없겠어요.
조조도 유비도 모두 이곳을 거쳐 간 영웅들이죠.
물론 한 고조 유방도 여기서 칼을 갈고 일어선 사내라죠?
그러나 한중 사람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인물은 유방이나 유비나 조조가 아닌
예상외로 장로와 위연이라 합니다.
북벌하며 자주 삼국지에 등장한 유명한 城인, 양평관은 191년에 장로가
처음 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로는 이곳에서 25년 동안 다스렸다는데 당시 법이 종교적인 것이어서
큰 죄를 지어도 혼자 단죄했다고 하네요.
삼국지의 서막이라는 황건적의 난과 아울러 민초의 봉기였던 오두미도(五斗米道)라는 게
바로 이곳에서 시작했다네요.
장로는 할아버지 장릉(張陵)이 창시한 일종의 도교인 오두미도를 전파한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두미도라는 것은 장릉이 처음 시작할 때 쌀을 번화가에 가져다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먹고 싶은 만큼 가져다 먹으라 하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먹은 만큼
다시 가져다 놓거나 돈을 내도록 했다고 합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도 이렇게 사랑의 쌀독을 놓아두고 쌀을 가져가게 하지만,
우리와 다른 점은 한중의 민초는 우선 가져다 먹고 난 후 나중에 갚도록 했다는 점일 겁니다.
그래서 쌀 다섯 말이라는 말인 오두미도라는 사용되었나 봅니다.
왜?
무상지원은 사람을 게으르게 하며 오히려 점점 더 나태하게 한다는 겁니다.
당시 무척 힘든 시기에 이런 일을 한 장노의 할배는 정말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네요.
여기에 감동한 주민은 하나 둘... 오두미도를 믿기 시작했고, 장로를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이곳 사람들이 존경한 또 한 명의 인물은 위연입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고호두교에서 된장 구분법에 실패하고 "나를 죽일 자 누구냐!"라고 큰소리치다가
한칼에 죽었던 위연.
유비는 한중을 차지한 후 마초와 위연에게 성을 맡겼답니다.
위연은 촉한이 양평관을 차지한 이후 첫 태수로 취임했다 합니다.
그는 생긴 모습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데 긴요한 농업 위주 경작이나
잔도 등의 길을 많이 냈다고 하네요.
후에 제갈량이 북벌에 나설 때도 위연이 모두 만들어 놓은 잔도를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죠.
마지막 공명이 죽은 후 퇴각하며 적의 추격을 막기 위해 잔도에 불을 지른 자도 위연입니다.
그러니 한중사람들은 당연히 먹고살게 해 준 위연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요.
마등의 죽음으로 그의 아들 마초와 조조가 바로 이 부근에서 서로 맞붙어 조조가
혼이 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렵니다.
두 세력의 싸움은 조조의 승리로 막을 내리자 바로 이때 두 세력 사이에 있는 한중의 사군인
장로가 자기 지역으로 불안해하는 서량의 주민이 몰려들자 이를 기화로 조조의 침공이
두려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때는 마초와 그의 오른팔인 방덕도 함께 한중의 장로에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였다니
서천을 넘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조조는 한중을 거친 곳이고 오가기도 불편한 곳이라 자치를 인정하고 있었지요.
먹을 게 없다고 계륵이라고 할 정도로 한중은 지역적으로 험난한 곳으로 중원에서 볼 때는
좋은 곳이 아니었나 봅니다.
물론, 여기는 이곳에서만 지내기는 오히려 더 좋은 곳이라 하네요.
단지, 외부와 서로 교류하기는 당시로는 길이 험해 나쁜 곳이었겠지만...
마등과 조조의 두 세력 사이에 완충적으로 생각했기에 전쟁 없이 지냈지만,
유비가 익주로 들어오며 이제부터는 세력의 균형이 허물어지며 불안했나 봅니다.
이래서 한중의 장로는 좀 더 안전해 보이는 바로 이웃인 서천을 넘겨다보기 시작합니다.
당시 촉은 유장이라는 사람이 다스리고 있던 곳으로 한나라의 황족이라는 유 씨였던 모양입니다.
이게 나중에 유비가 종친이라고 머뭇거렸던 이유일 겁니다.
이렇게 서천을 넘겨다 보다가 오히려 유비를 서천으로 끌어들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결국, 서천으로 마초에 군사를 주어 들어갔지만, 공명의 이간계에 말려
마초는 유비에 투항함으로 이 전술은 실패로 끝이 납니다.
마초는 나중에 죽어 바로 한중에서 가까운 면현에 있는 공명의 무덤 가까운 곳에 묻혔습니다.
그는 명성에 비해 그렇게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 했지만, 촉한의 오호상장 중 한 명으로
많은 사람이 존경한다고 하네요.
그 후 서천에 박힌 돌인 유장을 빼고 굴러 온 돌인 유비가 들어앉자 그 세력이
점차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조조가 촉의 길목이 되는 한중을 그냥 버려둘 수 없다는 판단으로
한중을 공략하게 되므로 고래 싸움에 가운데 새우 꼴인 한중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중이라는 도시는 험준한 산속에 묻힌 분지형태라 그 자체의 규모는 무척 작아
늘 주변의 시달림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결국,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이곳으로 진격하고 한중의 장로는 한중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양평관에 군사를 보냈지만, 금새 조조에게 함락되고 나중에 한중의 본거지인
남정성을 포기하고 파중으로 피신하게 되었다네요.
그러니 피신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은 나라였던 한중이 조조의 대군에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결국, 한중은 조조의 손에 떨어지며 막을 내립니다.
이때 한중에 들어온 조조가 장로가 도망가며 남기고 간 물품으로 보고 놀랍니다.
모든 물품에 명세서를 첨부해 봉인하고 장로는 떠났지요.
이에 조조도 모든 물품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리는 살벌한 전쟁 중에
아름다운 일도 있었답니다.
안면 몰수하고 사는 유비와는 아주 다른 결정입니다.
이렇게 조조의 위는 촉의 턱밑까지 들어와 진을 치니 촉은 이제 자리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차에 불안해 지지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오를 움직여 위의 시선을 아래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를 움직이려면 뭔가 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오에게 돌려줄
형주를 위시한 주변의 땅입니다.
불법 점거하던 것을 사실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입니다.
그러니 돌려주되 동오가 합비를 공략하면 관우가 버티는 형주 3군을 돌려준다는 말이지요.
지금 돌려주지 못하는 이유는 관우가 갈 곳이 없기 때문이고 만약, 합비를 공략해 주면
조조는 한중의 군사를 합비로 돌릴 것이고 그 사이 지금 한중을 공략해
그 땅을 관우에게 주면 된다고 합니다.
어때요?
그럴듯합니까?
이렇게 큰 딜이 성공하게 됩니다.
형주를 돌려줄 의도도 없으며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위나라의 아래를 치게 하는
나쁜 사람이 유비지요.
물론, 머리는 공명의 머리에서 나온 거지만...
그러나 순박한 오는 그 말을 믿고 지난번 적벽에서처럼 또 군사를 동원해
시킨다고 그대로 했지요.
죽어나는 군사는 동오의 군사고 그 달고도 맛난 열매는 늘 유비가 날름 먹잖아요.
드디어 어린아이처럼 착하고 순진한 동오는 군사를 일으켜 합비성을 공격하나 실패하게
되고 그러나 실패했지만, 조조는 두 곳을 전쟁터를 만들기 어렵지요.
서천은 지형도 험한 곳으로 지금 당장 공략하기 쉬운 곳이 아니고 또 촉이 웅크리고 있는
상태라 당장 공격받는 합비성으로 주력군을 내려보내는 게 우선순위라 판단합니다.
여기에는 조조의 마음에 남은 커다란 응어리가 바로 오와의 적벽대전의
개망신이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드디어 조조는 40만 명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향합니다.
이렇게 오와 위는 또 밀고 밀리는 전투를 하며 결국, 양쪽 모두 큰 타격만 입고 맙니다.
유비는 그냥 팔짱만 끼고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두 마리 개가 싸우면 그 사이에 떨어진 뼈다귀만 물고 오면 되니까요.
왜 적벽에서도 싸움을 붙여놓고 산에 올라 불놀이를 구경했던 사람이 유비와 공명이었잖아요.
둘 다 도움이 되지 못하면 휴전에 돌입하지요.
동오는 황제가 있는 중앙정부에 매년 공물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휴전이란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싸움의 승자는 유비의 서천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조조는 동오와의 전투를 끝내고 절반의 성공을 거둔 후 허도로 돌아가
모처럼 편안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한중은 하후연에게 맡기고...
위와 서천의 촉한 사이에 점차 전운이 감돌고 위의 장수는 촉을 먼저 공략하며
작은 재미를 보게 되었지만, 황충과 엄안 두 늙은 장수의 재치로 위를 물리치고 위의 식량기지인
천탕산까지 촉의 수중에 떨어지니 드디어 한중의 앞날은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가 됩니다.
패전한 위나라 군사는 하후연이 머물고 있는 정군산으로 모입니다.
정군산은 그야말로 군사의 요충지입니다.
여기만 무너지면 한중은 바로 손안에 들어오지요.
험한 산악지대가 바로 정군산에서 끝나고 한중까지는 평야로 한걸음에 내달릴 수 있는 지형입니다.
우리가 다녀와 잘 압니다.
아~ 정군산...
후에 공명이 죽으며 자기 시신을 묻어달라고 한 곳이 정군산이고 북쪽을 향해 시신을
안치하라고 한 이유는 바로 북벌을 시작했던 곳이고 끝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는 곳이기에
죽어서도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지켜보겠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이제 용기를 얻은 유비는 10만의 군사로 드디어 한중 공략에 나섭니다.
처음으로 익주에 프랜차이즈를 정하고 치르는 전투라 가슴 설레지 않았겠어요?
이미 천하를 가슴에 품은 그런 기분이었을 겁니다.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진군할 때 제법 틀도 잡혀 폼도 나더군요.
제대로 연고도 있고 유니폼도 폼나게 갈아입고 전투에 임하니
사기가 무척 높았겠어요. 그쵸?
이 소식을 들은 조조도 한중의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포기할 수 없기에 40만의 군사를 동원해
한중으로 향하고 군사 숫자로만 보면 싸움이 되지 않지만, 여기는 평지에서 싸우는 곳이 아니라
그야말로 산세가 험한 곳이라 전략이 필요한 지역이잖아요.
미처 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정군산은 함락되고 위군은 다시 한수까지 후퇴합니다.
군사가 많으면 전투에 우선 유리한 처지에 있지요.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식량확보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식량이 보관된 북산에 황충 장군이 기습함으로 모두 불태워버립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되면 조조가 아무리 많은 군사를 끌고 왔다 하더라도
촉한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먹어야 힘이 나고 힘이 있어야 싸울 게 아니겠어요?
이렇게 시작된 제대로의 전투에서 조조는 전략의 미스로 점차 퇴각하고
결국, 한중의 성인 남정성까지 빼앗겨버리고 양평관으로 후퇴합니다.
이제 촉의 공명은 양평관의 숨통을 조이기 위해 양평관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폐쇄하여
식량 운반을 저지하고 산에 나무를 불 질러 버려 땔감조차 구하지 못하게 합니다.
아주 말려 죽이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이러면 고립된 조조군은 환장합니다.
조조가 장로를 평정할 때 "한중은 천하의 지옥과도 같은 곳, 사곡으로 가는 오백 리 길은
동굴과도 같아 군사가 갈 곳이 못 되느니라"라고 말한 곳으로 양수가 미리 조조의 마음을 읽고
다음날 퇴각명령을 내리며 군사를 돌렸다고 하며 조조는 그런 양수를 군령을 어긴 죄로
처형했던 일도 있었지요.
너무 잘났기에 똑똑해서 죽은 귀신이 바로 양수가 아닌가요?
너무 잘나고 똑똑해도 화를 입습니다.
덜수같은 佳人처럼 많이 모자란 듯 살아가세요.
그래야 가늘고 길고 그리고 오래도록 행복합니다.
그리고 늘상 허점 투성이라 늘 빈 곳이 있고 그곳을 하나씩 채워가는 행복도 느낄 수 있잖아요.
남정은 전한의 고조 유방이 항우에 대항해 거병을 한 곳이기도 한 장소입니다.
아주 험난한 지형을 이용해 여기에서 유방은 숨어서 천하를 삼킬 힘을
비축했던 곳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후한 말, 이곳에 장로가 오두미도 왕국을 세우지만, 215년 조조에게 항복했던 곳입니다.
219년에 유비가 하후연을 이기고 한중을 차지하자, 유방을 따라 한중왕에 즉위합니다.
이는 유비가 한족의 정통성을 부각하려는 일종의 시위처럼 생각되는 마케팅의 승리죠.
이후 한중은 촉한의 군사 중심지가 되어, 제갈량은 북벌을 시작해 계속 한중에 머물며,
두 번 다시 성도에 돌아가지 않고 주로 연락을 취할 때는 편지로만 한 곳이지요.
따라서 한중이라는 곳은 공명이 북벌을 하며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중요한 곳입니다.
유비를 따라 공명도 한중을 중시했다는 말은 조조의 위나라를
악의 축으로 만들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우리는 아주 재미있는 작가의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조조는 이곳을 계륵이라 했어요.
한나라의 시작이며 漢의 어원인 이곳을 말입니다.
작가가 조조 죽이기에 앞장섰다는 말입니다.
한의 원천을 비하하게 했다는 의미이잖아요.
한족을 위한 한비어천가인 삼국지에서 조조는 사악한 무리로 전락하게 한 말 중의
하나가 한중을 우습게 보고 계륵이라는 말을 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한중이라는 곳은 한족의 성지나 마찬가지인데요.
한중에서 가만히 귀 기울여 봅니다.
군사가 내지르는 함성, 말들이 내달리며 내는 말발굽 소리, 창칼 부딪히는 소리...
이번 여행에서 수시로 듣는 즐거운 환청입니다.
환장하겠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함께 여행 중인 다른 사람은 삼국지가 별로여서 전혀 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는데
왜 佳人만 이런 소리가 들립니까?
지금 우리 부부는 전장의 한가운데 서서 과거를 돌아가 걷는 중입니다.
눈을 들어 산허리를 올려다보니 그곳에 매복한 군사가 인사를 하고 성문 안에서는
공명이 학우선을 흔들어 줍니다.
골목길 돌아서니 장비가 따거라 하며 아는 체 합니다.
여러분 어쩌면 좋겠습니까?
우쒸~ 佳人 눈에만 이런 게 보이고 귀에만 들립니다.
제가 점점 이상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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