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후(7)
-
공왕부 마지막 이야기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우리나라에서 투 코리언스가 불었던 고시조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벽오동은 보이지 않고 특이하게도 대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이니 그러니 대나무처럼 권력이 바래지 않고 늘 푸르게 독야청청하기를 바라고 심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리 권력의 바람이 불어도 대나무는 휘어질망정 부러지지는 않습니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간에도 붙고 쓸개에도 붙고 말입니다. 이리 불면 이리로 휩쓸리고 저리 불면 자리로 휩쓸리며 늘 권력의 주변에 머무르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다 바람이 그치면 다시 대나무는 우뚝 서서 강인한 척 자기 힘을 과시합니다. 공왕부는 베이징에 있는 수십 개의 왕부 화원 중 가장 규모가..
2013.01.03 -
서태후와 만두, 그리고 이화원.
10월 17일 여행 7일째 오늘은 이화원을 가보렵니다. 이화원은 중국 최대의 황실 정원이라고 했나요? 만약, 이화원을 구경하고 오후에 시간이 나면 그 옆에 있다는 원명원에도 다녀오렵니다. 오늘이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밤에는 미리 기차표를 예약한 대로 내몽골의 성도라는 후허하오터를 향하여 갈 예정입니다. 어제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구부리라는 만두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서태후 마네킹을 이용한 선전을 하는군요. 이 가게는 원래 톈진에 있었던 만두가게라 하더군요. 그런데 당시 서양 연합군과의 혼란한 격동기에 우연히 서태후가 톈진의 구부리라는 만두가게를 들렸던 모양으로 워낙 식탐이 많고 미식가였던 서태후는 그곳에서 만두를 맛본 후 그만 그 맛에 반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전쟁을 피해 시..
2012.01.12 -
서궁의 슈퍼스타 자희태후
서궁은 자금성 북서쪽에 있습니다. 서궁을 빛낸 서궁의 최고 스타는 바로 서태후가 아닐까요? 그녀는 자희태후였으나 서궁에 머물렀다고 서태후라 불렀고 황후였던 자안 태후는는 동궁에 머물렀기에 동태후라 부름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서궁이 배출한 세기의 슈퍼스타 서태후를 소개합니다. 서태후와 함께 찍은 주변 여인들을 보니 서채후를 닮아 미인은 하나도 없네요. 이게 중국 여자의 아름다움의 기준인가요? 주변에 이렇게 아첨하는 사람으로 둘러싸여 평생을 자기 입과 몸에 치장하는 것으로 나라 곳간을 거덜 낸 여인이 바로 이 여인이 아닐까요? 우리말에도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했나요? 바로 서태후를 두고 이른 말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로는 74세까지 장수했던 모양입니다. 청나라는 강희, 옹정, 건륭을 거..
2011.12.07 -
권력의 화신 서태후 7 - 무식해서 행복합니다.
동치 13년(1875) 12월 말, 드디어 재첨이 황위를 계승하고 연호를 광서(光緖)로 정합니다. 이틀이 지나자 자희는 "비록, 황제가 있으나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작금의 풍전등화와도 같은 시국을 헤쳐나가기 어렵다. 할 수 없이 과인이 당분간 수렴첨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모든 백성이 원하는 일이고....." 하기 싫은 일도 많은 백성이 원하고 대신들이 원하면 해야 합니다. 네 하시고 싶으시면 하셔야죠. 또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습니다. 권력은 나누어 가질 수도 없구요. 권력의 화신인 자희에게 심정이 온화하고 착한 여인인 자안태후도 거추장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래도 정부인이었는데 함부로 할 수는 없지요. 물론 자안태후도 이미 자희의 행동을 보았기에 자신이 개털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
2011.08.25 -
권력의 화신 서태후 6 - 서태후, 날개를 달았습니다.
11월 1일 자희와 황태후인 자안은 양심전, 동난각에서 수렴청정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양심전은 옹정제부터 8대에 걸친 황제의 집무실이며 수렴청정을 했던 곳이고 마지막 황제 푸이가 퇴위서에 서명을 했던 곳으로 청나라의 역사를 모두 겪은 건물이 되었습니다. 서태후라고 부르는 이유도 자희태후가 기거했던 곳이 바로 자금성의 서쪽에 있는 서륙궁에 있는 저수궁에서 기거를 했기 때문입니다. 채화전은 개인 식당으로 사용했고 양심전에서 수렴청정을 하며 서쪽에서 놀았다고 서태후라 부릅니다. 반대로 자안태후는 동쪽에서 기거하였기에 동태후라고 불렀답니다. 노는 물이 다르기에 부르는 일 또한 달랐지요. 그리고 재원은 처음 정했던 연호인 기상(祺祥)을 동치(同治)라고 바꾸게 되는데 동치란 같이 다스린다는 의미로 두 궁의 황태후와..
2011.08.23 -
권력의 화신 서태후 2 - 잘못된 운명의 만남
자희, 즉 서태후의 성은 엽혁나랍(葉赫那拉 : 예허나라)이며, 도광 15년(1835) 10월 10일 북경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만주 팔기의 하나인 양황기인 출신이었다 합니다. 부친인 혜정은 관리로 여러 지방을 다녔기에 부친을 따라 여러 지방을 함께 다니며 세상을 보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를 보고 관리의 세계는 아첨과 권모술수, 그리고 뇌물이 판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됩니다. 원래 제대로 된 사람은 잘못을 보고 그 잘못에 대해 나쁘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만, 욕하며 배운다고 했나요? 그런 부류의 사람이 꼭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자희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나쁜방법으로만 알아가게 됩니다. 뭐 사실 이런 게 쉽고 빠르게 사는 방법이기는 하겠지요? 맹모삼천지교라 했던가요? 이런 생활이 나중에..
201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