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화신 서태후 7 - 무식해서 행복합니다.

2011. 8. 25. 00:02佳人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여인 열전

동치 13년(1875) 12월 말, 드디어 재첨이 황위를 계승하고 연호를 광서(光緖)로 정합니다.

이틀이 지나자 자희는 "비록, 황제가 있으나 아직 나이가 어리기에 작금의 풍전등화와도 같은

시국을 헤쳐나가기 어렵다.

할 수 없이 과인이 당분간 수렴첨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모든 백성이 원하는 일이고....."

하기 싫은 일도 많은 백성이 원하고 대신들이 원하면 해야 합니다.

네 하시고 싶으시면 하셔야죠.

 

또 하나의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없습니다.

권력은 나누어 가질 수도 없구요.

권력의 화신인 자희에게 심정이 온화하고 착한 여인인 자안태후도 거추장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래도 정부인이었는데 함부로 할 수는 없지요.

물론 자안태후도 이미 자희의 행동을 보았기에 자신이 개털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사람은 자신이 호랑이 털이었는데 개털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알면 무척 슬퍼집니다.

 

한때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자희가 처음으로 권력에 발을 들여 놓을 때 힘이 되었던 태감인 안덕해가 자금성을 떠나

지방에서 자기의 권력을 과시하며 부정축재를 하다 산동순무인 정보정에게 잡혔고 정보정은

자안태후에게 급히 보고를 하고 자안태후는 "환관은 함부로 도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규정을 들어

안덕해를 현지에서 참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자희가 이 일을 알았으 때는 이미 상황이 종결된 후였습니다.

이 일로 자안태후와 자희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광서 7년(1881) 자안태후 나이 45살 때

멀정하게 잘 지내던 태후가 저세상을 가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안태후가 죽은 이유는 자희의 독살이라고 굳게 믿지만,

어느 누구하나 입밖으로 발설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동태후가 서태후의 문병을 갔다가 그곳에서 먹은 떡을

칭찬하고 돌아갔다 합니다.

잠시 후 서태후는 동태후에게 답례로 떡을 보냈고 동태후는 그 떡을 먹은 후 급사했다고 합니다.

답례떡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나 봅니다.

옛날에 결혼식에 가면 무조건 답례품으로 떡을 주었고 그 떡이 무척 맛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두 사람의 수렴첨정에서 이제부터는 자희만의 원맨 쇼를 하게 됩니다.

한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보다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빠릅니다.

그러나 권력이란 그렇지 못하지요.

나폴레옹도 여자와 권력은 함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찌 한 여자를 두 남자가 함께 할 수 있으며 권력 또한 나누어 가질 수 있겠습니가?

 

그러나 이런 자희에게도 하나의 우환이 생겼습니다.

바로 함께 일을 도모했던 공친왕 혁흔입니다.

너무 커버린 게지요.

 

권력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였지 뜻이 맞아 함께한 사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혁흔은 정변에 성공한 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아니라 '세도를 누려라!'입니다.

 

그런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렷나 봅니다.

궁 내외를 모두 손에 움켜잡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특히 병사를 관리하는 군기처에서는 모두 혁흔에게 아양을 떨었으며

서구 열강도 모두 혁흔을 신뢰하기에 이르릅니다.

 

자희가 보니 자기보다 더 폼을 잡고 있는 겝니다.

그렇습니다.

폼은 한사람만 잡아야 하는데 앞장 세웠던 녀석이 더 크게 폼을 잡고 모든 사람이

그에게 열광하면 속이 뒤틀리지요.

그런데 그 폼이 그냥 폼이 아니라 모두 그를 바라보고만 있는 겝니다.

권력을 가진자가 다른 누가 폼을 잡으면 자기는 열을 받지요.

 

이 지경에 이르면 이제 기회를 보아 그를 제거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언젠가 찾아옵니다.

 

광서 10년(1884)

프랑스가 이번에는 베트남을 침범합니다.

그곳에는 이미 청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쫓겨나며 국경에는 전운마저 감돕니다.

자희는 이 기회를 놓지지 않습니다.

 

자희는 혁흔이 옛방식만 고집하다 일이 이지경이 되었다고 질타하며 파면하고

군기처도 조직을 개편해 버립니다.

혁흔을 파면한 그 자리에는 광서제의 친부인 순친왕을 앉혀버립니다.

순친왕도 사양을 했고 주변에서도 황제의 아비를 그 자리에 앉힌다는게 부당하다고

했지만, 자희의 속셈은 그는 자신의 제부였고 그리고 소심한 성격이라

쥐락펴락하기 쉽다는 것이 깔려있습니다.

 

당시의 서구 열강 중에 특히 프랑스의 도발이 가장 강했지만, 자희는 비굴하리만치

권력유지를 위해 그들에 굽신거렸습니다.

자꾸 프랑스가 밀고 들어오자 백성들은 분노했고 군사들과 동맹하여 점차 대항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진남관에서 도발해 오는 프랑스 군을 상대로 전투가 벌어져

크게 승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로 프랑스 본국의 루비리 내각은 실각했지만, 오히려 청나라에서는 자희가 철병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내립니다.

오히려 프랑스에서 "저 여자가 왜 저런 명령을 내렸지?"하며 의문이 들 정도였다고 하네요.

아마도 전투에서 승리하고 야단맞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습니다.

 

자희는 이렇게 철저히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나라도 팔아먹는 일을 저지릅니다.

국가의 이익이나 위신은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내부의 권력을 휘어잡는 데에만 신경을 썼지 국제정세를 읽고

판단하는 일에는 백치에 가까웠습니다.

무식해서 행복한 여인은 세계적으로 자희 한 여자일 겝니다.

 

프랑스와의 전쟁을 하는 도중에도 자신의 거처인 저수궁을 수리하는 데 63만 냥의

백은을 쏟아붓고 자신의 50회 생일 잔치를 하기도 합니다.

광서 11년 황제가 15세가 되자 자희는 수렴청정을 어쩔 수 없이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년에 권력을 광서제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여러 대신이 수렴청정은 끝내더라도 아직 황제가 어려 당분간 훈정(訓政)이라도

해야 한다고 간청(?)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그자리에 바로 승낙을 하게 됩니다.

왜 이러십니까?

은퇴하고 쉬고 싶은데 왜 자꾸 일하라고 합니까?

 

광서제가 19세가 되는 해 혼례를 치르게 됩니다.

이 일은 자희에게는 권력을 내어 놓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국, 귀정(歸政)을 결심하고 황제에게 여생을 보낼 휴양소나 지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三海에 대규모 토목공사가 벌어지며 국가 재정은 파탄지경에 이르릅니다.

외침에 시달리고 가뭄에 민초의 소요까지 일어납니다.

굶주린 민초는 북경으로 모여들고 또 홍수까지 겹쳐 물가가 천장부지로 오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자희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다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