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왕부 마지막 이야기

2013. 1. 3.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우리나라에서 투 코리언스가 불었던 고시조의 일부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벽오동은 보이지 않고 특이하게도 대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 이유는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이니 그러니 대나무처럼 권력이 바래지 않고

늘 푸르게 독야청청하기를 바라고 심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리 권력의 바람이 불어도 대나무는 휘어질망정 부러지지는 않습니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간에도 붙고 쓸개에도 붙고 말입니다.

이리 불면 이리로 휩쓸리고 저리 불면 자리로 휩쓸리며 늘 권력의 주변에 머무르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다 바람이 그치면 다시 대나무는 우뚝 서서 강인한 척 자기 힘을 과시합니다.

 

공왕부는 베이징에 있는 수십 개의 왕부 화원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다른 곳과는 달리 무척 아름답기에 화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일반에게 공개하는 곳이라 합니다.

공왕부는 질서정연한 건축물의 배치, 정교한 공예, 교차한 누각 등을 통해 황실의 휘황찬란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함께 갖춘 모습을 보여준다 합니다.

남북으로 약 330미터, 동서로 약 180미터 길이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공왕부는 거주공간인

저택과 저택 뒤로 아름다운 정원인 화원으로 나뉘어 있다고 하네요.

 

우선 뒤에 있는 화원의 사진을 봅니다.

사진의 아래를 보시면 긴 건물이 보이실 겁니다.

그 건물의 아래는 저택이고 좁은 길이 동서로 되어있고 그 위로 담장을 둘렀습니다.

그러니 담장 위로는 화원으로 이 선을 중심으로 공왕부는 화원과 저택이 나누어집니다.

 

저택의 제일 뒤로 화원과 구분하는 2층 건물이 하나 있는데, 동서로 길이가 156미터

가까이 되는 대단히 긴 건물입니다.

이 건물 뒤로 길게 난 길은 전도(箭道)라하여 이 집 주인이 말을 달리며

화살을 쏘는 연습을 했던 곳이라 합니다.

우리 민초는 생각할 수도 없는 짓을 이 사람들은 집구석에 숨어서 하고 살았나 봅니다.

바로 위에 보이는 사진입니다.

왜 우사인 볼트를 초빙해다가 달리라 하고 말을 타고 내기나 해보시지?

 

뒤쪽 벽에는 88개의 창문이 있으며 내부에는 108개의 방이 있는데 속칭 99칸 반이라 하며

 도교의 “계만즉영(届满即盈)으로 만기가 되면 넘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그곳에 만든 창문조차도 복을 비는 박쥐 문양에 자손도 번창하라는 물고기 문양도 만들어

놓았는데 얼마나 더 복을 받아야 만족하겠습니까?

 

사람의 욕심은 소금물과 같아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을 느끼나 봅니다. 

공왕부 화원으로 불리는 이 화원을 그냥 걷다 보면 마치 자연 속을 산책하는 기분이 듭니다.

물론 많은 관광객으로 말미암아 번잡하지만, 사람만 벗어나면 아주 고즈넉한 곳입니다.

이런 자연 속이라면 마음을 정갈히 하고 사색하며 내면을 살찌울 생각을 할 텐데

이집 주인은 내일은 누구를 협박하여 삥땅을 치고 또 누구를 불러다 주리를 틀어

내면보다는 재산을 살찌울까 생각했을 겁니다.

 

강희제의 친필로 쓴 복(福,)자 기념비를 중심으로 독락봉(独乐峰), 복지(蝠池)가 있어

복을 비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와 복을 기원한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박쥐 모양으로 만든 연못인 복지라는 곳입니다.

이렇게 많은 복을 감추어 두고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제명에 죽지 못했습니다.

 

이 집을 물려받은 공친왕 혁흔은 서태후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서태후 편에 서서 꼭두각시놀이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철저하게 권력의 편인 서태후 편에 서서 앞잡이 노릇을 함으로 해피했던 사람이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대표적 인물로 봐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런 자희에게도 하나의 우환이 생겼습니다.

바로 함께 일을 도모했던 공친왕 혁흔입니다.

너무 커버린 게지요.

늘 앞에서 알짱거리며 딸랑거리기에 자희는 혁흔의 뒤를 좀 봐 주었더니 이제는 올라 설라꼬?

 

권력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였지 뜻이 맞아 함께한 사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권력의 단물을 빨기 위해 합체를 하게 되면 이게 늘 마지막에는 탈이 납니다.

왜?

폼은 나만 잡고 싶은데 저놈이 더 잡으면 화가 나잖아요.

혁흔은 정변에 성공한 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아니라 '세도를 누려라!'입니다.

 

그런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렸나 봅니다.

궁 내외를 모두 손에 움켜잡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특히 병사를 관리하는 군기처에서는 모두 혁흔에게 아양을 떨었으며

서구 열강도 모두 혁흔을 신뢰하기에 이릅니다.

 

자희가 보니 자기보다 더 폼을 잡고 있는 겝니다.

그렇습니다.

폼은 한 사람만 잡아야 하는데 키워주려고 앞장세웠던 녀석이 자희보다 더 크게

자기 앞에서 폼을 잡고 모든 사람이 그에게 더 열광하면 속이 뒤틀리지요.

그런데 그 폼이 그냥 폼이 아니라 모두 그를 바라보고만 있는 겁니다.

권력을 가진자가 다른 누가 폼을 잡으면 자기는 열을 받지요.

 

위의 문은 서양문이라는 문입니다.

원명원의 서양루를 보듯이 서양풍을 당시는 무척 좋아했나 봅니다.

유행도 이렇게 열병처럼 번졌나 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물어보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저들이 스스로 알아 기었지 혁흔이 그렇게 해달라고 하지는 않았지요.

 

용도 아닌 자가 용 폼 잡다가 용의 국물도 없지요.

이럴 때는 그대로 콱 쌔려버려야 합니다.

이 지경에 이르면 이제 기회를 보아 그를 제거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언젠가 찾아옵니다.

 

광서 10년(1884), 프랑스가 이번에는 베트남을 침범합니다.

그곳에는 이미 청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쫓겨나며 중월 국경에는 전운마저 감돕니다.

자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자희는 혁흔이 옛방식만 고집하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질타하며 파면하고

군기처도 조직을 개편해 버립니다.

혁흔을 파면한 그 자리에는 광서제의 친부인 순친왕을 앉혀버립니다.

순친왕도 자희의 의도를 알고 있기에 사양을 했고 주변에서도 황제의 아비를 그 자리에

앉힌다는 게 부당하다고 했지만, 자희의 속셈은 그는 자신의 제부였고 그리고 소심한 성격이라

쥐락펴락하기 쉽다는 것이 깔렸습니다.

 

그래서 혁흔도 한 때는 서태후 편에 서서 세상을 쥐락펴락했지만,

너무 폼만 잡다가 한방에 가버린 겁니다.

그래도 한때 잘나갔던 사람으로 집안 곳곳을 보기 좋게 꾸며놓았네요.

정자도 있고 극장도 있습니다.

 

이국적인 모습은 그가 영국이나 프랑스와 많은 교류를 하며 가까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혁흔이 가버린 후 이곳은 부위의 동생 부유(簿儒)가 살며 가꾼 곳이라 합니다.

부위가 누굽니까?

영화 주인공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부유는 화가이며 서법가요 시인으로 그 이름이 외국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예술가였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이 집은 문인화가에 얽힌 많은 이야기와 손때묻은 일화들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화원은 췌이진위엔(萃錦園 : 췌금원)이라 불렸고 화원 안에는

모두 31개의 정자와 전각이 있다 합니다

내부는 황성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몄다 합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돌로 5m도 넘는 태호석입니다.

화신은 하늘 높이 권력과 재물을 갖고 싶은 욕심을 담았나 봅니다.

아주 하늘을 향해 우렁차게 솟아있습니다.

이렇게 권력과 재산이 하늘로 치솟기를 바랐지만, 결국은 목숨이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보광재와 석진재는 화신이 자금성의 영수궁을 본떠 만들었다는데 이는 후에

황제를 칭하는 극형에 처할 수 있는 죄에 해당하는 짓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이 석진재입니다.

용도는 책을 보관하고 읽었던 도서관 겸 서재로 사용했다 합니다.

 

동루의 대희루는 주변의 풍광이 수려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고 하여 지은 이름이라

하니 화신은 살아생전 원도 한도 없이 살았나 봅니다.

이런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이런 모습을 바라보며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그러나 나중에 목을 매고 죽었지만....

 

문학을 사랑한 그는 가무에도 능했을 겁니다.

여기 누각에 앉아 시를 논하고 노래하며 아름다운 사람과 함께 음주 가무에 빠졌으면...

연못에 고기도 풀어놓고 그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만 바라보아도 좋겠습니다.

 

강희황제가 화신에게 내린 친필 福자는 황실에서 볼 때도 보물에 해당하겠지만,

회수하지 않았답니다.

그 이유가 동굴 안에 보관하였으며 용맥이 교차하는 곳에다 박아놓았다 합니다.

다른 황제도 베이징의 풍수지리 때문에 손대지 않았다 합니다.

 

복이라는 글자는 才, 壽, 田, 子, 多의 글자가 모두 들어있는 글자랍니다.

정말 복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재물과 목숨과 논밭과 자식이 모두 들어가 있는 그런 글자입니다.

그래서 田 자를 열리게 써야 밭이 무지하게 많이 생겨 부자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글자를 닫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복자를 천하제일 복이라고 하나 봅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동굴 속의 복자라는 글을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글자는 유리로 덮어놓았기에 사진을 찍기도 어렵습니다.

역시 중국답게 여기에도 복자를 쓴 두루마리 족자가 무척 많이 팔리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위에 얹어놓은 것도 나무가 아니라 돌이라는데 금향옥이라는 돌입니다.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옛날부터 멀리서도 돌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신기한 돌이지요.

금향옥의 냄새를 맡으면 몸과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돌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질 수 없는 돌이 바로 금향옥이라는 돌이라네요.

유안불식금향옥(有眼不識金香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는 감각이 없으면 눈앞에 금향옥이 있어도 알지 못한다는 말일 겁니다.

이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이 이러한 우를 범하지나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금향옥을 받치고 있는 나무는 오목(烏木)입니다.

함께 있네요.

이 또한 공왕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나무라 합니다.

 

그렇지만 여행을 다니다 보니 오목이라는 까만 색깔의 나무는 무척 많습니다.

여기에는 바로 그 귀중하다는 오목이라는 나무가 아니라 나무 화석이 있지요.

오목을 만목지존(萬木之尊)이나 만목지영(萬木之靈)이라고 한답니다. 

이 두 개가 서로 함께 있으니 오늘 여러분은 저처럼 대박이 나는 겁니다.

올해도 만사형통하실 겁니다.

 

내일부터 삼국지 기행을 떠납니다.

물론 중간중간 삼국지와 관련없는 곳도 들릴 겁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제 베이징에서의 일정은 모두 마칩니다.

삼국지 기행을 떠난다고 했지만, 일정상 아직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베이징을 떠나며 삼국지연의에 오르내렸던 지역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