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왕부(恭王府)로 갑니다.

2012. 12. 29.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원명원을 보고 입구로 나오니 오후 2시가 가까이 되었네요.

그러니 4시간 하고도 30분을 원명원 안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는 말이겠네요.

남문 정문으로 나와 아침에 올 때 탔던 버스를 탑니다.

 

중국은 같은 번호의 노선을 다니는 시내버스가 갈 때와 올 때의 길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로 여러 번 곤란을 겪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군요.

 

좌우지간 버스에 올라 우리가 갈 곳인 공왕부를 찍은 스마트폰을 안내양에게 보여주니

어디에선가 내리라 합니다.

그곳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호국사라는 정류장에 내려 그냥 방향을 잡고 걷습니다.

우리 여행은 그냥 걷는 것도 여행이라 생각하기에 시내에서는 대부분 걷기를 즐깁니다.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모두 다르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다니면 되는 게 아닐까요?

 

가난한 배낭여행도 있고 럭셔리한 호화 여행도 있습니다.

비싸고 맛난 음식, 편안하고 좋은 숙소를 추구하는 여행자도 있고 길거리 음식에 보통 숙소에

하루를 자고 가는 여행자도 있습니다.

우리처럼 시내버스나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는 사람이 있고 택시로 이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여행 스타일도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여행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대로 움직이면 되지 거기에 원칙이나 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하며 동행자와 서로 의견이 갈리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완벽한 여행은 없습니다.

동행 간에 서로 다툼이 있다는 의미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틀린다고 우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의 여행 스타일이 나와 다를 뿐이지 틀린다고 생각하면

다툼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언제나 함께 다녔던 우리 부부도 가끔 토닥거리며 다니는 걸요.

 

이번에 처음으로 친구 한 사람이 우리 부부와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친구였기에 서로의 여행 스타일이 다름을 이해하고 완전하게 우리 스타일로만

다니기로 했고 마지막까지 서로 간 얼굴 찌푸리는 일없이 다닐 수 있었습니다.

부부간에도 여행을 하다 보면 다툼이 있는데 이런 친구 덕분에

여행이 한결 즐거웠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조금 늦은 점심이지만, 기웃거리다 점심도 먹습니다.

허름한 동네 식당에 들어가 미펀을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었던 미펀 중 최고였던 것 같네요.

국물까지 말끔히 비우고 주방장에게 "하오츠!"를 연발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런 우리 부부를 바라보면 주방장은 아주 행복한 미소로 답을 합니다.

오늘 그 주방장은 아주 행복한 하루가 되어 나중에 오는 손님에게도

아주 정성을 다해 음식을 내올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도 느끼며 말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니 이렇게 작은 일이지만, 격려의 말을 건네면 서로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한층 즐거울 듯합니다.

돈이 드는 방법도 아닌데 말입니다.

佳人도 남이 쓴 글을 읽으며 격려 한 마디도 인색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한 격려의 말이 글 쓴 사람이 행복해 한다면 크게 힘든 일이 아니라면

글 하나 남기는 것도 어떨까 생각합니다.

 

식당에서 우리가 갈 방향을 물어보니 들어오던 길로 계속 가면 바로 공왕부가 나온답니다.

목표로 정한 곳으로 가다가 못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여행하기에 크게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왜?

지금까지 걸어오며 본 것도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길을 걷다 보니 문이 열린 집이 보이길래 물끄러미 들여다 봅니다.

웬 사내가 우리를 내다보고 미소 짓네요.

佳人도 그 사내에게 미소를 지어 답례했습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대문에는 매란방(梅蘭芳) 기념관이라는 간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란방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있네요.

매란방은 중국 전통 오페라인 경극의 4대 명단(四大名旦) 중 한 사람이라 하네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인 패왕별희나 백사전 같은 유명한 경극에 출연했다 합니다.

 

매란방을 중국의 전통 예술인 경극의 대표적 연기자며 효시라고 한다는군요.

당시에 경극의 일인자로 중국 오빠부대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가 1951년부터 10여 년간 이 집에 살았다고 합니다.

 

잠시 길을 걷다 보니 담장에 지도가 보입니다.

바로 매란방 고거를 지나니 경왕부가 있고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공왕부가 보입니다.

같은 왕부라 해도 경친왕부는 공왕부에 비해 인기가 없나 봅니다.

들어가는 사람도 없고 알지도 못했으니까요.

왕부라고 모두 같지 않은 게 세상일인가 봅니다.

 

공왕부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아가씨들이 다가와 뭐라고 합니다.

아마도 표를 자기들에게 사면 내부 안내를 한다고 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이사람들이 단체표를 저렴하게 사서 호객행위로 팔고 같이 다니며

설명도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설명을 알아들을 정도로 중국어를 할 줄 알면 왜 이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 못하겠어요. 그쵸?

늘 우리는 외롭게 독립군으로 부부 둘이만 구경 다니는 걸요.

그러기에 佳人의 여행기는 내용도 없는 그런 이야기로 채우고 있습니다.

 

드디어 공왕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공왕부 입장료는 40원이고 반표는 정확히 20원이군요.

 

공왕부란 공왕이란 왕족이 살았던 집을 말한다는군요.

그중에서도 공왕부는 청대의 모습을 제일 잘 보존하고 있는 저택이라 봐야 할 겁니다.

처음 지을 때는 왕부로 짓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공친왕 혁흔에게

명의 이전하며 공왕부라 불린 모양입니다.

 

명의 이전이라...

그냥 주인이 바뀌었을까요?

아무 조건없이 선의로 주었을까요?
틀림없이 거기에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을 겁니다.

혹시 죽도록 두들겨 패지나 않았나 모르겠어요.

 

당시는 패면 맞고...

아니지요.

"때리십시오! 마음껏 패세요."라고 하며 맞았을 겁니다.

고문하면 고함지르고...

아니지요.

이를 악물고 참고 또 참으며 "더 세고 강하게 주리를 틀어주세요!"라고 했을 겁니다.

 

진시황이 죽고 난 후 만인지상 일인지하라는 승상 이사도 조고에게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자술서를 스스로 죄를 만들어가며 썼다고 하잖아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승상까지 지낸 이사가 이렇게 나약하게 조고에게 당했을까요.

그런데 이 정도의 집을 명의 이전하는 행위는 알라 손목 비틀기였을 겁니다.

 

공왕부는 앞쪽에는 주거구역이 있고 뒤로는 화원으로 조성하여 무척 아름다운 곳이네요.

전체 면적이 6만여 세제곱미터로 두 지역이 거의 비슷하나

저택이 차지하는 면적이 조금 더 넓다고 합니다.

입구로 들어가 주로 왼쪽을 중심으로 보고 나올 때는 오른쪽으로 돌아 나오면

대강 이곳도 대부분 볼 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파란 선 안이 위는 화원지역으로 무척 아름다운 곳이고

아래 파란 원안은 주거지역으로 그냥 그렇더군요.

지금 문 앞에 도착한 시간이 3시 45분경입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왔으니 부지런히 구경하렵니다.

중국에서는 오후 관람은 빨리 둘러보고 끝내야 합니다.

해가 더 빨리 져 일찍 어두워지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들어가는 관광객은 별로 보이지 않고 나오는 사람은 제법 많습니다.

 

내일은 공왕부 안을 기웃거리며 보았던 사진과 들었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렇게 아름다운 화원을 간직하고 있는 공왕부도 이야기는 아름답지 못한 곳인가 봅니다. 

세상은 그 이면을 들춰보면 보기와는 다른 곳이 많은가 봅니다.  

늘 아름답고 유쾌한 이야기만 듣고 살아가면 그게 아름다운 일인지 알 수 없기에

신이 세상을 섞어찌개로 만들었나 봅니다.

무지렁이 민초 佳人이 신의 뜻을 어찌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