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和伸 : 화신)이 살았다는 공왕부(恭王府)

2012. 12. 31.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중국의 독특한 주거문화 중 하나가 황족의 거처인 왕부가 아닐까요?

베이징에는 아직도 당시 황족이 살았던 왕부가 몇 곳 남아 있다고 하나

그중 제일 원형대로 남은 게 여기 공왕부라 하네요.

오늘 佳人과 함께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공왕부 화원을 구경하시겠어요?

 

그러다 그때 살았던 사람을 만나면 묻고 따지고...

태클도 걸어가며 살았던 이야기도 들어가며 말입니다.

여행이 뭐 별것 있겠어요?

그냥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돌아다니면 되지 무슨 법칙에 따라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여기는 처음부터 황족이 살았던 곳이 아니랍니다.

원래는 건륭제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호부상서와 의정대신을 지냈던 화신(和伸 : 허선)이라는

사람의 개인저택이었다 하네요.

건륭제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여자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고 사내랍니다.

그렇다고 건륭이 혹시? 하시는 분은 안 계시겠죠?

건륭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눈치 빠른 사내였던 가 봅니다.

 

왕부도 아니면서 더 왕부 같은 곳이 여긴가 봅니다.

과연 화신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호화롭게 살았으면 황제처럼 살았을까요?

얼마나 대단한 권력과 재력이 있었으면 이런 호화로운 저택을 짓고 살았을까요?

 

"재산이면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하나도 없다!"라고 큰소리치며 살았던 탐욕의 화신(化身)인

화신(和伸)... "어렵게 자라 열심히 돈을 모은 화신에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라고 하면

엄청나게 많은 돌이 날아올 것입니다.

오늘은 공왕부라고 부르는 원래 화신의 집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그 집을 구경하며 묻고 따지고...

 

이 집을 거닐다 보면 화신이 어떻게 많은 돈을 벌었나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佳人도 큰돈을 벌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열심히 배워 여러분에게도 조금은 알려드릴까 합니다.

 

화신이라는 사람은 건륭제의 총애를 받아 숭문문 세무감독 등의 지위를 이용해

뇌물을 모으는 취미를 가진 사내였나 봅니다.

뇌물도 물이라고 물 좋다고 받았나 봅니다.

얼마나 많이 먹었을까요?

 

그가 자결 후 그의 재산을 몰수해 감정원에서 감정한 결과 자금성에 보관한

황제의 재산보다 더 많았답니다.

얼마나 모았으면 그렇게 많이 모았을까요?

문제는 열심히 일한 대가가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모았던 모양입니다.

 

황제보다 더 많은 재산을 지닌 그는 황제 알기를 뭐로 알았을까요?

이러면 막가자는 것이지요?

화신의 돈 버는 방법은 더는 배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기대를 접으세요.

탐욕스럽게 권력을 이용한 돈벌이는 더는 배워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허선은 1750년 *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 일은 잘못이 아니지요.

1769년 19살 때 3등경거도위에 처음으로 관에 발을 디뎌 25세에 3등시위가 되었답니다.

주로 황제의 어가를 호송하는 그런 일로 시작했나 봅니다.

워낙 잘생긴 용모에 용모단정하고 예의바른 반듯한 청년으로 유머까지 겸비해

황제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던 그가 말직에서부터 시작해 어느 날 황제인 건륭의 눈에 띄었나 봅니다.

 

워낙 총명하였기에 29살 때에는 일 년 동안 그의 직급이 무려 여섯 단계나 수직으로

상승했다고 하니... 이는 운빨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바로 세상의 모든 것은 황제만 빼고 허선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을 겁니다. 

팔자가 피기 시작하는 일은 우연히 찾아오지요.

 

지금까지 자갈밭을 걸어왔지만, 이제부터는 꽃길을 걷는 기분일 겁니다.

꽃길도 꽃이 아름답게 핀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 말입니다.

이때까지 누구나 화신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 꽃길은 화신이 직접 씨를 뿌리고 가꾼 길이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황제의 눈에 들었나부터 알아보렵니다.

처음에는 황제의 가마를 호위하는 교위에 불과했지만, 워낙 기억력이 출중해

책은 비록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책은 거의 모두 기억할 정도의 대단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합니다.

 

그가 건륭의 가마를 호위하고 가던 어느 날, 각 성에서 올라온 상주문을 읽었답니다.

그 중 쓰촨에서 올라온 상주문에 농민 봉기가 일어났고 그 주모자는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던가 봅니다.

건륭은 화가 나 "범과 서우(코뿔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왔고 갑 속에 보관했던 귀갑과

미옥이 깨어졌으니 이것은 누구의 과실인가?"라고 소리를 쳤답니다.

 

그 말에 황제 주변에 있던 사람과 황제를 따르던 모든 사람이 황제의 말뜻을 몰라

모두 어리둥절해 있을 때입니다.

佳人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왜?

건륭황제는 한국말로 하지 않고 중국말로 했기에 중국어를 모르는 미천한 佳人 어찌....

자막처리라고 했다면 알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화신은 그 말이 논어의 한 구절임을 알고 대뜸 나서며 한다는 말이 

"폐하께서는 그 지방 관리에게는 미룰 수 없는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 아니십니까?"라며

그 책임이 지방관리에 있음을 아뢰자

황제는 가려운 곳만 콕콕 찔러가며 이야기하는 화신이 왜 귀엽지 않겠어요.

 

건륭은 당장 화신을 가마 곁으로 불러 "앞으로 내게 멀어지지도 마라!

그리고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마라~

언제나 내 지근거리에서 있으라."

하니 용이 물을 만나 하늘로 올라간 셈이지요.

이때부터 황제가 신임하는 유일한 측근이 되었다네요.

 

그 후 승승장구...

화신의 앞에는 거칠 게 없었습니다.

1년 안에 군기대신이 되었으며 호부상서와 의장대신까지 겸직을 하니

무쏘의 뿔처럼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나 봅니다.

오죽하면 황제가 제일 아끼는 딸인 화효공주와 화신의 아들을 부부의 연을 맺게 했을까요.

이런 일은 본인보다 주변의 사람이 먼저 압니다.

황족까지도 화신을 만나뵈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고 2황제라고 불렀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그 세력이 대단했으면 황실종친마저 그에게 줄을 대려고 뇌물을 들고 찾아왔겠어요?

그때 佳人이 집 앞을 지나다 다 보았습니다.

위의 사진에 황실의 종친에 대한 등급표가 있습니다.

한우 등급표가 아닙니다.

 

건륭의 별명을 오리 사냥꾼이라 불렀답니다.

여기서 오리란 탐관오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건륭은 평소 탐관오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답니다.

먹을 때 싫건 먹으라고요.

그래야 통통하게 살찐 오리를 잡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에...

 

이를 오리를 기른다고 했고 오리가 제법 살이 토실토실 오르면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답니다.

원래 살도 오르지 않은 오리는 먹을 게 없다는 말입니다.

이를 오리를 잡는다고 했답니다.

 

탐관오리는 재산을 몰수하고 아름다운 미녀는 후궁으로 들여앉히고...

이를 간파한 화신은 건륭과 환상의 짝을 이루어 오리 사냥을 즐겼다고 합니다.

북경오리도 탐관 오리일까요?

 

그러나 결국, 화신 자신이 그때까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살찐 오리가 될 줄은

알지 못했고 건륭은 바로 제일 살찐 오리를 곁에다 두고 키웠으며 그의 후계자인 아들

가경이 바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리를 사냥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했던 겁니다.

자식에게 이런 즐거움을 선물할줄 아는 애비는 최고의 애비가 아닐까요?

사람은 이렇게 스스로를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그럼 몰수된 화신의 재산은?

화신이 남긴 아름다운 미녀는?

아이고 아까워라~~

佳人은 절대로 모릅니다.

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건륭황제는 화신이라는 최고의 살찐 오리를 선물용으로 키워 자기 아들인

후계자 가경에 선물한 셈입니다.

아들을 위한 아비의 배려는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나 봅니다.

 

이제 내일은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화원구경을 하려고 합니다.

사실, 주거공간인 저택은 그냥 중국에서 많이 본 그런 건물로

특별한 감흥도 없고 특이한 것도 없었습니다.

내일은 아름답다는 공왕부 화원을 두리번거리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 행복해진다 합니다.

여행도 행복해서 떠나는 게 아닙니다.

떠나니 행복해집니다.

부부가 함께 동행을 한다면 그 행복은 두 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