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결의(桃園結義)

2013. 1. 5. 08:00삼국지 기행/삼국지 기행

우선 도원결의하는 모습부터 보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도원결의는 삼국지 이야기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 서방 집의 뒤뜰은 복숭아나무가 무척 많았나 봅니다.

복숭아 꿏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봄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장비네 집 뒤뜰에서 만나

의형제의 결의를 하며 태어난 날은 서로 다르지만, 한 날 한시에 같이 죽기를 맹세한다는

약속이 주요 결의내용이었을 겁니다.

위로는 한실을 재건하고 아래로 민초를 보살핀다는 말도 했겠지만...

그런데 당시 세 사람의 처지에서는 전혀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지요.

 

위의 사진을 보면 뒤에 그린 그림에 정말 복숭아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세 사람 뒤의 그림에 물동이를 든 아낙이 미소 짓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마도 유비의 모친을 그린 그림인 듯 하지만, 사실, 유 서방네 집이 아니고

장 서방네 집이라는 이야기가 맞나 봅니다.

그게 사실 중요한 게 아니지요.

왜?

시험에 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입은 옷을 보니 이미 나라를 세운 듯하지만, 실상은 저때 유비는 끼니 걱정하며 돗자리에

짚신을 팔던 처지였고 관우는 고향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이곳까지 도망을 와 숨어지내던

처지였고 장비는 그나마 돼지고기에 술장사를 했기에 처지가 제일 나았지 싶지만,

전혀 현실과는 동떨어진 모습이기에 뒤에 물동이를 든 여인이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며 웃기고 자빠졌네 하는 표정입니다.

 

옛날 익주 땅인 쓰촨성 청두에 가면 무후사라는 사당이 있고 무후사에는 삼의묘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비의 고향인 탁현에 가면 삼의궁이라고 있다고 합니다.

의로운 세 사람이라고 해서 아마도 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나 봅니다.

이는 도원결의를 하며 서로 같은 시간에 죽기를 맹세했던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도원결의를 한 그곳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작은 그곳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원결의를 물고 들어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800여 년 전 베이징에서 서남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하북성 보정시

탁주라는 곳(河北省保定市涿州)에서 유비가 태어났다 합니다.

위치는 베이징에서 석가장으로 가는 도중 보정시에서 조금 못 미치는 곳입니다.

물론, 장비도 같은 마을 출신이라 합니다.

원래 주차장 벗 10년이면 맞먹는다 하잖아요.

그래서 장비는 유비가 황제가 되었어도 형님이라 부르며 아양을 부렸다 합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관우요?

그 사람은 지금 산서성 운성부근이라고 하며 당시에는 해현 사람으로 고향에서

그 마을 현령과 현령의 처남을 죽인 큰 사고를 치는 바람에 도망자 신세였다 하지요.

그러면 자매를 쌍과부로 만들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사람을 죽였으니 그러니 도망해야지요.

 

도망하다 어느덧 동관(潼關)이라는 곳까지 왔고 계속되는 관헌의 추적이 심해서

황하의 물로 얼굴을 더럽혀 구분이 안 되게 했다고 하네요.

사실 관우의 얼굴은 대추보다 더 빨갛다고 할 정도로 황하의 물에 씻으나 안 씼으나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때 관문을 지키던 관리가 그의 이름을 묻자 순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동관의 관(關:관문)을

가리키는 기지를 보였답니다.

이로써 관우는 졸지에 관을 성으로 삼았고 나중까지 이것을 고치지 않았다네요.

 

그래서 개명하고 호적까지 세탁한 후 누상촌에 들어와 예전에 글깨나 읽었기에

훈장질을 하고 있었다는군요.

신분세탁을 하고 능청스럽게 아이들을 가르쳤다나요?

또 어떤 책에서는 저잣거리에서 녹두장사를 했다고도 합니다.

원래 이름은 성은 풍(馮), 이름은 현(賢)이며 자는 수장(壽長)이었다 합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신분세탁을 얼떨결에 한 셈이지요.

 

관우의 모습을 보니 정말 영웅으로 보이네요.

저 멋진 수염... 그래서 관우를 미염공이라고도 하지요.

조조가 관우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저 수염을 넣을 수 있는 비단으로 만든 수염주머니까지

선물했다 하니 이런 조조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 佳人도 탄복합니다.

맨날 전쟁터만 누비고 나쁜 짓만 골라 했다는 조조가 이런 생각까지 한 멋진 사내라는 것에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삼국지에서 가장 먼저 우리 눈길을 끄는 일이 바로 도원결의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도원결의란 사실, 정사에서는 없는 이야기로 소설인 연의에서만 재미있게 구성을 하면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하네요.

멋진 녀석들 폼 더 잡으라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이미 나관중은 시작부터 유관장 삼 형제를 띄우는 데 총력을 기울인 덕분에 독자 대부분은

유관장이 우리 편이고 조조는 천하의 나쁜놈으로 생각하게 했지요.

 

청두의 무후묘에 있는 관우를 나타내는 석상인데 돌도 잘 골랐습니다.

관우는 저렇게 붉은 얼굴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관우의 트레이드마크는 수염이지요.

그래서 관우를 보면 수염자랑하느라 늘 손이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관우에 얽힌 프로필을 잠시 보고 갈까요?

키는 9척으로 지금으로 보면 207cm로 무척 컸던 모양입니다.

그의 무기로는 당시에 사용되지도 않았다는 청룡언월도가 82근으로 17.8kg이라 하니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들고 있다가 기진맥진하지 않겠어요?

 

잠시 적토마의 애잔한 눈동자를 보고 가겠습니다.

정말 사슴의 눈보다 더 맑고 맑지 않습니까?

이 천리마가 관우가 죽은 후 식음을 전폐하고 스스로 관우를 따라 죽었다고 합니다.

삼국지에서는 이렇게 말까지 관우를 영웅 만들기에 소품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어쩌면 주인하고 얼굴색이 같을까요?

처음 보았을 때 요즈음 젊은이들의 필수 코디라는 커플 티를 입은 지 알았어요.

관우와 적토마가 같이 커플 티를 입고 여권용 사진 찍었는지 알았다니까요.

 

타고 다녔던 말은 적토마라고 조조가 하사한 말로 동탁이 여포를 수하로 두기 위해

하사한 말이라 하는데 바로 위의 그림이 조조가 관우에게 적토마를 건네주는 그림입니다.

말은 사실 들어가지 않으려고 뒷걸음치는 것으로 보이지 않나요?

조조의 위수지역이라고 조조 깃발이 보이고 누대 위의 털보가 관우로 보입니다.

 

그래도 천하의 적토마가 아닙니까?

적토마의 늘씬하고 잘 빠진 전신사진을 공개합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것처럼 저 가볍고 날렵한 푸트 워크를 보면 다른 말은

뻑소리나게 갔다는데 전성기 때의 무하마드 알리를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이런 말 한 마리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도원결의로 관우도 유비와 호형호제하며 한 방에서 늘 잠을 자며

언제나 유비 곁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하네요.

58세 때 맥성에서 적에게 둘러싸인 관우와 아들 관평은 여몽의 계략에 빠져 붙잡혀

219년 12월 관평과 함께 참형을 당하며 삼국지라는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되었다네요.
오관육참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용맹하였다 합니다.

관우는 죽음으로 왕이 되었고 후에 황제와 같은 급인 관제로 되었다가 지금은 신의 반열에 오른

사람으로 한족을 위한 마케팅에 가징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이 유비도 공명도 아닌 관우였습니다.

이는 만리장성을 넘어온 북방 민족이 중원을 다스릴 때 관우를 이용해 한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마케팅에 공자와 함께 더블 포스트로 이용함으로 신의 반열에 오른

어처구니 없는 인물이지요.

사실 인간성으로 보면 이런 망나니도 없는데 말입니다.

 

관우가 지었다는 불사동군의(不谢东君意)로 시작하는 관제시죽 하나로

관우에 관한 이야기는 게임 끝입니다.

물론, 후세사람이 지은 헌정시겠지만요.

충절과 의리를 말할 때 이 이상의 이야기는 없을 듯합니다.

이런 사람 하나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관우 사당은 동묘라고 합니다.

요즈음 관우는 재물신으로 신분세탁을 한 모양입니다.

어느 소문에는 상업부기에 뛰어났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고 아마도 이재에 밝은

산시성 사람들이 전국으로 뻗어 나가며 장사를 할 때 안전을 바라는 마음에 늘 관우를

마음에 새기고 다녔으며 각 지방마다 장사하며 재산이나 지켜달라는 의미로 관우 사당을 만들었던 게

시초가 되어 지금 중국에서 많은 사당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지점을 거느린 인물이

관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는 관우를 이렇게 세계적인 인물로 키우는데 산서성 사람들의 힘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해 산서성 핑야오 고성을 갔을 때, 그 사람들의 장사 수완을 보았고 중국사람 대부분이

산서성 사람은 장사수완이 뛰어난 사람이라 평가하고 그들이 모신 관우를

재물신으로 모시게 된 게 아닐까요?

그러니 돈과는 별로 인연도 없었던 관우가 얼떨결에 재물신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원결의라는 이야기 자체가 허구이듯 관우도 실제보다 많이 과장되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관우는 무척 오만하고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똥폼만 잡고 잘난 척을 하였기에

공명도 유비에게 이런 관우의 성격을 이야기하며 잘 보살펴야 한다고 했던 사람이죠.

뭐 공명이 유비 아래로 들어오며 지금까지 넘버 투였는데 넘버 쓰리로 밀려나는데 속 좋은 사람은

없었다는데 유비가 늘 힘든 곤경에 빠졌을 때 관우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저런 인간도 사람 만들어 데리고 다니는데 세상에 이 보다 더 어려운 일이

뭬가 있을까?" 하면 말입니다.

 

하북성 보정시 탁주라는 곳(河北省保定市涿州)에 가면 누상촌이 있고

이 마을에 가면 유비, 관우, 장비가 어느 봄날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 술잔을 기울이며

도원결의했다는 장소입니다.

그러니 사실과는 무관하게 소설 속의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이라는 말이겠네요.

그래서 그냥 지나칩니다.

우리에게도 한류라는 드라마가 히트하며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드라마 속의 장소를 찾아가는

투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그쵸?

그래서 이곳 누상촌은 빼고 지나갑니다.

 

그곳에 가면 오래전에 만든 유적은 문화대혁명 때 대부분 사라지고 최근에 만든 것만 남았다

하니 지금 만들어도 천 년이 지나면 그 또한 오래된 유적이 아니겠어요?

중국의 문화혁명은 문화대말살혁명이었나 봅니다.

 

세 사람은 도원결의라 하지만, 사실은 주위 사람이 볼 때는 작당질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당시 그들의 처지가 천하를 논한다는게 어불성설이고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겠어요?

짚신이나 팔고 돼지고기에 술이나 팔던 시정잡배들이 천하를 논한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라 합니다.

아니군요?

꿈과 이상은 클수록 좋다고 했나요?

 

위의 도원결의 장면을 보면 장비는 주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몇 잔 들어가니 벌써 자세가 나오잖아요?

술만 들어가면 잠시 혼절하듯 혼자 발광을 합니다.

술만 들어가면 자기관리도 하지 못하는 저런 사람이 천하 통일의 대업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촉한이라는 나라를 함께 만들고 황제에 오르고 했으니 불가사의한

일이기하며 물론, 촉한의 98%는 공명의 힘이고 1%는 방통의 힘이었겠지만요.

 

"유비, 관우, 장비 이 세 사람은 비록 성씨는 다르나 서로 의형제를 맺어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히 할 것입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못했으나

다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함께 죽기를 하늘에 바라나이다(不求同年同月同日生,

但求同年同月同日死)."
그날 세 사람이 했다는 맹세였지만, 이 맹세도 지켜지지 않았지요.

이후 도원결의 이야기는 삼국지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떠올리고 신의와

약속을 의미하는 멋진 말로 남게 됩니다.

 

엉아는 모두 서서 도원결의하는데 장비 혼자 앉아 술잔을 주고받습니다.

옷도 제대로 여미지 않은 것을 보면 일단, 거나해졌다는 말일 겁니다.

저 모습이 저잣거리 시정잡배의 모습이지 어디 형제의 맹세를 하는 엄숙한 모습입니까?

근본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중국에서 웃옷을 벗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렇게 옷을 벗고 배를 슬슬 문질러 주어야 중국인의 기본 예의라 합니다.

오늘은 도원결의했다는 복숭아밭에서 잠시 머물다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삼국지처럼 재미있는 이야기책도 흔치 않지요.

처음 이 책을 손에 들면 독자 대부분은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그 전쟁의 한 가운데 내가 서 있는 그런 기분이 들거든요.

어렸을 때 재미나게 읽었던 이야기를 직접 눈으로 그 현장을 돌아본다는 게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꿈같은 환상이지만.

삼국지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기행을 절대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