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취위엔(諧趣園 : 해취원)을 아십니까

2012. 1. 25. 08:00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만수산 동쪽의 언덕을 따라 내려오다가 비 오시는 날에는 비 내리는 풍경과 달이 휘영청

뜬 밤에는 달구경하기 위해 지은 경복각이라는 누각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를 보았습니다.

자유여행이 좋은 이유는 이렇게 마음대로 보고 싶으면 보고 걷고 싶으면 걷는 겁니다.

 

이제 그 아래에 있는 시에취위엔(諧趣園 : 해취원)으로 가렵니다.

이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원림 속의 또 다른 정원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즐기며 살았던 사람의 마음은 당연히 아름다워야 합니다.

사람의 근본은 아름다움을 보면 마음이 아름다워지게 되어 있지요.

 

이름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해취(諧趣)라 하면 운치가 아주 조화롭게 어울려 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만큼 운치에 관해서는 자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건륭 16년인 1751년이라 하네요.

이미 260년이나 된 제법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원인 셈이네요.

내부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처음 이 정원을 만들 때에는 정원의 본고장인 강남 지방인 우시(無錫)의 후이샨(惠山 :헤산)에

있는 유명한 정원인 지창위엔(奇暢園 : 기창원)을 모방해 만들었다 하며

 이름 또한 후이샨위엔(惠山園 : 헤산원)이라 이름 지었다네요.

 

이름이 뭬가 중요하겠어요?

정원이 정원답게 아름다우면 되지 않겠어요?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살았던 사람의 마음은 과연 아름다웠을까요?

관화미심, 관수세심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 후 1811년인 嘉慶 16년에 다시 손을 보며 이름을 지금 사용하는 해취원으로 바꾸었다

하며 1860년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이곳도 역시 불타버립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도 인간에 의해 욕을 당했습니다.

 

이곳을 불사르던 사람은 무슨 생각에 그런 짓을 했을까요?

불을 지르며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도 없었을까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빠떼루 가지고는 안 되겠어요.

빨간딱지로 퇴장시켜야 합니다.

 

그러던 중 1892년 광서 18년에 광서제와는 무관하게 순전히 자희태후에 의해 다시 만들게

되었고 광서제는 이런 일에 간여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지만,

그놈의 연호 때문에 맨날 입에 오르내립니다.

이곳 재건자금이 해군 전력 증강을 위해 독일에서 배를 사 오려고 준비해둔

쌈짓돈이었는데 글쎄 자희가 그 쌈짓돈을 풀어 다시 만들었다 하잖아요.

 

많은 사람이 반대하자 자희태후는 뻔뻔스럽게도 세 치 혀를 놀렸지요.

"이곳 이화원을 재건하는 이유는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대청국과 민초를 위한

해군 훈련의 장인 곤명호에서 군사훈련을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입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정말 대단한 여인이었나 봅니다.

 

정말 환장하게 교활하고 영악스러운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나라나 군사훈련한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적을 이롭게 하는 간첩이지요.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정원 안에 있는 연못은 비록 크지 않고 아담하지만, 그 아름다움에서는

어디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세 걸음 걸으면 한번 휘어지고 다섯 걸음 걸어가면 또 직각으로 굴절되고...

이런 회랑이 백 간이 넘는다 하는데 지붕까지 덮고 있어 비가 와도 눈이 와도

해가 비춰도 언제나 걸을 수 있는 전천후 회랑입니다.

 

이렇게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누각(樓)을 만나고, 다시 걷다 보면 이번에는 정자(亭)를

만나게 되며 몇 걸음 또 옮기면 이번에는 비록 크지는 않지만,

작은 쉼터(堂)를 마주하고 다시 걸어가면 작은 방(齋)을 만납니다.

물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면 다리(橋)를 건너게 하였고 멋진 테라스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구석에 숨겨놓았습니다.

 

젠장... 걸음을 걸어갈 때마다 바뀌는 주변 풍경에 넋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이런 곳을 걸어가실 때는 함께 동행하는 마눌님 손을 꼭 잡으셔야 합니다.

금세 한눈을 팔고 밀리는 고속도로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옆에 선 마눌님 손을 잡는다고 손을 내밀어 잡다 보면

예쁜 중국 샤오지에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손을 잡힌 그 샤오지에도 풍경에 빠져 정신 나간 여자이긴 하겠지요.

 

걸음마다 아름다움이요, 눈길 머무는 곳이 풍경이라.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수 있겠어요?

사람은 아름다운 풍경에 빠지면 잠시 몽롱한 상태에 빠져 넋을 잃잖아요.

 

이렇게 작은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기에

이곳을 중국에서도 가장 빼어난 정원 속의 장원이라는 원중지원(園中之園)이라 한답니다.

자부심을 느껴도 충분하겠어요.

회랑은 강시도 쫓아오지 못하게 직선으로 만들지 않았네요.

 

아!!!

이 죽일 놈의 아름다움...

젠장! 연못에 비친 그림자까지도 아름답습니다.

바람에 일렁거리는 버들잎마저 잠시 걷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회랑을 걷다가 기둥에 기대어 우두커니 서서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습니다.

 

이때 가만히 마눌님 손이라도 슬그머니 잡아주세요.

그리고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세요.

눈동자 안에는 사랑이 가득 고여 있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해취원은 정원으로 정원 안에 또 하나의 정원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물론 이화원 안에 속한 정원이지만, 이곳은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을 자랑한다 합니다.

정자, 누각, 다리, 회랑들이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강남 풍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원내에는 8개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8 경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풍경 지구가 각각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는데 짜이스탕(載時堂), 모먀오쉔(墨妙軒), 찌우윈러우(就雲樓), 딴삐짜이(澹碧齊),

수웨이러팅(水樂亭), 즈위차오(知魚橋), 쉰스징(尋詩徑), 헌꽝똥(涵光洞)이 그것입니다.

이름을 몰라도 구경하는 일에 아무 방해도 받지 않습니다.

 

그중 즈위치아오(知魚橋 : 지어교)라는 이상한 이름이 있는 다리를 살펴보렵니다.

지어교라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다리가 지어교입니다.

정원 중간에 놓인 지어교(知魚橋)는 호수 위에 살짝 걸친 듯 낮게 설계되어

그 안에 노니는 물고기들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지어교(知魚橋)라 했습니까?

 

손만 뻗으면 금방이라도 손에 고기가 잡힐 듯 말입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가깝게 고기가 노니는 모습을 감상하라는 의미일 겁니다.

어디 투망질 한 번 할까요?

 

이름 또한 지어교(知魚橋)로 고기를 아주 잘 아는 다리인가 봅니다.

다리가 고기를 잘 아는 겁니까?

고기가 다리를 아는 겁니까?

다리와 고기는 무슨 관계입니까?

아니면 그 다리 위를 걷는 사람이 고기를 잘 아는 사람입니까?

 

위의 사진은 딴삐짜이(澹碧齊 : 담벽제)라는 일종의 홀입니다.

저곳에서는 무슨 일을 했을까요?

 

환장할 일입니다.

다리던 사람이든 고기 대가리 속에 든 일을 어찌 알았을까요?

고기는 어찌 사람을 알고 다리를 안단 말입니까?

 

이 다리 이름은 고대 중국의 유명한 철학자인 장자(庄子)와 혜시(惠施)가 헤엄치는 물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나눈 물고기들의 행복에 관한 재치 있는 이야기에서 따온 말이라

하는데 정말 장자도 무척 한가하고 심심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유명한 사람은 결국, 고기 마음을 읽을 줄 아나 봅니다.

 

佳人도 고기라면 좀 알지요.

맛 말입니다.

그게 회로 먹을 때와 구울 때, 그리고 찜을 할 때에 맛이 같은 고기라도 다 다릅니다.

울 마눌님은 고기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면서 지어교(知魚橋)를 왜 저리 앞장서 건너갑니까?

채식만 하기에 고기 맛을 어찌 알겠어요?

 

佳人이 장자(庄子)와 혜시(惠施)가 만나 담론을 나누었던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한마디만 전해주고 싶습니다.

민물고기는 날로 먹으면 위험하다고 말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고기 머릿속에 든 생각을 어찌 알아낸단 말입니까?

제대로 알기 위해 지능지수를 고기 수준으로 맞추던가

내세에 물고기로 태어나면 몰라도 말입니다.

 

지어교라는 다리는 건륭제 시기에 만들었다 합니다.

세상의 풍류객인 건륭의 지능이 금붕어 수준이라는 말입니까?

건륭제는 이 다리 끝에 있는 홍교에다가 시도 남겼습니다.

정말로 예능감이 풍부한 황제였나 봅니다.

 

정원 밖에는 나지막한 성벽이 있는데 이를 즈치똥라이(紫氣東來 : 자기동래)라

부른다는데 이 말은 고대 중국의 저명한 학자인 노자가 함곡관을 지났다던 고사에서 유래한

길조가 도래하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 하네요.

 

해취원을 내일 하루 더 돌아보렵니다.

왜?

너무 아름다워서 말입니다.

자유여행이란 아름다우면 더 연장해도 되잖아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지어교는 장자(庄子)와 혜시(惠施)가 다리 위에서 만나 나눈 담론을 바탕으로 만든 다리입니다.

장자의 (외편)이라는 글에 나온 말이라 합니다.

 

장자가 잘난 체하며 먼저 말을 합니다.

"피라미가 나와 한가로이 놀고 있소. 이게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 아니겠소?"

혜자가 가소롭다는 듯이 튕기며 한마디 거들죠.

"헐! 당신은 물고기도 아닌데,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우?"

 

장자가 부아가 나서 말합니다.

후세 사람이 장자는 알아도 혜자는 잘 모르는데 혜자가 아니꼽게 또박또박 말대꾸합니다.

"당신은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어떻게 아슈?"

드디어 말장난하자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혜자도 아무리 후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늘 한 번 장자와 맞짱 뜨고 싶은 게지요. 

"나는 당신이 아니라서 본래 당신을 모르지요.

당신도 본래 물고기가 아니라서 당신이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틀림없는 일이 아니겠소?"

 

장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당신은 나에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은 것은

당신이고 이미 내가 그것을 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기에 나에게 물은 게 아니겠소?

그렇다면 내가 고기의 기쁨을 알고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소?”

 

지어교를 건너가며 두 사람의 말다툼을 생각해 봅니다.

현자라고 소문만 자자하게 난 두 사람이 토닥거리는 대화를 보면 웃어야 합니까?

아니면 울어야 합니까.

 

두 현자가 서로 놀고 자빠진 게 틀림없지요?

우리의 호프 덜수와 세상의 현자라고 소문 난 사람의 대화 수준이 동급입니다.

덜수와 대화해 보시면 언제나 이런 말을 하지요.

이런 사람을 우리는 철학자니 뭐니 하며 존경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