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림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2012. 1. 26. 08:00중국 여행기/베이징(北京)

원림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을 거닐던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만 빠지면 나라도 거덜 낼 수 있습니다.

즐기는 삶도 일을 하다 재충전을 위해 즐겨야지 즐기는 일에만 빠져버리면 사람이 오히려 병이 들지요.

그래서 중용이라는 말이 생겨났나 모릅니다.

 

해취원의 원래 이름은 혜산원인데 그 유래는 건륭의 혜산원팔경시서(惠山園八景詩序)의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치가 펼쳐진다.(一亭一徑, 一步一景, 景隨寶移, 步步皆奇趣)"에서

따온 말이라 합니다.

이곳에는 특별히 8경이라 하여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고 하네요.

물론 만들어 낸 말이겠지만...

 

팔경을 하나씩 살펴보렵니다.

시취(詩趣) : 춘하추동 4계절의 경치가 모두 독특하고 아름답다.

수취(水趣) : 후호에 떨어지는 물의 낙차를 이용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옥금협을 건설했는데

물이 바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딩동딩동 하며 울리는 것이 鳴琴소리 같다 하여 수취로 성취하였다는 의미랍니다.

 

교취(橋趣) : 원내에 지어진 다리가 모두 독특하고 조화롭기에 볼수록 새롭다는 의미랍니다.

서취(書趣) : 원내에 다양한 서법으로 쓰인 여러 가지 비석과 석각들이 즐비하다는 의미입니다

루취(樓趣) : 서쪽에 있는 누각은 원외에서 바라보면 1층이지만, 원내에서 보면 2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높낮이도 다르고 모양 또한 판이하기에 그리 부른다 하네요.

 

화취(畵趣) : 원내 화랑에 그려진 쑤저우의 채화가 쿤밍호 호반에 장랑에 비교할 만큼 아름답다.

랑취(廊趣) : 회랑들이 원내의 전각과 누각, 정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3보를 걸으면 굽어지고 5보를 걸으면 꺾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굴곡이 변화무쌍하여 비교적 곧게 이어진 장랑과 비교할 때 색다른 맛이 있다 하네요.

 

방취(仿趣) : 이곳은 이화원에 속한 원림 속의 원림인 황실의 원림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모습을 탈피하여

개인이 만든 사가 원림을 모방하여 지어졌기에 화려하면서 소박하고 요란스러우면서

단아한 이곳만의 독특한 풍취를 느끼게 합니다.

이곳은 원림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지표인 셈입니다.

그야말로 원림의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지요.

 

그런데 잠시 꿈길처럼 훑어본 해취원의 깊은 맛을 어찌 佳人의 하찮은 글로 표현할 수 있겠어요.

부끄럽고 한심하고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지만, 어찌합니까?

그냥 맛보기로 보았을 뿐이네요.

만약 다음에 다시 간다면, 이화원의 넓은 곳을 바보처럼 헤매지 않고 이곳만 거닐어 보고 싶습니다.

 

해취원을 거닐며 예전에 읽었던 헌공(獻公)과 여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춘추전국시대 진(晉)나라 헌공 말입니다.

끄하하하~ 새공이 아니고 헌공이랍니다.

이름다운 원림인 헤취원에 왔으니 오늘 헌공과 여희와의 사랑이 무르익었던 이야기나 할까 합니다.

 

헌공은 이웃나라인 여융을 침공하기로 하고 국가 공인 점술가인 부채도사 사소(史蘇)에게 점을 칩니다.

그러나 사소는 점괘가 좋지 않다고 헌공에게 토벌 계획을 연기하거나 포기할 것을 진언했지만,

헌공은 "인생? 까이꺼 뭐 있어?" 하며 그의 말을 무시하고 토벌에 나섭니다

그러나 전쟁에 나갔던 헌공은 여융을 공략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문이 궁에 도착합니다.

게다가 여융의 아름다운 미녀인 여희와 그녀의 동생인 소희를 세트로 함께 상납받아 흐뭇한 기분으로

돌아오게 되고 사소는 헌공이 대승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왠지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여희와 소희는 여융의 지형을 닮아 무척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성품 또한 넓은 광야를 거침없이 달리듯 활달하고

피부는 흰 구름처럼 맑고 희어 정말 누가 보아도 군계일학!

그러니 한족에 식상한 헌공은 이국적인 그녀에게서 뿜어 나오는 야릇한 매력에 그날부터 푸욱~ 빠져버린 겁니다.

 

그날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를 적당히 끝내고 헌공은 서둘러 여희의 방을 찾습니다.

헌공은 주변에 적군의 숫자가 많은 것은 걱정스러워도 주변에 여자 많은 것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 영웅(?)이지요.

여희는 헌공의 시선이 이미 자기에게 꽂혀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소첩 폐하가 오시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라고 하는데 목소리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맑습니다.

 

헌공의 눈도 빠지려고 했는데..... 아니? 여희의 눈까지?

그럼 제대로 눈이 붙어 있는 사람은 저와 여러분밖에는 없습니다.

환장하게도 이미 헌공은 오히려 포로로 잡아온 여희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전쟁터를 누비며 산전수전 다 겪은 헌공이라 무쇠로 만든 칼과 화살은 막을 수 있지만,

아름다움으로 덤비는 나긋나긋한 여자는 숨소리 마저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래서 여자는 때에 따라 창칼보다도 더 무서운 무기가 됩니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헌공과 여희의 첫날밤을 여러분과 함께 두 눈을 부릅뜨고 창호지를 뚫고 지켜보려 했지만, 끝나버렸습니다.

 

그 후로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한 시도 여희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지내는데 어느 날 여희가

매우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헌공은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라고 물어봅니다. 

여희는 잔뜩 교태를 부리며 답합니다.

 

"제가 이곳에 온 이후 폐하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원래 저는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푸른 풀밭에서 흰 구름을 벗 삼아 새들과 함께 뛰어다니며 놀고 지냈습니다.  

이곳은 너무 답답합니다.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이곳은 ....." 하며 말끝을 흐립니다.

말끝을 흐리는 것은 모두 말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여희가 자라고 살던 곳은 유목민의 고장이라 천막생활에 늘 들판을 달리며 자연을 벗 삼아 야생마와 같이

자유롭게 지냈던 터라 이곳 궁궐의 답답한 생활은 그녀를 숨이 막히게 하지요.

바로 여기 해취원처럼 아름다운 원림 하나 지어달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헌공은 여희를 위해 원림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여희가 이런 부탁을 하는 은밀한 이유를 헌공은 모릅니다.

여융부족은 유목생활을 하고 살기 때문에 들판이 그들의 생활이고 사랑도 그곳에서 자주 나눕니다.

드디어 원림에서 여희는 헌왕은 물론 그의 심복인 양오와 관오까지 사랑의 노예로 만들어버립니다. 

원림에서는 우리나라 옛날 영화에 늘 나오는 클래식한 놀이인 "나 잡아 봐라~" 게임도 합니다.

 

이제 여희에게 남은 일이라고는 하루빨리 용의 씨앗을 잉태하여 잘 키운 알라 용 하나가 열 이무기 부럽지 않게

만드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녀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헌공의 밤낮 없는 노력봉사로 드디어 특제품이 탄생하고 그 이름을 해제(奚齊)라고

지었으니 사실 그 아이가 누구의 씨앗인지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제 그녀의 지위는 하늘을 찌릅니다.

그러나 이미 헌공에게는 해제 외에도 4명의 아들이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희는 해제를 낳은 후 다른 아들을 태자만 남기고 하나하나 모두 무장 해제시켜 버립니다. 

 

전방에 국방의 의무를 하고 있던 태자 신생은 사실 여희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헌공이 왜 헌공이겠어요. 나이가 많으니 새공이 아니고 헌공이지요.

그녀는 태자를 원림으로 부르고 헌공에게 원림 안에 있는 열경루라는 정자에서 몰래 지켜보게 합니다.

미리 머리에 꿀을 바른 여희는 태자와 원림을 거닐자 벌 나비가 꿀을 찾아 여희에게 달려들고 여희와 태자가

벌을 좇는 모습은 열경루에서 지켜보던 헌공의 눈에는 태자가 여희를 끌어안으려 하고

여희가 몸부림치며 빼는 모습으로 비칩니다.

 

열경루 안에 있던 헌공은 열을 받게 마련이지요.

CCTV로 다시 돌려봐도 틀림없이 자기 아들이 여희를 희롱하는 모습입니다.

나폴레옹도 그랬죠?

권력과 여자는 함께 나눌 수 없다고요.

아들놈이 사랑의 적이라니...

당장 요절을 내려는 헌공을 달랜 여희는 천사표 바로 진품입니다.

물론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꾸며 태자를 눈 밖에 나게 했지만, 그때마다 여희는 태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여희는 이제 태자를 완벽히 보낼 마지막 작업을 준비합니다.

죽은 태자의 모친인 제강이 자기 꿈에 나타났다고 다시 제사를 모시게 합니다.

제사를 모신 태자는 여희가 황후였던 어머니의 제사를 다시 성대히 모시게 해 준 고마움에

제사음식을 궁으로 들여보냅니다.

그 음식에는 이미 여희가 독을 넣었습니다.

 

헌공이 손을 내밀어 제사 음식을 덥석 집어 먹으려는데 여희가 급히 제지합니다.

"폐하~ 아무리 아들이 보낸 음식일지라도 궁 밖에서 들여온 음식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혹시?" 하며 음식 하나를 집어 마당에 있는 개에게 던져주자 개가 어찌 되었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음식을 먹고 하늘이 하얗게 변하며 바로 그 자리에서 벌렁 자빠져 게거품을 입에 물고

경련을 일으키다가 바로 죽어 버립니다.

왜 저 개는 그곳에서 얼쩡거리다가 죽게 되는지....

살아 있는 주위의 모든 사람이 죽은 개를 바라보며 모두 놀라 자빠집니다.

 

헌공이 놀란 가슴에 이번에는 술잔을 들어마시려고 합니다.

또 여희가 제지합니다.

"폐하! 술도 한 번 검사를 한 후...." 하며 주위를 둘러봅니다.

이번에는 술을 한 잔 따라 아래에 있던 호위병과 눈이 마주치자 그 녀석에게 내리며 마시라고 합니다.

호위병에게 술잔을 내린 이유는 개는 술을 원샷으로 마시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호위는 방금 멀쩡한 개가 벌렁 자빠져 죽는 광경을 본 지라 자기도 벌렁 자빠져 개처럼 죽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바로 자기가 조금 전에 게거품 물고 죽는 데자뷔 현상처럼 느껴집니다. 

왜 하필 오늘 근무를 바꾸어 제일 앞줄에 섰단 말입니까?

정말 재수 없는 녀석입니다.

그리고 먼 산만 바로 보고 있을 것이지 왜 여희와 눈이 마주쳐서.....

먹고 싶지 않습니다.

어머니~ 정말 먹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명입니다.

먹어도 죽고 먹지 않아도 죽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아들아! 지난밤 꿈자리가 심란하는구나.

오늘 근무 중 절대로 눈알 굴리지 말고 먼 산만 쳐다보거라.

그리고 근무가 끝나면 스탠드바에 들려 누가 술을 그냥 권하더라도 절대로 받아 마시면 안 된다.

여자가 꼬리를 치더라도 절대로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알았지?"

 

정말 어머니 말씀대로 공짜로 주는 술인데 받아먹고 싶지 않습니다.

근무 중 음주행위인데 그래도 어쩝니까?

공연히 예쁘다고 소문난 여희의 모습을 근무 중에도 힐끗거리며 쳐다보다 그만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헌공이 내려다보고 "어여~ 원 샷!"을 외치는데요.

이때는 당연히 먹고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립묘지라도 가고 연금이라도 나오지요.

안 먹는다고 버텨봐야 강제로 먹게 되고 개죽음합니다.

 

옆에 서 있는 동료가 혹시 불똥이 자기에게 튈까 봐 "빨리 마셔~"라고 재촉합니다.

결국, 폼 나는 황금 잔으로 된 임금 전용 술잔으로 원 샷 하고 역시 개처럼 벌러덩 자빠져

똑같은 자세로 죽어버립니다.

 

세상에 이렇게 황당하게 죽는 일도 있습니다.

차라리 이럴 때는 뎅기열에 걸려 병원에 입원이라도 했다면 살 수 있을 텐데....

이후 태자는 스스로 자신의 유효기간을 만료해 버립니다.

 

세월이 흘러 결국 헌공은 병으로 세상을 뜨며 열한 살짜리 해제에게 왕위를 계승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이제 여희가 꿈꾸었던 일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아무기가 될 뻔한 해제는 어미인 여희에 의해 졸지에 용이 됩니다.

잘 키운 용 하나 열 이무기 부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궁중에는 또다시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해제는 물론 여희와 소희도 모두 죽습니다.

여희는 눈을 감으며 자기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거침없이 마음껏 내달리던 초원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사랑과 세상을 가슴에 품는 꿈을 키웠던 원림을 떠올립니다.

그린 그린 그래스 어브 홈을 읊으며 말입니다.

그 원림도 해취원처럼 아름다운 그런 원림이었을 겁니다.

대하소설보다 더 많은 양의 이야기를 이렇게 짧게 하다 보니 제대로 쓸 수 없군요.

마치 비디오를 초고속으로 돌린 기분입니다.

  

때로는 버드나무 낭창한 날에 햇볕을 그대로 듬뿍 담은 날도 있습니다.

눈이 부셔 제대로 앞을 바라볼 수 없음은 햇볕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아름다운 미인을 바라볼 때 눈이 부시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어요? 

 

그 빛이 호수 위를 비출라치면 물에 반사한 모습조차 미치도록 아름답습니다.

해취원은 역시 해취원이었습니다.

넓지는 않지만, 작은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만들어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누구나 좋아할 곳입니다.

 

해취원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구석에 감추어 두었네요.

만수산 동쪽 끝에 숨어 있습니다.

그냥 다니다 보면 지나칠 수 있습니다.

이화원을 가시려면 이곳은 빼놓지 마시고 돌아보세요.

이제 내일은 쑤저우지에(蘇州街 : 소주가)라는 소주가로 갑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추녀 끝에 걸린 풍경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어야만 맑은 소리를 냅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사 평온하다면,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기에 비로소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