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허위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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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만든 배, 스팡(石舫 : 석방)
이제 이화원도 우리 형편에서는 거의 돌아보았습니다. 체력도 고갈되고 지치기도하고 이런 상태가 되면 보는 게 감명 깊지 않고 시큰둥해지는 시간이지만, 이번에는 이화원 서쪽에 있는 스팡(石舫 : 석방)이라고 부르는 돌로 만든 배가 있다 하여 찾아갑니다. 쑤저우에서 스팡을 찾아가는 길, 그곳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화쭝여우(畵中遊 : 화중유)라 부르는 누각이 있는데 만수산 서쪽에 세워진 정자식 누각으로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기 위한 전망대용으로 만들어졌다 합니다. 각각의 전각들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간에 8 각형 2층 누각이 세워져 있고 그 양쪽에 역시 8각형 정자가 서로 대치되어 있는데 각각 아이샨(愛山 : 애산)과 졔치우(借秋 : 차추)라 부른답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쿤밍호의 풍경은 비췻빛 물결과 쪽..
2012.01.28 -
이화원의 쑤저우지에(蘇州街 : 소주가)
아름다운 해취원을 나서 이번에는 쑤저우지에(蘇州街 : 소주가)로 가렵니다. 소나무가 많은 숲길을 따라 산책하듯 걸어가면 됩니다. 이 길은 장랑처럼 많은 사람이 없어 아주 호젓한 기분으로 걸을 수 있습니다. 소주가는 통표를 샀거나 아니면 별도의 입장 문표를 사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는 길에 인휘성관(寅輝城關)이 보입니다. 이화원 안에는 모두 6개의 성관이 있다고 하는데 인휘성관은 그중 하나라 합니다. 물론 처음은 건륭제 때 만들었다 합니다. 동쪽에는 여명이라는 의미의 인휘(寅輝)라는 글이 있고 반대편인 서쪽에는 시원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읍상이라는 글을 써넣었습니다. 서쪽의 통원성관과 더불어 소주가로 들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옛날에는 이화원 안이라 하여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게 아니었..
2012.01.27 -
원림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원림은 무조건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을 거닐던 사람은 그 아름다움에만 빠지면 나라도 거덜 낼 수 있습니다. 즐기는 삶도 일을 하다 재충전을 위해 즐겨야지 즐기는 일에만 빠져버리면 사람이 오히려 병이 들지요. 그래서 중용이라는 말이 생겨났나 모릅니다. 해취원의 원래 이름은 혜산원인데 그 유래는 건륭의 혜산원팔경시서(惠山園八景詩序)의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경치가 펼쳐진다.(一亭一徑, 一步一景, 景隨寶移, 步步皆奇趣)"에서 따온 말이라 합니다. 이곳에는 특별히 8경이라 하여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고 하네요. 물론 만들어 낸 말이겠지만... 팔경을 하나씩 살펴보렵니다. 시취(詩趣) : 춘하추동 4계절의 경치가 모두 독특하고 아름답다. 수취(水趣) : 후호에 떨어지는 물의 낙..
2012.01.26 -
시에취위엔(諧趣園 : 해취원)을 아십니까
만수산 동쪽의 언덕을 따라 내려오다가 비 오시는 날에는 비 내리는 풍경과 달이 휘영청 뜬 밤에는 달구경하기 위해 지은 경복각이라는 누각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를 보았습니다. 자유여행이 좋은 이유는 이렇게 마음대로 보고 싶으면 보고 걷고 싶으면 걷는 겁니다. 이제 그 아래에 있는 시에취위엔(諧趣園 : 해취원)으로 가렵니다. 이곳이 아름다운 이유는 원림 속의 또 다른 정원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즐기며 살았던 사람의 마음은 당연히 아름다워야 합니다. 사람의 근본은 아름다움을 보면 마음이 아름다워지게 되어 있지요. 이름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해취(諧趣)라 하면 운치가 아주 조화롭게 어울려 있다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만큼 운치에 관해서는 자신 있다는 의미가..
2012.01.25 -
서태후와 만두, 그리고 이화원.
10월 17일 여행 7일째 오늘은 이화원을 가보렵니다. 이화원은 중국 최대의 황실 정원이라고 했나요? 만약, 이화원을 구경하고 오후에 시간이 나면 그 옆에 있다는 원명원에도 다녀오렵니다. 오늘이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 밤에는 미리 기차표를 예약한 대로 내몽골의 성도라는 후허하오터를 향하여 갈 예정입니다. 어제저녁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서 구부리라는 만두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서태후 마네킹을 이용한 선전을 하는군요. 이 가게는 원래 톈진에 있었던 만두가게라 하더군요. 그런데 당시 서양 연합군과의 혼란한 격동기에 우연히 서태후가 톈진의 구부리라는 만두가게를 들렸던 모양으로 워낙 식탐이 많고 미식가였던 서태후는 그곳에서 만두를 맛본 후 그만 그 맛에 반한 모양입니다. 나중에 전쟁을 피해 시..
2012.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