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논(Memnon)의 거상(巨像) 두번 째 이야기.

2023. 11. 27. 04:00이집트여행

위의 사진 속에 보이는 건물 기초는 테베가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을 때 이 지역에

수도를 정했고 파라오가 죽은 후 무덤 도굴이 심했던 피라미드를 포기하고 룩소르 지역 계곡에

왕의 무덤을 집단으로 건설할 때 공사 인부들이 기거하기 위한 숙소로 사용했던 흔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른쪽 석상을 봅니다.

이번에 보는 석상도 많이 훼손된 모습인데 다리 옆으로는 아마도 그의 딸의 모습이 있었을 겁니다.

늘 파라오의 석상을 만들 때 부인이나 딸 그리고 어머니의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 작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딸 중 한 명이 조각되어 있는 뒤 옆면에는 앉는 의자 부분에 나일강의 신 하피(Hapi)와

상하 이집트의 상징 식물들이 함께 조각되어 있는데 언뜻 보면 많이 훼손되어 쉽게 눈에 띄지는 않네요.

그러나 조각에 머리 부분과 머리 위에 식물의 모습은 확실하게 보이지요.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왼쪽 석상 옆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머리 위로 각각 연꽃과 파피루스를 상징하는 식물이 솟아난 모습이 보이지요? 

두 명의 하피가 마주 보며 끈으로 두 식물을 묶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두 지역을 통일했다는 의미며 완전체 파라오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겠어요?

 

하피 신은 나일강을 관장하는 신으로 나일강의 범람을 주관한다고 하지요.

또 그의 신체 내부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함께 존재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두 명의 하피 신이 함께 묘사되는데 이는 상하이집트의 상징인 연꽃과 파피루스를

묶는 모습으로 두 지역의 통합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아부심벨 대신전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새긴 하피 신의 부조입니다.

물결치는 푸른 몸과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수염달린 남자의 모습인데,

웬만한 여성 뺨치는 거대한 가슴의 소유자이기도하지요.

이 부조는 주로 파라오 석상 중, 앉은 의자 옆에 새겼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나일강의 신이라는 하피 신은 나일강에 크게 의존해 살아가는 이집트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단히 중요한 신 중의 하나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지금도 이들이 사용하는 5파운드 화폐의 도안에 하피 신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조각상에 얽힌 이야기는 옛날에 새벽만 되면 인간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렸답니다.

이 흐느끼는 소리가 마치 트로이 전쟁 때 아킬레우스에 살해당한 아가멤논이 매일 새벽마다

새벽의 여신이자 어머니인 에오스에게 자신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멤논의 거상이라고 했다는데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데스마스크가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입니다.

 

이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오랜 세월에 엎친 풍화작용으로 석상에 금이가 기온이 갑자기 올라가는

사막의 새벽시간에 금 간 곳에 차 있던 공기가 팽창하며 소리가 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석상은 199년 로마의 황제 셉티무스 세르베루스(Septimus Severus)에 의해 보수되었으며

그 후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고 하네요.  

 

아멘호테프 3세의 석상은 현재 약 250여 개 정도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수많은 파라오 중 가장 많은 자신의 삭상을 남긴 파라오라고 하네요.

이는 파라오의 왕 중 왕이라고 칭송받는 람세스 2세보다도 더 많은 석상을 남겼다고 하니

석상의 왕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는 재임 기간 중 평화와 번영의 시기로 태평성대를 이루어 예술적으로도 전성기를 이루었기에

이집트 최대의 번영을 이루었던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그랬기에 아들인 후임 파라오 아케나텐 시기에 아마르나 예술이 꽃을 피웠지 싶습니다.

 

또한, 아문 신을 멘토로 생각해 이름도 아멘호테프로 정했기에 재임 내내 신관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내주었고 많은 재물을 헌금으로 주었기에 신관들로부터 가장 심임을 받아

재임 내내 왕권과 신권을 모두 가지고 있어 아마도 가장 행복했던 파라오였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해 위의 사진에 보이는 그의 후임 파라오

아케나텐은 오히려 아문 신앙을 혐오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하기에 이르렀지요.

아케나텐은 아문 신앙을 부정하고 유일신이자 태양신인 아텐 종교를 새로운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래서 자신의 이름마저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아멘호테프를 버리고 아케나텐으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위의 정면에 보이는 태양이 비치는 모습이 바로 아케나텐이 주창한 아텐 신앙의 대표입니다.

아멘호테프 3세는 전국에 있는 아버지 석상에 새겨진 아버지 이름마저도 열심히 지우고 다녔답니다.

지우는 것으로 부족해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하지요.

 

이런 현상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에게는 일상적인 일로 조상의 업적을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새겨 넣었다니 도대체 조상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장유유서는 물구나무섰나 봅니다.

왕조가 여러 차례 바뀌다 보니 자신과는 다른 조상들이라 그랬을까요?

 

우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왜 조상의 이름마저 모두 지우고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었는지...

그래서 후임 파라오들은 신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때 위의 사진에 보듯이 더 크고 깊게 파내고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어 아예 후대 파라오가 손대기 쉽지 않도록 하기도 했다지요.

파라오 이름이 새겨진 부분이 다른 부조보다 깊은 이유를 알지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왕릉을 보면 왜놈이 도굴하기 전에는 전혀 도굴 흔적이 없었는데

이집트는 피라미드부터 이 지역에 있는 파라오의 집단 무덤을 모두 도굴해 내는 대단한 민족이네요.

그 거대한 피라미드의 돌덩이를 뚫고 들어가 도굴할 생각을 했다니 이 어려운 일을 이들이 또 해냈지 뭡니까!

 

아멘호테프 3세는 멤논의 거상들을 포함해 테베 지역에 있는 카르나크 대신전을 대대적으로

개축했으며 또한 근처에 있는 룩소르 신전을 세우는 큰 업적을 업적을 기기도 했는데

나중에 룩소르에서 보았던 부조 한 점에서 그는 그의 출생신분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는 차원에

그의 어머니가 신으로부터 점지를 받아 자신을 잉태했다는 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지요.

이 내용은 룩소르 신전에 가서 다시 자세히 알아보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네크로폴리스인 나일강 서안(西岸)에 멤논의 거상 뒤로  거대한 장제전을 만들어

자신의 위엄을 자랑하기도 했는데 나일강이 홍수가 날 때마다 이곳은 물에 잠기는 지역이기에

아멘호테프 3세 사후 200년도 되지 못해 완전히 버려졌다고 하네요.

 

좋은 시절 만나 파라오에 등극해 많은 신전 건축을 했지만,

천기를 읽고 나일강의 범람은 읽지 못했나 봅니다.

위의 지도를 보면 멤논의 거상과 그의 장제전 터가 보입니다.

바로 나일강의 범람과 사막의 경계선에 장제전을 건축했습니다.

 

그 지역만 확대해 보면 그 옆으로 밭이 있는데 밭이 있다는 말은 바로 범람 지역이라는 의미지요.

위의 사진에서 오른쪽 끝에 두 개의 석상이 보이도 그 뒤로 보이는 발굴중이 터가

아멘호테프 3세의 장제전 터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후 신전의 석재들은 후대 파라오들이 자신 이름으로 신전이나 궁전들을 세우기 위해

제각기 떼어가면서 하나하나 사라졌고,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보듯이 좌상 두 개만 남고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장제전의 흔적이 바로 위의 우리가 보는 멤논의 거상들이라고 하지요.

유럽의 건축물 대부분은 이렇게 먼저 지었던 유적의 석재를 떼어내어 새로 지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된 전통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