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박물관 3, 투탕카멘(Tutankhamen)

2023. 3. 31. 04:00이집트여행

우리가 구경하는 이집트 박물관(Egyptian Museum)은 1901년에 개장해 122년간

이 자리에서만 전 세계인을 상대로 고대 이집트 문명의 우수성을 보여주었지요.

물론, 1835년 이집트 박물관으로 처음 지어진 곳은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지만요.

 

소장 유물만 120.000 점이 넘을 정도로 지금까지는 이집트에 있는 박물관 중

가장 큰 곳이었지만, 새로운 박물관이 개장하며 이제 그 자리를 넘겨주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집트 박물관의 대표선수이며 이집트 유물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이집트 유물 홍보대사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으로 장식한 유물부터 보겠습니다.

 

현재 투탕카멘 특별 전시실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었기에 사용이 허용된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그러나 외부에 전시된 투탕카멘 유물은 사진 촬영이 허용되었기에 찍을 수 있더라고요.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 중 가장 완벽하게 당시의 유물을 남겨 유명해진 왕이지만,

사실상 재위시절에는 유명무실했던 인물로 도굴꾼도 일부 파고 들어가다가 포기해

그대로 두어 유명해진 파라오로 도굴꾼이 만든 유명 파라오인 셈입니다.

 

먼저 황금 마스크입니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마스크 중 가장 유명한 마스크가 바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가 아닐까요?

원가가 엄청나게 들어간 황금 마스크이니 코로나도 걱정 없지 싶습니다.

다른 파라오의 마스크도 있지만, 예술성에서 가장 뛰어난 마스크입니다.

 

머리에 쓴 얼룩 문양의 두건은 네메스(Nemes)라는 것인데 파라오를 상징한다고 하네요.

턱 밑에 긴 막대기는 수염으로 이 또한 파라오와 권위의 상징이라지요.

그래서 여성의 경우 파라오에 등극했던 사람은 가짜 수염을 달기도 했다고 합니다.

 

머리에 쓴 네메스 위로 독수리(네크벳)와 코브라(와젯) 머리로 장식한 황금관이 있는데

이는 당시 파라오는 가발을 썼다는데 가발과 두건을 고정하기 위한 머리핀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하며 권위와 왕족임을 알리는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상이집트를, 코브라는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동물이니 두 동물의 머리를 이마 장식으로

사용한다는 의미는 상하이집트를 통합해 다스리는 파라오라는 의미겠지요.

코부라는 와젯이라는 여신으로 파라오를 보호하는 수호자로도 생각했다지요.

그래봐야 우리가 볼 때는 새대가리고 뱀대가리일 뿐인걸...

 

투탕카멘 특별 전시실 방 앞을 지키는 아주 잘 생긴 갯과의 자칼이라는 동물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신화에 등장하는 자칼의 머리를 가진 아누비스(Anubis)라는 신을 상징하며 무덤의

수호자이며 시신의 방부처리를 하기도 하고 영혼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죽음의 신 아누비스는 발견 당시에는 묘실 바로 옆에서 파라오를 수호한다는 의미로 목에 화환이

걸린 채 세워져 있었다는데 나무를 깎아 검은색 수지를 바른 다음 황금으로 귀와 눈, 목걸이 등에

금박을 발라 제작했다고 하며 아누비스가 누워있는 상자는 이집트식 신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여행 중 무덤 내부를 다니다 보면 위의 사진처럼 수많은 아누비스의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자칼의 머리를 가진 신인 아누비스가 그려진 벽화입니다.

죽은 사람의 심장과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깃털과의 무게를 비교해서 깃털보다 무거우면

위의 그림에 보이는 악어처럼 생긴 암무트(Ammut)라는 신이 심장을 먹어버렸다는데

심장을 먹어치운다는 말은 고대 이집트에서는 부활하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생전에 죄를 많이 짓고 인생 헛살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심장의 무게가 깃털보다 가벼워야 한다니 이는 부활시키지 않겠다는 의미?

바로 저런 저울로 인해 세상의 모든 법원이 상징하는 것이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인가요?

고대 이집트의 문화가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말인가요?

 

눈화장과 입술화장까지 곱게 한 아름다운 여신으로 보이는 설화석고에 조각한 4개의

항아리가 있는데 이 유물은 카노푸스 단지인 카노픽 항아리(Canopic jar)라고 하는데

사람이 죽으면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신의 급격한 부패를 막기 위해

폐, 간, 위, 창자를 제일 먼저 적출해 이 4개의 항아리 안에 각각 담아

미라 옆에 별도로 보관했다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뇌는 쓸모가 없는 장기로 인식했다고 합니다.

상자의 각 모서리에는 이시스(Isis) 여신이 양팔을 뻗어 상자를 감싸는 형상으로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그 옆에는 '나의 팔은 이 안에 있는 것을 보호하고,

나의 안에 있는 임세티(Imseti)를 수호한다'라고 쓰여있다고 합니다.

 

임세티는 호루스의 네 아들 중 하나인데 장례의 신으로 네 개의 카노푸스 단지 중, 간을 담아두는

인간의 얼굴을 한 단지의 주인공으로 이집트인들은 간을 인간의 감정이 있는 곳이라 여겨서 임세트를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짐승과 연관시키지 않고 위의 사진 왼쪽처럼 항상 사람으로 묘사했다고 하지요.

 

죽으면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미라를 만들 때 이런 장기는 빨리 적출해 따로 항아리에 담는

것으로 보이며 그러나 심장은 인간의 영혼이 들어있고 부활에 꼭 필요한 장기로 인식해 그대로

두었으며 위 사진은 카노푸스 단지를 덮는 덮개인데 이시스(Isis) 여신이 날개를 활짝 펴고 있네요.

 

황금색으로 칠해진 상당히 큰 규모의 나무상자는 미라의 장기를 보관했던 카노푸스(Canopus)

단지를 넣어두는 보관함 역할을 했던 사당으로 위쪽에 보이는 장식은 코브라가 태양을 머리에

얹고 있는 모습으로 우라에우스(uraeus)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쳐들고 위를 노려보고 있지요.

코브라는 파라오의 상징이며 고개를 쳐들고 있다는 말은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상자틀은 나무를 깎아 만들었고 그 위에 금박 판을 붙였다고 하며 부조에는 투탕카멘과 그의 왕비

안케세나멘이 향료를 뿌리면서 축복을 기원하거나 파라오가 파피루스 배에 타서 부메랑을 던지는

장면들이 섬세히 새겨져 있고 특히 여신 몸매의 선이 그대로 드러나 보입니다.

 

사당의 네 곳에는 각각 이시스, 네프티스, 세르케트 그리고 네이트 여신이 팔을 뻗어 사당을

감싸고 수호하는 모습이고 신들의 상징을 머리 위에 얹어두어 구분할 수 있습니다.

미라를 넣어두는 상자도 아니고 네 개의 장기를 담는 상자가 이렇게 화려하다니...

 

투탕카멘의 바깥의 관은 붉은 규암으로 만들고 위의 사진처럼 다시 세 겹의 황금관이 있으며 제일

안쪽에 투탕카멘의 미라가 들어있었다고 하니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보는 듯 하네요.

위의 사진은 투탕카멘의 무덤을 처음 발견했다는 하워드 카터가 미라를 확인하는 모습입니다.

 

무덤 안에서는 수천 점이나 되는 부장품이 발견되었다는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된 것이었으며 특히 그의 석관이 발견된 곳 위로는 두 구의 미라가 더 있었는데 투탕카멘의

딸들이었다고 하는데 근친혼으로 알 수 없는 유전병이 생겨 안타깝게도 두 딸은 태어나기도

전에 사산되어다고 하는데 투탕카멘조차 18세에 죽었으니...

 

위의 두 장의 사진은 투탕카멘의 미라가 있는 무덤의 매장실 입구에 있던 2명의 미라 수호자로

위의 사진에서 보는 네메스를 쓰고 있는 것은 파라오를 상징하는데 왜 경비병으로 나오는지?

신발이 황금으로 만든 샌들입니다.

 

당시에 발견된 모습이라고 합니다.

미라가 안치된 사당과 황금관은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수호자가 서 있는 사이의 벽을

뚫고 들어가야 묘실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발견 당시 묘 무덤 내부에 설치한 묘실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러니 허술하지만, 밧줄로 묶고 오른쪽에는 봉인을 하고 확인했다는 도장 자국이 보입니다.

이 봉인과 인장이 살아있다는 말은 밖은 털렸지만, 이 안쪽은 도굴꾼의 흔적이 없다는 의미겠지요.

 

이번에는 투탕카멘의 가죽의자입니다.

정말 섬세하게 만든 가죽공예의 끝판왕입니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3.300여 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하니...

가죽의자 아래 발받침만 크게 볼까요?

9명의 사람의 형상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는데 모두 손을 뒤로 묶인 자세로 보아 주변국의 포로로

보이고 이렇게 포로를 발받침에 새겨둔 이유는 그저 주변국 사람은 모두 발아래 무릎이라도

꿇리고 발로 밟고 살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행복하셨습니까?

그리고 만족하셨습니까?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워낙 방대하고 또 유물마다 사연이 많이 있기에

여기에 한 번에 적당히 올린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다음 한 편을 더 올려드리고 지나치는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시간을 내어

여행기 말미에 전시된 유물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