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박물관 소장품 2

2023. 3. 27. 04:00이집트여행

한 사내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네요.

무릎 위로는 파피루스라는 종이를 올려두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서기관(scribe) 또는 필경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유명하냐면 현재 이집트 화폐의 200파운드의 인물로 나온 유명인이지요.

한 나라의 지폐를 장식하는 인물이라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라고 보이지요?

서기관으로 시작해 이집트의 파라오에 등극했던 인물도 있었다지요?

 

눈화장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파라오의 말을 듣고 바로 적어야 하기에 눈과 귀가 늘

긴장해야 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오른손의 모습은 펜을 잡고 있는 완벽한 형태를 보여주기에 사실적으로 묘사한 조각상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서기관의 직함은 sesh라고 하는데 사회적 지위로 보아 평민 중 최고의 위치에 있었답니다.

왕명을 받아 적기 위해 파라오의 지근거리에서 근무하려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발했지 싶습니다.

당시에 글을 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특권이었던 시기가 아니겠어요?

초기에만 상형문자가 700자 정도였으나 후기로 넘어가며 1만 자가 넘어갔다고 하니... 

 

서기관의 모습은 이 사람 말고도 박물관에 여러 작품이 더 있었습니다.

아마도 평민출신으로는 가장 높은 대우와 지위가 보장되었기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직업이었고

모든 사람이 자식이 서기관이 되기를 열망했지 싶습니다.

 

서기관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있기에 여기에 소개합니다.

위의 사진 속의 석상이 바로 호렘헤브라는 인물로 서기관으로 있다가 바로 파라오에 오른 게

아니라 군대에 들어가 실력을 키운 후라고 하지만, 일종의 쿠데타가 아닐까요?

 

호렘헤브는 투탕카멘(우리가 아는 그 투탕카멘 맞습니다)의 뒤를 이어 기원전 1300년

전후의 이집트를 30여 년간 통치한 파라오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집트 파라오 역사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이번에는 정말 작은 조각상을 보는데 사진상으로는 크게 보이지만, 실제 높이는 7.5cm로

조각상의 주인공은 파라오 쿠푸(Pharaoh Khufu)로 쿠푸왕은 이미 우리와는 구면으로

이집트의 랜드마크나 마찬가지인 대피라미드의 주인이지요.

 

세상에 가장 큰 피라미드를 만들었고 그 무덤의 주인장인데  현재 남은 그의 모습은

겨우 손가락 중지 길이만 한 7.5cm라니 믿어지십니까?

이 작은 조각상도 심지어 1903년 프랑스 고고학 팀이 고대 유적의 모래를 거르다가

발견한 것인데, Abydos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는 머리가 없이 몸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저 흔해 빠진 조그마한 석상이라 생각하고 무시하려고 했으나 석상 오른쪽에 떡하니 새겨진

호루스라는 글자를 알아보고 기절초풍해서 머리를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고 하네요.

결국 주변의 모래를 약 3주 동안 이 잡듯 뒤지고 거른 끝에 겨우 머리를 찾아 붙여 복원하고

이곳 이집트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가장 고귀한 숙녀라는 의미의 하트셉수트(Hatshepsut) 얼굴 조각상의 모습입니다.

이집트 공주로 태어나 태표적인 여성 파라오가 되었던 인물로 이목구비가 또렷해 보이는

여자이지만, 파라오 권위의 상징인 턱수염을 붙인 모습으로 만든 조각상입니다.

 

그녀는 룩소르 왕가의 계곡 근처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자신만을 위한 장례신전인 하트셉수트

장제전을 큰 규모로 지을 정도로 강한 여성 파라오였으며  이런 대규모의 장제전을 지을 수

있었다는 말은 그녀가 재위 시 대단히 강한 권력을 지녔다는 말이지 싶습니다.

 

위의 사진은 하트셉수트의 스핑크스인데 얼굴 모습으로 보면 위의 얼굴상과 무척 닮았습니다.

그녀는 12살 때 아버지 투트모세 1세가 죽자  후궁이 낳은 세 살 어린 이복동생인 투트모세 2세와

결혼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좋은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파라오는 당연히 근친 간의 결혼이

오히려 권장되는 시기였기에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닌 시대였답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화를 보면 신들은 모두 남매간의 근친결혼을 하며 새로운 신을 만들었으니까요.

어디 고대 이집트뿐인가요?

세계사를 통해 보면 왕족은 유럽이나 우리나라에서도 근친 간의 결혼은

절대로 권장되던 시기도 있었잖아요.

 

그러나 남편인 투트모세 2세마저 다행스럽게(?)도 31살에 일찍 죽자 둘 사이에 아들이 없는

관계로 후궁이 낳은 의붓아들인 투트모세 3세로 권력이 넘어갔으나 그는 겨우 2살이라...

어쩌겠어요? 계모이자 고모뻘이 되기에 결혼은 할 수 없고 하기 싫어도 그냥 섭정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그녀는 그냥 수렴청정을 위해 발을 내리고 뒤에 있기보다는 위의 사진 속의 모습처럼

호루스신에게 향유나 좋은 것만 골라 공양하며 행동하는 파라오로 전면으로 나섭니다.

위의 사진은 그녀의 장제전에서 찍은 사진이니 신도 그녀에게 흔쾌히 파라오의 자리를

허하노라라고 했지 싶습니다.

 

이미 그녀는 투트모세 2세와 결혼생활을 하며 병약한 남편 대신 이미 권력의 짜릿한 단맛을

보았기에 처음에는 공동 파라오라고 했다가 더 힘을 키운 후 비록 여자지만, 정식으로 파라오에

올랐을 것이고 그래서 위의 사진에 보듯이 장제전 기둥에 여자지만 턱에 수염도 붙이고...

 

이번에 보시는 석상은 파라오 카프레입니다.

카프레도 우리가 이미 만나본 적이 있는 왕으로 쿠푸왕의 아들로 대피라미드 옆에 두 번째로

큰 피라미드와 대스핑크스를 건설한 파라오라고 하지요.

 

그의 석상은 기자지구 계곡 아래에서 발견되었는데 고대 이집트의 많은 석상 중 가장 상징적인

조각상이라고 하며 암사자가 새겨진 왕좌에 앉은 카프레는 왕족과 보호의 상징인

코브라가 있는 네메스를 이마에 장식한 두건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석상 뒤로는 매 한 마리가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데 이 매는 바로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존경하는 태양신 호루스 신으로 그리스 로마신화의 아폴론과 동일시되며 파라오의 상징이며

파라오를 보호하는 역할이라고 하니 이 석상의 의미는 호루스 신이 파라오 카프레를 보호하고

왕권을 지지한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입니다.

 

이것 파피루스와 연꽃이 상징하는 의미는 상하이집트 모두를 통일시켜 다스린다는 의미라고

하고 이 석상의 돌은 이집트 최남단인 아부심벨 근처의 Tushki라는 지역에서 채굴된 돌이기에

당시 카프레의 힘이 이미 최남단까지도 뻗쳐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네요. 

 

아이와 입맞춤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이곳 설명에는 파라오 아크나톤이

그의 두 번째 부인인 키야를 무릎 위에 앉히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냥 일반인의 평상시 모습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집트 여행은 주로 고대 문명을 구경하기 위해 가는 곳이지요.

그러기에 미리 이집트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공부하고 가야 조금은 이해하고 유물이나 유적이

보이는데 패키지여행을 간다고 가이드만 믿고 갔다가는 자기의 연애 이야기나 무용담만

잔뜩 늘어놓는 부실한 가이드를 만나면 무엇을 보고 왔는지 알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집트까지 가기 위해 투자한 원가가 얼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