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탕카멘의 부장품, 이집트 박물관 4

2023. 4. 3. 04:00이집트여행

이집트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도 투탕카멘(Tutankhamen)이라는 파라오의 이름은 들어보셨을

것인데 유명해진 이유가 있답니다.

생전의 업적이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된 파라오 무덤의 발굴에도 모두 도굴당해 남은 유물이

거의 없는데 유일하게 온전하게 남은 곳이 바로 투탕카멘의 무덤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아주 멋진 황금의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등받침에는 투탕카멘이 앉아 있고 그의 부인 안케세나문이 건강을 기원하며

몸에 향유를 바르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아래 발받침에는 역시 손을 뒤로 묶인 포로의

모습으로 이렇게 포로를 발로 밟고 있었으니 행복하셨습니까?

 

이번에 보는 사진은 아주 앳된 모습인 투탕카멘의 나무 조각상입니다.

그야말로 18세에 죽었으니 영원한 오빠의 모습으로 홍안의 미소년이 맞습니다.

나무 조각상 옆에는 그가 부활해 하늘나라로 갈 때 신으려고 했던 샌들도 보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나무 상자는 화장품을 담는 상자라고 합니다.

 

그는 10살에 파라오에 등극해 8년 만에 죽었다고 하는데 갑자기 너무 이른 나이에 죽는 바람에

무덤도 제대로 만들지 못해 다른 사람의 무덤으로 만든 곳에 대신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삼강오륜은 잠시 접어둔 나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조상의 무덤을 후대의 파라오가 사용한 경우도 많았다고 하며

무덤을 판 암굴 속으로 들어가 그 옆으로 조금만 더 파고 무덤을 만든 경우도 있다는데

이들은 조상을 조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민족이었을까요?

혈연으로 이어오다 다른 사람이 등극하며 새로운 왕조가 생겼으니 그랬을지도요.

 

투탕카멘의 미라를 이용해 실제 생전의 모습을 재연해 놓은 사진입니다.

당시에 만든 나무 조각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역시 앳띤 얼굴의 소년왕의 모습이네요.

 

투탕카멘의 무용담이 그려진 상자입니다.

그는 그림 속의 모습처럼 용감하게 전투에 참전한 적도 없었을 것이고 그야말로

보여주기 위한 상자로 아마도 저 상자 안에는 소꿉장난하려는 도구가 들어있었을 듯합니다.

 

타조 깃털에 상아로 만든 부채입니다.

파라오의 이름이 새겨진 부채로 손동작을 최소한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이런 부채를 만들어 사용했다니...

 

세네트라는 게임도구라고 합니다.

이는 이집트의 보드게임이라고 하는데 룰이 알려진 게임 중에 가장 오래된 게임이라고 하네요.

투탕카멘 무덤에서는 네 벌의 세네트 세트가 나왔고 그중 두 벌이 온전하게 보존된 채로 발견되었다네요.

 

이 놀이는 죽음의 세계로의 여정을 축소시킨 것으로 체스와 같이 지혜를 겨루는 유희로 간주되었고

사자가 저승으로 떠나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 중에 메헨이라는 뱀신과의 세네트 시합이

들어있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를 보면 투탕카멘은 역시 어린 나이였기에 어지간히도 세네트를 좋아했던 것 같고 위의 사진은

네페르타리의 무덤 벽화로 네페르타리가 이 게임을 하는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남녀노소는 물론, 왕족이나 일반 백성들도 광범위하게 즐긴 게임으로 보입니다.

 

투탕카멘이 부활할 때 신을 샌들로 나무를 꼬아서 만들었고 그 위에 녹색 가죽과 얇은 금박을 덧씌워서

장식했으며 발등의 스트랩은 얇은 나무껍질에 금을 입혀서 만들었네요.

이 정도 품질이라면 지금 만들어 팔아도 명품으로 취급하지 않을까요?

 

 발바닥 부분에는 연꽃과 파피루스 줄기로 포박된 노예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위와 아래는

이집트 주변의 적들을 상징하는 4개의 활들이 각각 한 쌍씩 있습니다.

이집트의 적들을 파라오가 발로 밟고 다닌다는 의미로 전시된 부장품 대부분의 발아래에는

포박된 적의 모습으로 만들었네요.

 

어디 이런 샌들만 있었을까요?

이번에는 더 높은 가격일 듯한 신발을 소개합니다.

금으로 만든 샌들인데 발가락까지 금으로 끼우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살아서는 신기 불편했을 것이니 아마도 죽어 부활할 때 신으려고 만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민초는 가격이 저렴한 국민 신발이라는 파피루스로 만든 샌들을 신었겠지요.

그런데 비록 국민 신발일지라도 엮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인의 솜씨가 풍기는 하이 퀄리티 제품으로 보입니다.

 

이 바닥의 전문가인 도굴꾼이 그 많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을 모두 파헤쳐 유물을

몽땅 가져갔지만, 유독 이곳만 남겨둔 것은 투탕카멘의 존재가 파라오 중에 제일 떨어진다는?

좌우지간 도굴꾼도 포기했기에 부장품이 남아 유명세를 타는 게 아닐까 생각되며 이곳도 일부

작은 부장품은 도굴 흔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남아있기에 유명세를 타고 있겠지요.

 

두 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는 전실의 석고벽을 해체하니 그 안에 묘실이 있었고

커다란 사당 하나가 있었는데 묘실 내부의 사당은 모두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모습으로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처럼 네 겹으로 둘러싸고 있었으며 네 번째 사당 안에 석관이 있었고

그 안에 다시 3개의 황금관이 있었다고 하니 그러니 모두 8겹으로 포장된 마지막 황금관 안에

투탕카멘의 미라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묘실 벽에 그려진 벽화 중 위의 장면은 당시의 장례절차를 알 수 있는 것이랍니다.

이들은 내세를 믿었기에 망자가 영원히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미라를 만들고

미라의 입을 열어주어야 내세에서 말을 하고 먹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투탕카멘의 입을 여는 개구(開口)의식이 바로 위의 벽화에서 볼 수 있네요.

 

이집트에서의 개구(開口)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들은 태양신을 믿었기에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부활을 굳게 믿었기에 말입니다.

죽은 자도 부활하게 되면 말도 하고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겠지요.

 

이집트도 우리의 제사차림과 다르지 않습니다.

망자를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장만을 하게 되지요.

우리와는 거리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고 시간상으로도 다르지만, 다만 망자가 저승에 가면

먹는다는 것은 같지만, 말을 하게 하려고 입을 벌리는 의식은 다르네요.

 

위의 사진은 투탕카멘 무덤 안의 모습을 재연해 둔 전시 사진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부활해 영생을 누린다는 태양신을 믿었답니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짧은 순간보다는 죽어 영생을 누리는 일이 더 중요하기에

이렇게 무덤 안에 죽어 호사를 누릴 수 있도록 많은 부장품을 묻었다고 합니다.

 

발견 당시의 모습은 위의 사진과 같은데 마치 급하게 무덤을 만들고 바삐 떠난 모습으로 보입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죽었기에 미처 무덤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파라오라도 죽은 후에는 그냥 내다 버리듯 했을까요.

 

정말 존재감마저도 없었던 파라오의 무덤이 이렇게 황금으로 잔치를 벌이듯 했는데 

강력한 힘을 행사했던 파라오의 무덤 안의 부장품을 대단했을 듯합니다.

도굴이 되지 않은 강력한 파라오의 실제 무덤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위의 인형 같은 것은 샤부티(Shabti) 또는 우샤브티(Ushabti)라고도 하는 부장품입니다.

이 부장품의 인간형태로 만들었고 재료는 나무나 돌, 상아나 석고 등 여러 가지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초기에 상당히 야만스러웠던 순장의 풍습에서 진보한 풍습이라고 본답니다.

 

중국 은허 유적을 가서 보았는데 무덤에는 실제 순장했던 유골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더라고요.

중국도 나중에는 당삼채나 토용으로 대체되기는 했으니 샤부티와 같은 용도라고 보입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413개의 샤부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사후에도 많은 머슴을 부리고 살고 싶었나 봅니다.

 

미라 옆에 두어 망자가 저승에 가면 오시리스가 시키는 노동을 대신하거나 살아있을 때처럼

시중을 드는 머슴이자 망자를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했다고 하네요.

 농사짓는 샤브티도 있고 서기 샤브티도 있고 호위병 샤브티 등 다양했다고 하네요.

힘을 갖거나 부를 가진 자는 죽어서도 머슴을 부리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일자리 창출이라고 하나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마치 우리나라에서 상여에 꼭두를 태우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했고

샤부티는 다른 무덤에서도 대단히 많이 발견되었는데 그 이유는 도굴꾼이 샤부티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부숴버리거나 그냥 두고 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미라와 함께 같이 두었는데 후대로 넘어가며 샤부티만 별도로 상자를 만들어 

무덤 안에 따로 두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