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상징 오벨리스크는 어디에?

2023. 3. 20. 04:00이집트여행

우리말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이집트에서도 피라미드를 구경하는 것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싶습니다.

새벽 3시경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으로 때우고 11시가 넘어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8시간 만에 식사를 하게 되니 아무리 패키지여행이라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오후 6시에 점심식사를 한다는 의미이니 얼마나 시장하겠습니까?

이렇게 먼 나라 이집트에서는 식사시간을 제때 찾아 먹는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밤새 비행기를 타고 18시간 만에 새벽 5시에 카이로에 도착해 이른 새벽에 공항에서

바로 기자지구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구경하고 비몽사몽간에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카이로 나일강 위에 떠있는 선상식당을 찾았습니다.

 

11시 15분경 야외에 있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구경을 마치고 버스로 이동해

점심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나일강변에 떠있는 뷔페식 식당으로 갑니다.

그러니 이 배는 크루즈나 이동하는 배가 아니라 강변에 식당 용도로 그냥 떠있는 배일 뿐입니다.

아마도 예전에 나일강 크루즈선으로 이용하다가 폐선이 되어

이렇게 강변에 묶어두고 영업 중인가 보네요.

 

위에 보이는 빵은 이집트에서는 에이씨가 아니라 에이쉬라고 부르는 빵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걸레 빵이라고 많이 불린다지요.

빵이 동그랗게 부풀어 올라 속은 비었고 빵 안에 고기나 채소 등을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는다고

하는데 밀을 발효시켜 화덕에서 구웠기에 그냥 먹어도 맛은 좋습니다.

 

이집트 여행 내내 식사 때마다 먹었던 식전 빵으로 아마도 우리가 가끔 접하는 인도나

중앙아시아권에서 먹었던 난이라는 밀가루 빵과 비슷하지 싶고 난이라는 이름은 빵을 의미하는

페르시아 지방에서 사용했던 이름으로 이슬람권에서는 두루 먹는 빵이지 싶네요.

 

밥은 역시 찰기가 없어 불면 날아갈 듯한 밥이었습니다.

또 그냥 밥이 아니라 밥에 향신료와 소금 간을 한 듯하여 어떤 분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는 맛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먹을 만한 맛이었습니다.

 

선상식당의 메뉴는 물론, 이집트식이겠지만, 샐러드바도 갖추고 있어 그냥저냥 우리 입맛에는

먹을만했고 뷔페식이기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 먹으면 되겠고 아무래도 강변에

떠있는 배 위에서 하는 식사라 주변의 풍경도 보면서 즐거운 식사가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오후 일정은 이집션 뮤지움이라는 이집트 박물관에 갑니다.

이집트 박물관은 그 이름만으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곳이지요.

지금 현재 박물관 자리고 협소해 새로운 박물관을 완성하고 이전 중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약소국이라서 사실, 많은 유적을 빼앗긴 나라가 이집트가 아니겠어요?

태양신을 숭배했던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오벨리스크라는 돌기둥이 있지요.

아마도 이집트의 랜드마크나 다름이 없는 것이지요.

 

지금 위의 사진을 보면 바티칸 광장 한가운데 오벨리스크가 보이지요?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가 이 돌기둥 하나 정도는 가져가 우뚝 세우고 싶었나 봅니다.

바티칸은 왜 태양신 숭배의 상징이라는 오벨리스크를 광장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세워두었을까요?

 

그런데 이 돌기둥이 이집트 안에 있는 것은 13개인데 이집트 밖에 나가 있는 것이 더 많은

17개로 가장 많이 가져간 나라가 이탈리아로 바티칸 포함 13개라고 합니다.

그 외 영국 1개, 프랑스 1개, 미국 1개, 튀르키예 1개라고 하며 제가 로마 방문 때 보았던 것만,

바티칸 광장, 나보나 광장, 판테온 광장과 포폴로 광장,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앞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코끼리 조형물 위에도 올려두었더군요.

 

우리도 일본 강점기에 소중한 우리의 많은 유물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대한제국 말기에

여러 번의 양요라는 전쟁을 거치며 조상의 유물이 외국으로 넘어갔지요.

그러나 유물의 숫자와 역사와 전통으로 볼 때 어느 나라를 이집트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나일강의 홍수를 잡기 위해 이집트에서는 아스완 댐을 건설했다지요.

그런데 댐 건설로 많은 신전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는데 이집트 정부에서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유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지요.

 

그러나 유엔이 발 벗고 나서 세게 여러 나라에 도움을 호소해 기금을 모아 수몰 위기에 있는

아부심벨이나 필레신전 등을 더 높은 곳으로 이전해 보호한 적도 있었지요.

이런 사연으로 지금 우리는 위대한 역사 유산을 마음껏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당시 경제적으로는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에 보이는 기념우표를 발행하며 

많은 나라와 함께 유적 보호하는 일에 협조하기도 했다지요.

우표의 사진은 아부심벨 신전의 모습인데 누비아 유적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 지역이 누비아 지역이었기에 그렇게 불렀지 싶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수몰 위기의 모든 유적이 보호되었을까요?

큰 유적을 제외하고는 많은 작은 신전 같은 유적은 나일강 아래로 수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 작은 규모의 신전은 많은 지원을 했던 나라에 기증하여 지금 이집트 신전이

이집트가 아닌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지요.

 

위의 사진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템플로 데보드라는 신전입니다.

이 신전은 스페인에서 기증받아 마드리드로 옮겨 보호되고 있으니

아이러니 한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전에 마드리드에 갔을 때는 왜 이집트 신전이 여기에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렇게라도 보존되고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위의 사진은 수몰된 뒤 건져올린 필레 신전입니다.

이집트 유적으로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전해 신장개업한 신전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그러시면 마드리드에 있는 이집트 신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템플로 데보드(Templo de Debod) (tistory.com)

 

오벨리스크는 모두가 제국주의 시절에 약탈된 것은 아니랍니다.

이집트가 과거에 해당 국가들에게 선물로 보내준 것들도 있고 옛날에 로마 제국

시절과 같이 고대에 이미 유럽으로 옮겨져 있던 것도 많았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지금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프랑스로부터 받은 시계 선물

답례품으로 주었는데 그 시계가 10년도 못 가서 고장이 나버려 폐물이 되었다네요.

처음 프랑스에 선물로 준다고 했을 때 결사반대했던 오귀스트 마리예트는 고장 난 시계를

바라보며 "3천 년이 넘어도 변함없는 보물을 10년도 못 가서 고장 나는

고철덩이와 바꾸고 말았다."라고 푸념석인 한탄을 하기도 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