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앞에 서니 경외심이 듭니다.

2023. 3. 13. 04:00이집트여행

지금 우리는 기자지구의 피라미드를 보고 있습니다.

피라미드 앞에 서니 소름이 돋고 전율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오래전 책에서만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을 직접 대하니 그렇겠지요?

 

기자라는 말은 아랍인들이 '강 건너'라는 말이라고 하니 나일강 서쪽에 있기에 붙여진 명칭이라고 합니다.

고대 이집트부터 무덤으로 만든 피라미드는 약 140 여기 정도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90 여기의 피라미드가

남았고 그중 파라오의 피라미드는 37 여기 정도라고 하네요.

 

그중에서도 처음 만들었을 때처럼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15 여기 정도며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피라미드가 바로 이곳 기자지구에 있지요.

이 피라미드는 파라오 3대에 걸쳐 지은 것이니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손자로 이어지는 삼총사 무덤이네요.

 

위의 사진에서 순서대로 보면 제일 왼쪽에 있는 피라미드가 할아버지 피라미드로 쿠푸왕의 무덤이며

가장 규모가 크기에 대피라미드고 부르며 높이는 지어질 당시에는 146.6m였으나 외벽의 석회암 석재가

뜯겨나가면서 지금은 높이가 138.5m 정도로 낮아졌다고 합니다.

다음 가운데 가장 크게 보이는 것이 높이는 136.4m의 카프레(카프라) 파라오의 무덤이고 

마지막으로 오른쪽이 65m 높이의 제일 어린 손자인 멘카우레(멘카우라) 파라오의 무덤입니다.

 

가운데 있는 피라미드가 가장 크게 보이는데 이는 서쪽에서 본 것으로 쿠푸왕 피라미드가 있는 곳보다는

지형이 더 높은 곳에 쌓았기에 우리 눈에는 더 높아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남기나 봅니다.

 

동쪽에 있는 스핑크스 앞에서 보았던 위의 사진을 통해 보면 사실은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높습니다.

손자 멘카우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피라미드를 건축하느라 국고를 탕진해 재정이 거덜 나서

이렇게 작게 지었을까요?

아니면 효심이 깊어 할아버지와 아버지 무덤의 석재를 뜯어오고 싶지 않아서였을까요.

 

이 피라미드가 건축된 때가 지금으로부터 4.800여 년 전이니까 우리나라의 환웅, 환인, 단군할아버지로

이어지는 3대보다는 더 이른 시기로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이 피라미드를 건설했더라면 여기처럼

세 개의 피라미드를 볼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환웅의 시대가 여기보다는 시기적으로 조금 늦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위의 상상도와 같이 외벽은 반죽한 백색 석회암으로 덮여 있어

지금과는 달리 매끈했다고 하며 맨꼭대기를 장식한 피라미디온은 금과 은의 합금인 일렉트럼으로

만들었기에 아마도 눈이 부셨을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비싼 자재는 모두 사람의 손을 탔고 피라미드는 점차 보호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다른 건물을 지을 때 건축 자재로 쓰기 위해 외벽의 석재를 뜯어갔다고 합니다.

그 흔적은 위의 사진 속에 보이는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꼭대기 부분에 조금은 남아있네요.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모든 피라미드는 석재를 쌓고 그 위를 반짝이는 석회암으로 덮었다는 말이지 싶네요.

그래서 아랍인들은 그 옛날 피라미드를 볼 때 눈이 멀었기 때문에 피라미드를 "빛"이라고도 불렀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피라미드가 화강암으로 덮은 부분이 없는데 이는 그 후 이슬람 사원이나

카이로 궁전을 짓는 등 다른 건축물을 지을 때 석재로 사용하기 위해 떼어냈다고 합니다.

 

이런 비슷한 예로 로마 시내에 있는 콜로세움도 외벽을 장식했던 대리석 석재를 다른 건축물에

사용한다고 모두 뜯어가는 바람에 세계적인 인류의 유적인 콜로세움이 로마의 채석장이라고 했으니

여기 피라미드도 카이로의 채석장이었던 모양입니다.

 

기자지구는 피라미드 외에도 스핑크스도 있고 작은 규모의 피라미드도 보입니다.

주변에 보이는 작은 위성 피라미드는 왕비의 무덤이고 피라미드처럼 사각뿔이 아니고

평평한 지붕의 구조물은 귀족이나 왕족의 무덤이 마스타바라고도 있습니다.

 

처음 원형의 모습은 위의 그림과 같지 않았을까요?

기자지구의 내부 면적이 워낙 넓어 걸어서 모두 보기에는 더운 이곳에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는 기자지구 안 여러 곳을 버스를 이용해 다닙니다.

 

먼저 쿠푸왕 피라미드를 구경하고 난 후 그 옆에 있는 2개의 거대한 피라미드 더 있고

그리고 피라미드 주변으로 작은 피라미드가 있고 마스타바라고 부르는 수많은 고대 유적이 즐비합니다.

지금 보는 이런 피라미드보다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피라미드들이 많지만,

가장 거대하고 완벽한 상태의 피라미드가 바로 기자지구의 피라미드죠.

 

위의 사진은 이집트 화폐로 240파운드(EGP)하는 피라미드 입장권으로 피라미드 외부만 볼 수 있고 내부로

들어가려면 별도로 표를 사야 하는데 여행사패키지에서는 80유로의 선택관광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원래

가격은 440파운드라고 하며 내부 입장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일부 구간은 좁고 허리를 숙여서

오르내려야 하기에 무척 힘이 들고 파라오의 미라가 있었던 왕의 방에는 덮개도 없는 석관 하나만 있고

벽화조차도 없기에 크게 구경거리가 없다고는 하네요.

 

이런 규모의 피라미드를 건축하려면 30년 정도 걸린다는데 수명도 길지 않았을 당시는

아마도 파라오에 등극하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피라미드 건축이 아니었을까요?

산 자가 미리 죽음에 대비해 첫 삽을 떴을 테니 이들은 죽기 위해 살았다고도 보입니다.

 

"From the heights of these pyramids forty centuries look down on us"

"제군들! 이 피라미드 위에서 40세기 역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네."

이 말은 나폴레옹이 이곳에 왔을 때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세월의 흐름을 보며 나폴레옹은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을까요?

아니면 나도 생전에 이런 위대한 유산을 남겨야지 했을까요.

나폴레옹은 그런 말을 남기고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이곳에서 전투를 했다면서요?

 

피라미드는 처음에는 계단식으로 만들었다고 하며 여러 가지 형태로 변천을 거듭하며 지금처럼

일정한 각도를 유지한 삼각형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나 워낙 도굴꾼의 극성과

재정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후세로 넘어가며 파라오는 피라미드 건설을 중단했답니다.

 

나중에 갈 예정인 지금 왕가의 계곡에 지하로 암굴을 파고 들어가는 모습으로

봉분이 없는 형태로 만들었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도굴꾼은 이마저도

내버려 두지 않고 현재까지 하나만 빼고 모두 도굴해 버렸으니...

역시 도굴꾼은 파라오보다 더 위에 있는 어나더 레벨의 사람들이지 싶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기자지구는 제법 넓어서 걸어서만 다니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가능하지만, 사막과도 같은 날씨가 문제겠네요.

패키지여행에서는 기자지구 안에도 우리가 타고 다니는 버스로 이동하는데 입구부터

피라미드 파노라마 전망대 그리고 스핑크스까지 세 번을 정차하며 구경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자유여행자는 내부에서는 말이나 낙타를 이용하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