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慶州 佛國寺) 다음 이야기

2022. 4. 22. 04:14금수강산 대한민국/경상북도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리던 부처의 세상인 불국(佛國)을 꿈꾸며 만든 사찰이라고 하네요.

그들이 꿈꾸었던 걱정 없고 평안한 삶을 그린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여기다가

옮겨놓은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따라서 불국을 향한 신라인의 염원은 세 가지 양상으로 이곳에 나타나 있다고 하네요.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무량수경(無量壽經)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이며, 또 다른 하나는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합니다.

 

이 셋은 각각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일곽과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일곽과

비로전으로 종합되는 전체의 구성을 통하여 그 특징적인 표현을 이루어놓았다고 합니다.

 

자하문 위를 올려다 보면 위의 사진처럼 힌두교 사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위에 보이는 깔라의

형상이 있는데 이는 힌도교에서 말하는 탐욕의 신으로 세상을 모두 먹어치우고 자신의 몸도 먹음으로

두 눈과 입만 남은 모습으로 공자의 집인 공부의 문 앞 조벽에는 탐(貪)이라는 동물과 같은 의미지 싶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려면 세상의 모든 탐욕스러운 욕심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지 싶습니다.

 

불국사의 경내는 돌로 쌓은 석단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습니다.

이 석단은 우리가 방금 보고 올라온 그 아래와 위의 세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겠고 석단의 위는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이고, 그 밑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범부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봐야겠네요.

 

힌두교에서 세상을 셋으로 나눈다는데 제일 아래가 지옥계이며 그다음이 인간계, 그리고 제일 위가

천상계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지옥계는 생략했다고 봐도 되겠네요.

인간계에서 단을 크고 작은 돌로 섞어서 함께 단단하게 쌓은 이유는 개체의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고,

굵고 굳센 돌기둥과 돌띠로 둘러 견고한 통일과 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다고 보입니다.

 

석단은 불국세계의 높이를 상징함과 동시에 그 세계의 반석 같은 굳셈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겠고

그 두 모퉁이 위에는 경루(經樓)와 종루(鐘樓)를 만들어서 한없이 높은 하늘을 향하여 번져가는

묘음(妙音)의 위력을 나타내었다고 한다네요.

 

우리 눈에도 익숙한 다보탑입니다.

다보탑은 규범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기발한 구성으로 4각, 8각 그리고 원을 하나의 공간에

만듦으로 다른 형태지만, 통일된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국보 제20호로 지정되었으며 불국사에서는 가장 유명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목조의 복잡한 구성으로 생각되네요.

탑의 네 모퉁이에 사자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위의 사진 한가운데 보이는 하나만 남아있네요.

탑의 모양이 다양하고 특수하고 화려하기에 층수조차 헤아리기 쉽지 않습니다.

 

국보 제21호로 삼층석탑인 석가탑입니다.

다보탑에 비해 조금은 밋밋해 보이는 보이지만, 이런 형태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석탑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탑의 상층부의 머리장식은 16세기 이전에 사라졌다고 하는데 지금의 모습은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을

본 따서 만들었다고 하며 전설로 내려오는 석공 아사달과 그의 연인 아사녀의 안타까운 이야기와 함께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이라고도 부른다지요?

 

이 두 탑은 불국사의 사상 및 예술의 정수라고 하네요.

그러니 묘법연화경에서 말하는 법신불인 다보여래와 화신불인 석가모니불이 이곳에 나란히

앉았다는 깊은 상징성을 가진 탑으로서, 불교의 이념을 이 땅에 구현시키고자 노력한

신라 민족혼의 결정이기도 하다네요.

 

그러니 동쪽의 다보탑과 서쪽의 석가탑이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로 좌청룡 우백호처럼

불국을 실현하기 위해 남향으로 정갈하게 앉아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대웅전은 석가여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으로 불국토를 표현하는 의미라고도 보입니다. 

지금의 건물은 1765년(영조 41)에 중창된 것으로 그 초석과 석단 등은 대체로 신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며 이 대웅전 안의 중앙 정면에는 수미단(須彌壇)이 있고,

그 위에 목조 석가 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고 하네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竭羅菩薩)이 협시(脇侍)하고 있으며,

다시 그 좌우에 흙으로 빚은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의 두 제자상이 모셔져 있답니다.

대웅전 앞의 석등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네요.

 

위의 전각은 경전을 공부하고 강의하는 무설전입니다.

설법이 없는 무설이라는 말의 의미는 진리의 본질은 말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대웅전 바로 뒤에 있으며 불국사의 여러 건물 가운데 제일 먼저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하네요.

670년(문무왕 10)에 이 건물을 짓고 문무왕은 의상과 그의 제자 오진(悟眞), 표훈 등 몇 명의

대덕(大德)에게 화엄경의 강론을 맡게 하였다네요.

 

이 건물도 1593년 임진왜란 때에 불탄 뒤 1708년(숙종 34)에 중건하여 1910년 이전까지

보존되었으나, 그 뒤 허물어진 채 방치되었다가 1972년에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경론을 강술하는 장소이므로 아무런 불상도 봉안하지 않고 설법을 위한 강당으로서만 사용하였으며,

무설전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진리의 본질, 불교의 오의가 말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 것이라네요.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라는 말이 아닌가요?

 

위의 사진은 비로전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관음전 아래 서편에 있으며 무실전 뒤에 있습니다.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기에 비로전이라고 부른다네요.

 

이곳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따로 건립한 것은 화엄경에 의한 신앙의 흐름이

불국사의 성역 안에 자리 잡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 비로전은 751년 김대성이 18칸으로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수하였으나, 조선말에 무너져서 터만 남아 있었다고 하네요.

1973년의 복원공사 때에 현재의 건물을 지어서 극락전에 임시로 안치하였던 국보 제26호인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을 옮겨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비로전 옆에 있는 관음전으로 올라갑니다.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이겠지요?

무설전 뒤의 한층 높은 언덕에 있으며 751년 김대성이 6칸으로 지었던 것을 1470년(성종 1)에

중수하였는데, 1593년 임진왜란의 병화로 불타버렸다고 합니다.

 

그 직후 1604년에 해청(海淸)이 중창하였고, 1694년(숙종 21)과 1718년에 다시 중창하였다고 합니다.

원래 이 관음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었으며 이 관음상은 922년에 경명 왕비가

낙지공(樂支工)에게 명하여 전단향목(栴檀香木)으로 만든 것이었다고 합니다.

 

18세기 중엽까지는 이 관음상이 있었음이 틀림없는데, 언제 관음상이 없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하네요.

현재는 1973년의 복원 때 새로 조성한 관음입상을 봉안하고 있다네요.

관음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상당히 가파르네요.

 

아직 불국사에는 주춧돌 등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냥 따로 있는 게 제법 많습니다.

그중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신라세대의 화장실 유구입니다.

아직까지도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지만, 지금은 사용하기가 그렇기는 하네요.

 

불국사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