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라는 조령(鳥嶺)의 관문을 지나

2022. 5. 9. 04:00금수강산 대한민국/경상북도

문경새재의 첫 관문인 주흘관(主吃關)의 모습입니다.

1977년에 아주 말끔하게 새로 옛 모습으로 단장해 보기에도 좋습니다.

주흘관은 조선 숙종 34년 (1708년)에 쌓은 영남 제1 관문이라고 하네요.

임진왜란 이후에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쌓은 곳으로 나라를 지키는 중요한 관문의 역할을 했지 싶습니다.

 

문경새재 도립공원은 경상북도 문경시, 충청북도 충주시와 괴산군 지역에 걸쳐 있는 도립공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걷는 새재길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上草里) 일원이라고 하네요.

면적은 5.494㎢로, 1981년 6월 4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네요.

 

이 길이 유명한 것은 특히 옛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오갔던 길이기에 의미가 있겠네요.

주흘관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위의 사진처럼 많은 유생들이 장원급제를 바라고 걸었던 길이 아닌가요?

아마도 당시 유생들의 가장 큰 소망이 저런 어사화가 달린 장원급제가 아니었을까...

 

오늘은 과거보러 가는 길도 아니고 그냥 그냥 산보하는 마음으로 입구부터 새재길을 따라 올라가며

적당한 곳까지 걸으며 맑은 공기나 마시다 오려고 합니다.

주모가 없더라도...

 

문경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조령(鳥嶺)이라고도 부르지요.

 풀이 우거진 고개(草岾)라고도 했고 하늘재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로 했다는 설과 새로(新) 생긴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로 지었다는 설도 전해진답니다.

 

올라가는 도중에 왼쪽편에 영화 세트장이 보입니다.

경복궁, 광화문, 사정전, 동궁전, 궐내각사, 양반집, 초가집 등에서 대왕세종 촬영장을 감상하실 수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선덕여왕과 SBS 제중원, KBS 추노, 넷플릭스 킹덤 등이 촬영되어 드라마 장소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물론, 이곳은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지 싶기도 하네요.

 

지금의 길은 새로 넓게 닦았기에 옛 모습의 길은 중간중간 오솔길이 남아있어 그때를 생각하게 하더군요.

주흘관을 지나 조금 걷다 보니 공덕비니 선정비니 뭐니 하며 이 부근에 있던 비석을 모아둔 곳이 보이네요.

 

그러나 어떤 비석은 위의 사진에 보듯이 아예 바위벽에 비석처럼 그냥 새겨둔 곳도 보입니다.

지금 이런 일이 생긴다면 자연훼손이니 뭐니 하며 페널티를 받을 텐데 그때는 누가 뭐라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새재(鳥嶺)는 영주와 단양의 죽령, 김천과 영동의 추풍령과 함께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까지는

한양과 영남을 잇는 교통, 군사, 경제, 문화면에서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던 곳이죠.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거의 없어 고즈넉한 기분으로 걷습니다.

 

오래전부터 알려온 천연의 험로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서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까지의

험준한 길이 소백산맥의 줄기 주흘산(, 1,106m), 조령산(, 1,017m), 부봉(, 915m) 등에

겹겹이 쌓여 있는 곳이라네요.

 

새재는 이들 고개 가운데서도 가장 지름길이었기에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오갔던 길이라고 합니다.

주로 영남 사람들이 오갔을 길이 아닐까요?

그중에서도 청운의 푸른 끔을 꾼 유생들이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오르내렸을 길이네요.

 

지름틀 바우라고 이름 붙인 바위입니다.

기름을 짜는 기름틀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합니다.

 

위의 사진 속의 모습은 조령원터라는 곳입니다.

나라에서 운영했던 여관과도 같은 시설이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고려와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공익시설이라고 합니다.

 

새재 안에서만 동화원, 신혜원, 조령원 3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약 600평 정도의 넓이라니 제법 규모가 컸던 곳이네요.

이런 곳이 있다는 말은 이곳을 지나다니는 관리들도 많았다는 의미가 아닌가요?

 

위의 사진에 보듯이 옛 모습의 오솔길이 그대로 남아있네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고 하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나무는 서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나 봅니다.

너무도 과한 애정행위를 하고 있네요.

 

동쪽 산곡에는 조령천을 따라 영남로의 옛길에 조선시대에 축성한 세 개의 관문 가운데

제1관문인 주흘관(主吃關),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을 1977년에

말끔하게 단장하여 옛 모습을 되찾아 놓았다네요.

 

위의 사진 속의 상처난 소나무 모습은 일제 말기에 자원이 부족한 일본이 한국인을 강제로 동원해

에너지원인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했던 모습입니다.

100년이 가까워 오는데 아직도 그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소나무입니다.

 

이번에는 주막을 복원해 놓은 모습입니다.

이런 주막이 성업을 하고 있었다는 말은 새재는 영남과 한양을 오가는 가장 큰길이었기 때문에

상인이나 과거 시험을 치기 위한 사람들이 많이 다녔다는 의미기도 하겠네요.

 

시비도 있어 잠시 눈길이 머무네요.

 

 교귀정이라는 정자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고 임지로 떠나는 경상감사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이

업무를 인계인수했던 장소라고 합니다.

 

교귀정은 1470년에 건립되어 지속적으로 사용되다가 1896년 의병전쟁 때 화재가 나 불타버렸답니다.

그 후 버려진 상태로 주춧돌만 남아 있다가 1999년에야 옛 모습을 다시 찾았다네요.

교귀정 앞을 지키는 소나무가 아주 멋지네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너럭바위는 드라마 궁예의 촬영지로 이곳에서 마지막 독백을 하며

죽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덧없이 가는 삶을 왜 욕심을 부리며 살았을꼬...

 

꾸구리 바위랍니다.

전설에 따르면 저 바위 밑에 송아지도 잡아먹을 큰 꾸구리가 살았다네요.

특히 아가씨나 절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도 했다고 하니 재미있는 녀석이네요.

 

소원성취탑도 보이네요.

이곳에 올려진 돌만큼이나 사람은 많은 소망을 갈구하나 봅니다.

옛날부터 이곳을 지날 때 돌을 하나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하고 몸이 아픈 사람은 쾌차하고

상인은 돈을 많이 벌고 아들을 낳지 못해는 여인은 옥동자를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답니다.

 

산불됴심 석비입니다.

산불조심이라는 고어로 새긴 옛날의 표지석이네요.

그때도 지금도 산불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는 석비는 오래된 표석 중 한글로 쓴 유일한 석비라고 하네요.

 

이제 제 2관문인 조곡관에 도착했습니다.

관문이 재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에 세웠네요.

삼국시대에 전해오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며 충주사람 신충원이 이곳에 성을 쌓았다는 자료는 남아있다고 하네요.

 

영남 제1 관문인 주흘관문에서 3km 가면 제2 관문인 조곡관에 이릅니다.

이곳에서 3.5km 떨어진 곳에 제 3관문인 조령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2관문까지만, 걷고 다음 일정 때문에 다시 돌아내려 가야겠습니다.

 

모두 걸으려면 6.5km로 왕복하려면 4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하니...

제2 관문인 조곡관까지는 길이 무척 좋고 완만한 오르막으로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어

무척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올랐다가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