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석빙고, 객사 그리고 민속촌

2022. 9. 28. 04:00금수강산 대한민국/경상북도

이제 월영교를 건너 안동 민속박물관 중 야외박물관이라는 곳을 구경을 합니다.

지금 보고 있는 해서체로 쓴 돌에 새긴 월영대(月映臺)라는 석비는 자연 암벽을 다듬어 그 위에 글자를 새긴 바위입니다.

월영대의 의미는 "달이 비치는 대"라는 의미로 누가 쓰고 누가 새겨놓은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네요.

방금 건너온 월영교란 이름이 바로 이 월영대에서 기인했다고 보입니다.

 

원래 안동 월곡면의 소나무 숲에 금하재(錦下齋)라는 정자 앞에 있었으니

안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1974년 지금 이 자리로 옮겨두었다고 합니다.

글자 그대로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달빛을 감상했던 풍류와 선비들의 여유가 느껴지네요.

 

안동 월영교를 구경하며 다리를 걸어서 건너갑니다.

월영교는 얼마전 이 지역 무덤을 발굴하다가 발견된 한글 편지와 한 켤레의 미투리가 발견되며 세상에 알려진

원이 어머니가 일찍 31살에 요절한 원이 아버님께 올리는 애끓는 사부곡을 생각하며 걸어보았습니다.

 

건너편은 산으로 막혀있는데 앞에 보이는 산 위로 잠시 올라가면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무덤처럼 생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안동 석빙고입니다.

 

석빙고는 이처럼 마치 무덤처럼 만든 곳 안에 돌을 아치 모양으로 쌓아 얼음을 채워두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더운 여름에도 얼음이 잘 녹지 않도록 환기구를 세 개를 만들고 아래는 얼음이 녹으면

밖으로 흘러 나가도록 배수구도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곳 안동 석빙고는 얼음 보관이 주목적이 아니라 얼음과 함께 낙동강에서 많이 잡혔던

은어를 이곳 석빙고에 보관했다가 왕에게 진상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석빙고는 1737년 영조 13년에 예안 현감이었던 이매신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예안군 읍지인 선성지에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하니 기록의 중요성을 알 것 같습니다.

 

석빙고를 지나면 건물 한 채가 보이는 데 이 건물이 바로 선성현 객사입니다.

이 건물이 중요한 것은 조선 시대의 객사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선 숙종 38년인 1712년에 예안현감 김성유가 고쳐지은 것으로 경북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된 것이라요.

 

객사 중앙에는 대청마루처럼 정당이 있고 양쪽으로는 1칸짜리 툇마루와 온돌방이 딸린

정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이 있습니다.

가운데 정당은 정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양쪽 온돌방이 있는 구획보다 지붕이 조금 높습니다.

 

정당에서는 초하루와 보름에 전패를 모시고 궁궐을 향해 절을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안동댐 건설로 1976년 도산면 서부리에 있던 것을 지금의 정소로 옮겨왔다고 하네요.

정당 양쪽에 있는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이 있는 곳은 이 지방을 찾은 사신이나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네요.

 

이제 안동 민속촌을 구경합니다.

지금 보시는 초가 토담집은 민속촌에 있는 집으로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원래 있었던 집을 안동댐 수몰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이곳에 옮겨다 다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사용하지 않는 집이니 그냥 수몰되게 놔두어도 상관없겠지만, 일부러 이곳에 옮겨 복원해 두었네요.

이렇게 복원함으로 인위적이지 않는 사실 그대로의 옛날 집을 볼 수 있어 좋습니다.

 

위의 집은 일방 보통사람이 살았던 집이 아니라 양반이 살았던 집이네요.

남반 고택(南沜古宅)입니다.

조선 고종 때 홍문관 교리를 지냈던 남반 이만형의 고택으로 택호는 교리를 지냈기에 교리댁이라고 불렀답니다.

 

입구로 들어가면 사랑채가 있고 그 안으로 ㅁ자 형태의 안채가 있는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입니다.

대문채는 양반댁 건물로는 특이하게 초가로 지붕을 올린 곳이 이채롭네요.

이 또한 수몰 위기에 처한 집으로 이곳에 옮겨놓았다네요.

 

이곳 민속촌에는 이 외에도 많은 집을 옮겨놓아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집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네요.

안동 야외박물관은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안동 민속촌은 주차도 무료고 입장료도 없는 곳입니다.

 

이제 안동 민속 박물관 구경을 합니다.

박물관 마당에도 많은 돌로 만든 조각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안동웅부(安東雄府)라는 현판이 보입니다.

이 글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안동을 웅부라고 표현했다는 것은 공민왕이 안동의 도움에 고마움을 담아 쓴 글이 아닐까요?

 

박물관 안에는 조상들이 살았던 모습을 다양하게 전시해 두었습니다.

안동의 유명한 헛제삿밥입니다. 

그 외에도 안동식혜, 건진국수 등 안동만의 지방 음식에 보이네요.

 

또 위의 사진은 안동소주를 만드는 모습도 재연해 두었습니다.

안동은 이외에도 안동 간고등어, 안동 찜닭 등 다른 곳과는 달리 내륙지방이기에 발달한 독특한 음식도 있네요.

 

선비의 고장답게 관혼상제의 모습을 전시해놓았는데 관혼상제라 함은 관례, 혼례, 상례 그리고 제례 4가지를

말하며 인간이 태어나 살아가는 도중에 겪는 모든 일이 아닐까요?

각각의 모습을 봅니다.

 

제일 처음 관례(冠禮)의 모습입니다.

관례란 남자가 태어나 일정한 나이가 되면 성인으로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는 의식을 말하지요.

이는 지위뿐 아니라 의무 또한 따르는 일로 지금의 성인식과도 같다고 보입니다.

이때 남자는 상투를 틀고 갓을 쓰게 되며 여자는 쪽을 찌어 올리고 비녀를 꽂게 된다지요.

남자는 관례, 여자는 계례(筓禮)라고 했으며 보통 15세나 20세 사이에 이루어졌답니다.

관례 때 빈객을 모시는데 이때 자(子)가 부여되었다네요.

 

지금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전통 혼례(婚禮)의 모습입니다.

혼례는 인륜지대사라고 하여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여겼으며 지금과는 달리 주로 집안간, 문중 간의 만남이었겠지요.

혼례 과정은 의혼(청혼과 허혼 과정), 납채(사성을 보냄), 연길(혼인 일자 택일), 납폐(혼서지와 혼수를 보냄),

친영(신부 맞이하러 감) 그리고 대례(혼인 당일 행사)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상례(喪禮)의 모습입니다.

옛날에는 효를 기분으로 생각하며 살았기에 부모님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반듯한 효를 실천했겠지요.

죽은 후의 일로 시신을 다루고 무덤에 묻고 영혼을 빈소에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일련의 과정을 상례라고 하겠지요.

상례는 통과의례 가운데 다른 예보다 가장 절차가 까다롭다고 합니다.

 

제례(祭禮)의 모습입니다.

죽은 이의 영혼에게 올리는 의식으로 전통사회에서는 다른 것처럼 아주 중요시되었답니다.

사당에서 지내는 사당제, 기일에 올리는 기제사, 명절에 올리는 차례 그리고 묘지에서 지내는 시제 그리고

계절마다 지내는 사시제가 있다는데 사회가 다변화된 지금의 생각으로는 너무 번거롭다는 생각도 드네요.

 

물론, 살아가며 회갑연이나 중요한 행사가 많았겠지만요.

지금과는 달리 많은 격식을 따졌고 절차도 까다롭고...

현대인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그런 일도 있겠지만, 이 또한 우리 전통문화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갓에 대한 전시 공간을 따로 있네요.

갓에 관한 사진 몇 장 보면서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안동 민속박물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