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산(內延山) 보경사(寶鏡寺)

2022. 9. 2. 04:00금수강산 대한민국/경상북도

보경사를 보러 왔다가 잠시 내연산 계곡을 따라 산책부터 먼저 합니다.

그러나 일단 계곡으로 들어서기는 했으나 물도 준비하지 않았고 옷이나 신발도 산을 오르기에는

준비된 것이 하나도 없네요.

 

그러니 순전히 잠시 걷다가 오자는 기분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오늘 이곳을 찾은 목적과는 어긋나지만, 다시 언제 온다는 보장도 없고...

먼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보았던 풍경 사진 몇 장 보고 갑니다.

 

내연산의 높이는 711.3m라고 하니 그리 높은 산은 아닌 듯합니다.

원래 종남산(終南山)이라 불리다가,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이 이 산에서 견훤이(甄萱)의 난을 피한 뒤에

내연산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며 1983년 10월 1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네요.

 

내연산은 계곡과 폭포가 아주 볼만하다고 하네요.

화산이 터지며 생긴 뜨거운 화산재가 굳어지며 생긴 응회암이라네요.

그래서 응회암이 부피가 줄어들기에 틈이 많이 생겨 식으면서 갈라지는 절리 현상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한번 생긴 틈은 시간이 흐르며 떨어져 나가게 되고 그 결과 절벽이 생기고

계곡이 발달하며 폭포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곳 내연산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12개의 폭포를 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라네요.

 

보경사 부근 일대는 경북 3경(慶北三景)의 하나로 꼽히는 경승지를 이루어 좋은 관광지가 되고 있는데,

그 주된 경관은 내연산에서 동해로 흐르는 갑천 계곡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러나 위의 사진처럼 계곡에는 물이 말라 마른 천이 되었네요.

 

그 이유가 계곡 중간에 물길을 막고 위의 사진처럼 수문을 만들어 보경사 방향으로 물길을 돌려버렸더군요.

그러니 계곡으로는 물이 말라 건천처럼 변했습니다.

 

그 물길은 위의 사진에 보듯이 따로 인공수로를 만들어 보경사 경내로 흐르게 했네요.

이 인공수로 때문에 계곡이 말랐나 봅니다.

 

갑천 계곡에는 상생폭(相生瀑), 관음폭(觀音瀑), 연산폭(燕山瀑) 등 높이 7∼30m의 12개의 폭포,

신선대(神仙臺), 학소대(鶴巢臺) 등 높이 50∼100m의 암벽이 있고요.

깊이 수십 척의 용담(龍潭) 등 심연(深淵) 및 암굴(岩窟)·기암괴석 등이 장관을 이루는 경승지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유명한 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는데 평소 산을 타지 않던 우리가

더 올라간다는 일은 체력적으로나 시간상으로 무리라고 생각해 발길을 돌려야겠습니다.

 

보경사는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내연산에 있는 절로  602년(진평왕 25)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신라의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된 천 년 사찰로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신 대적광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영산전, 팔상전이 중심 당우로 자리 잡고 있다네요.

 

지명은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자신이 진나라의 어떤 도인에게서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웃 나라의 침략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했다네요.

 

왕이 기뻐하여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 속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한 뒤에 보경사라고 했다고 전해온답니다.

사실여부를 떠나 일반인이 생각하면 진평왕이 지명에게 당한 셈이 아닌가요?

 

723년(성덕왕 22)에는 각인(覺仁)과 문원(文遠)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 하고 시주를 얻어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금당 앞에 오층 석탑을 조성하였다네요.

그렇지요.

절에 탑이 없으면...

 

워낙 빼어난 주위 경관을 지니고 있어 경북 3경의 하나로 일컫는데,

계곡의 12 폭포는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지요?

또한, 사찰 주위는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어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긴 나무통은 비사리 구시라는 나무를 파낸 그릇 종류입니다.

경상도에서는 구시라고 하지만, 표준어는 구유라고 하지 싶습니다.

보통 가축을 기를 때 먹이를 주는 용도로 사용했다는데 여기 절에서는 부처님의 공양을 위한 주방의 용기였다고 합니다.

 

보경사에서 큰 행사를 할 때 많은 사람이 찾아오니까 큰 식기가 필요했지 싶습니다.

이 구시 안에는 쌀 7 가마 정도의 밥을 퍼 담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약 4천 명이 한 번에 식사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하네요.

 

그러나 보경사의 여러 전각과 당우들이 펼쳐지지만, 건물의 구성이나 배치에서 별다른 특색을 보여주지는 않네요.

그러나 이곳은 입장료를 받는 곳으로 최근에 모든 절에서 65세 이상은 무료였는데 70세로 올려 받더군요.

 

이곳처럼 군립공원인 내연산으로 오르는 사람까지 절에서 입장료를 받는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지만,

아직 모든 절에서는 양보할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절의 전각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그 의미조차 모르기에 그냥 눈으로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라....

또한 팔작지붕이니 맞배지붕이나 하는 지붕 모양만으로도 구분이 어려운 보통 사람이 아니겠어요?

보경사는 보경사만의 특색 있는 모습은 찾지 못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소나무는 정말 멋있네요.

아주 공들여 가꾼 모습이 느껴집니다.

 

또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탱자나무입니다.

수령이 400년이나 되었다는데 원래 탱자나무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하네요.

 

무료 주차장에서 보경사까지는 제법 많이 걸어들어와야 하며 보경사 입장료는 3.500원입니다.

보경사가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