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정(龍潭亭)과 수운 최재우(水雲 崔濟愚)

2022. 8. 26. 04:00금수강산 대한민국/경상북도

용담성지는 경북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에 있는 천도교 성지입니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의 탄생지로 무극대도를 한울님으로부터 받아 포덕을 시작한 천도교의 발상지이며,

근처에는 대구에서 처형당한 교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답니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셨으니 사람이 곧 한울(인내천 사상)’임을 깨달아

포교활동을 하고 또 그의 뼈를 묻은 곳, 곧 동학 천도교의 성지가 바로 지금 찾아온 용담정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인 삼일독립운동의 구심점은 천도교이며 그 뿌리는 동학이라고 해도 되잖아요.

 

용담정은 최제우가 포교를 하고 용담유사를 쓴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구미산 기슭에 들어선 천도교 수도원 시설이더군요.

 

입구에서 몇 개의 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가장 높은 곳에 용담정이 있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용담정입니다.

이 건물은 1975년 시멘트건물에 기와를 올린 것으로 용담유사에 나오는 옛 용담정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실 용담정이라고 하면 용이 살 듯한 멋진 연못에 만든 정자를 생각했는데...

 

용담정 안에는 천도교의 기도의식인 청수봉존(淸水奉尊, 수운이 참형을 받을 때 청수를 받들고 순교함에 따라

일체 의식을 갖는다는 의미로 청수를 떠놓고 기도함)을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돼 있고

영정이 하나 있을 뿐 장식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정갈함이 지나쳐서인지 초라함마저 느껴진다고 하네요.

 

동학은 ‘사람이 곧 한울’(人乃天) 곧 인간 절대 존엄의 기본정신을 주장하여 19세기 말 사회적 불안기에

핍박과 수탈을 당하던 민중들 사이에 큰 지지를 받았으나 곧 관의 탄압 대상이 되어

피지 못한 꽃이 되고 말았던 분이시죠.

 

그러나 그 정신은 보이지 않는 지하에서 더 튼튼한 거름이 되어 훗날 갑오농민전쟁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의 불씨가 되기도 했지요.

 

용담에서 난 최제우는 장년이 되어 제세안민(濟世安民)의 도(道)를 찾고자 10여 년간 전국을 순회하다가

가산만 탕진하고 뜻을 이루지 못하자, 착잡한 심경으로 다시 용담정으로 돌아와 각도에 전념하였다고 하네요.

그러던 중 1860년 4월 5일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한울님의 계시를 받아 무극대도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는 용담가를 지어 이 득도의 과정과 내용을 서술하였는데,

용담가라는 가사의 명칭은 용담정의 이름을 딴 것이겠네요.

그리고 포덕을 행한 곳곳에서 신도들이 용담정으로 모여들어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수 만의 신도가 모였다네요.

 

그러나 나라에서는 이를 ‘이단지도(異端之道)’라 하여 ‘좌도난정(左道難正)’이라는 죄명으로 그를 참형에 처했다네요.

그 뒤 제자들이 그의 유해를 거두어 구미산 기슭에 안장하였으나 역적의 연고지로 지명된 이곳은

상당기간 황폐하게 방치되었다.

 

그러던 중 1968년 4월 현지에 있는 교인들의 성금으로 정화되기 시작한 이곳을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직접 관할하게 되었고, 1974년 구미산 일대가 경주국립공원권에 편입됨에 따라

본격적인 성역화운동이 전개되었다고 합니다.

 

1975년 2월 천도교는 구미용담성역화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거교적인 사업으로

용담정, 포덕문, 용담정사, 성화문 등을 건립하여 성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네요.

이에 따라 천도교에서는 가정리를 중심으로 한 일대에서 천도교의 지상천국을 의미하는

궁을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용담정(龍潭亭)에 왔는데 용도, 연못도 정자마저 볼 수 없었습니다.

역시 佳人은 깨달음이 부족한 우매한 민초인가 봅니다.

 

용담정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