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아름다운 마을, 체스키 크룸로프

2021. 11. 24. 04:05독일·오스트리아 2018/체스키크룸로프

체스키 크룸로프를 한 장의 사진으로 딱 나타낼 수 있는 사진은 어떤 사진일까요?
바로 위에 보이는 사진이 아닐까요?

블타바 강이 빨간 지붕을 한 마을을 휘감아 돌아나가고 한쪽의 돌산 위에는 아주 오래된 성이 보이는 사진 말입니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그런 월등한 풍경이 아닌가요?

 

체스키 크룸로프는 바로 주변의 이런 아름다운 자연과 아주 잘 어울리는 곳입니다.

마치 우리가 꿈꾸었던 동화 속의 마을처럼 생각되기도 하잖아요.

여행자를 불러 모으는 조건이 충분한 그런 곳으로 여겨집니다.

 

이 사진을 찍으려면 고성을 지나 망토 다리라는 곳을 건너 전망대에 서서 바라보면 됩니다.

이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이곳 체스키 크룸로프에서는 몇 곳 있습니다.

굳이 어느 곳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체스키 크룸로프는 아무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예쁜 곳입니다.

 

위의 사진에 보이는 망토 다리 위도 좋고, 고성을 통과하다 작은 테라스에서 바라봐도 좋습니다.

그러나 망토 다리를 지나 전망대에 오르면 가장 아름다운 체스키 크룸로프의 참모습을 볼 수 있더라고요.

바로 그곳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이 가장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뒤로 보이는 위의 사진처럼 자메스키 정원 제일 끝에 보이는 모서리에서도 볼 수 있지만,

나무로 약간 가리기도 하더라고요.

이곳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장소라 여행자도 없는 곳입니다.

 

뷰 포인트라고 하는 이곳은 단체여행객이 많이 찾는 유명 관광지라 그들이 모여들 시각이 되면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다툼도 일어나는 곳이죠.

그러나 자메스키 정원으로 올라가면 그곳은 여행자도 별로 없어 조용하게 풍경을 감상하며

한가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랍니다.

 

보헤미아 지방에서는 프라하성 빼고는 여기가 가장 큰 성으로 알려졌다네요.

물론, 이곳 말고도 또 고성이 있기는 하지요.

여기는 크게 성과 정원으로 나뉘고 그 사이로 망토 다리라고 부르는 다리로 연결되어있답니다.

 

이 고성은 제일 처음 건설한 주인인 비트코비치(Vitkovici) 가문은 영주가 되었으나 자식이 없어

자기 대에서 끝났고 로젬베르크 가문에 넘겨주었다 합니다.

자식이 없어 대가 끊기니 이런 아름다운 고성까지도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다니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곳 체스키크룸로프는 지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지요?

그 이유로는 남쪽의 잘츠부르크에서 생산된 소금을 북쪽의 프라하로 이송하는 길목이기에 중간 길목에 자리 잡고

이들을 노리는 도둑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소금이란 아주 중요한 교역품이었잖아요.

 

이에 착안한 비티고넨 가문은 처음 성을 지을 때 건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소금을 비롯한 상인의 안전을

책임져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통행세를 받아 이 성을 지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통행세를 걷었으면

이런 규모의 성을 지을 수 있을까요?

서로 윈윈 하는 기분이었겠네요.

 

지금도 성안으로 들어가면 곰이 사는 해자 못 미쳐 성 타워가 있는 제1 광장에 마구간과 소금 창고가 있답니다.

그곳 마구간이 소금 상인이 말을 보관했던 곳이고 소금 창고 안에는 싣고 온 소금을 임시로 보관했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는 상인은 안전을 담보로 통행세를 내고 보호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소금 상인으로부터 보호세를 걷어 체스키 크룸로프 성 건축도 하고 이 지역을 다스렸을 겁니다.

마을은 마을대로 이들이 머물며 쓰는 돈으로 언제나 북적거렸을 것이고요.

예전에는 그렇게 살았지만, 지금은 이 마을이 예쁘다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몰려온답니다.

소금 상인이 관광객으로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몇 년 전에 들렀을 때는 우리나라 단체관광객이 많은 편이었지만,

지금은 단체 대부분이 중국 관광객입니다.

중국도 이제는 세계 어느 곳이나 단체 여행객이 몰려다니죠.

 

이렇게 통행세를 내고 프라하로 올라간 상인은 또 그곳에서 카를 4세에 통행세를 냈다고 하지요.

그런 돈으로 토목공사를 벌려 프라하가 천지개벽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이 냈으면 그랬을까요?

결국, 그런 돈은 소금 가격뿐 아니라 다른 물가만 올리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로젬베르크 가문은 성주가 된 후 300여 년이나 이 지역을 다스렸다고 하니

타고난 준비된 영주였나 봅니다.

로젬베르크 가문의 문장은 장미잎이 다섯 장으로 되어있었답니다.

고성 구경을 하며 장미잎이 있는 문장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듯합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성주는 이 지역을 덕으로 다스리는 바람에 이곳 주민 모두 성주를 사랑했고

그의 가문 문장으로 마을을 장식하는 데 앞장섰다 하네요.

우리로 치면 일종의 공덕비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도 그런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고 하니 체스키 크룸로프 골목길을 걷다가

장미 잎 다섯 장이 있는 문장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