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도 아름다운 체스키 크룸로프

2021. 12. 1. 03:38독일·오스트리아 2018/체스키크룸로프

 

같은 곳을 보아도 시간에 따라 여행자가 받는 느낌은 다르지요.

그렇기에 체스키 크룸로프는 프라하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지만,

그냥 다녀가기에는 조금 아쉬운 곳이죠.

여기는 적어도 1박 하며 밤의 고성 모습도 보고 이른 아침의 안개 낀 마을 풍경도

즐겨야 하는 곳이지 싶습니다.

마치 수채화 한 폭을 보는 그런 기분이 들지는 않습니까?

 

 

이곳의 밤은 몽환적인 기분이 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야경 위주로 구경할까 합니다.

이제 해가 서산을 넘어가며 땅거미가 지기 시작합니다.

 

 

구시가지 안의 마을의 집들은 불을 하나둘 밝히기 시작하고요.

블타바 강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시각입니다.

게다가 고성도 불을 밝혀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이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재미있는 귀신 이야기가 있답니다.

귀신 이야기는 밤이라야 제맛이지요.

이런 중세 마을에 아주 이상한 이야기가 없다면 이 또한 재미가 없겠지요?

15세기경 이 성에는 괴팍한 성질을 지닌 영주 울리흐 2세와 그의 딸 페르흐타가 살았답니다.

 

 

영주는 자신의 재물과 권력을 더 늘리기 위해 자신의 딸을 모라비아 영주인

요한 폰 리히테슈타인과 정략결혼을 추진했답니다.

뭐 여기까지는 아주 평범하고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모라비아 영주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우리말에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지요.

원래 아름다운 여인은 늘 호사가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미운 사람이 그런 일에 휘말리면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지요.

대체로 미인의 상대역은 권력가나 아주 돈이 많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잘생기거나 젊거나 하면 또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끼리 잘먹고 잘 살았을 테니까요.

 

 

결국, 딸은 아비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아버지를 원망하며 늙은 사내에게 시집을

갔다는데 그런데 그녀에게는 부모 몰래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답니다.

시집을 간 후 매일 밤을 사랑하는 연인을 그리워하며 아버지를 원망했답니다.

사랑도 없이 늙은 사내와 산다는 게 젊은 여인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도 나이가 들며 죽음을 앞두고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신의 욕심 때문에 불행한 시집살이를 하는 딸에게 사과했지만...

딸은 그동안 억울하고 불행했던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그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답니다.

 

 

아비 입장에서 사과했지만, 그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성질 고약한 아비는 딸에게

저주를 퍼붓고 죽었답니다.

죽어가는 마당에도 어찌 이런 사람이 있나 모르겠습니다.

아비도 또 그 딸도 말입니다.

아마도 막장 부녀지간이었을까요?

 

 

그 후 세월이 지나 딸도 나이가 들어가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도 마감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을 때 아비가 자신에게 퍼부은 저주도 생각나고

또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연인과의 행복했던 그때도 생각나고...
그래서 죽은 후 그녀의 영혼은 태어나고 자랐던 체스키 크룸로프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혼백이 지금도 이 마을을 돌아다니다 특별한 날이 되면 사람들 앞에 어김없이

나타난다는데 그게 비가 오는 날일지 어두운 밤이나 안개가 잔뜩 낀 이른 아침이든지...

헉! 그러면 우리가 지금 그런 조건인데?

 

 

그녀의 귀신이 나타날 때 꼭 장갑을 끼고 나타난다고 합니다.

흰 장갑을 끼고 나타난 그녀를 본 사람은 행운이 따르고

검은 장갑을 낀 모습으로 나타날 때 본 사람은 불행이 온다고요.

 

 

아마도 그녀는 사랑했던 그 사내와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며 나타날 때는

흰 장갑을 끼고 나타났을 것이고 저주를 퍼붓고 죽은 아비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타날 때는 검은 장갑을 끼지 않았을까요?

그럼 두 가지 모두 생각날 때는 장갑을 짝짝이로 끼고 나타날까요?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촌스럽죠?

우리가 어린 시절 자주 들었던 빨간 구슬, 파란 구슬과도 같은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아닌가요?

세상 어디나 이렇게 촌스러운 이야기가 있나 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가면 자꾸 사람들의 장갑 낀 손을 쳐다보게 됩니다.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 때문에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는 거죠.

나 원 참!!!

 

 

이런 곳은 그냥 하루 만에 둘러보고 가기에는 조금 아쉬운 곳입니다.

적어도 하루는 자면서 불을 밝힌 중세의 밤 모습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이른 아침 안개 낀 고성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물며 주변 시골길도 산책하며 여유로운 여행을 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이 즐겁고 마음이 편안한 곳.

그냥 하루 만에 돌아간다면 마치 꿈을 꾼 듯 그리 하지 않을까요?

아쉬움만 남고 그리움만 커집니다.

사실, 우리 삶이 열린 창문으로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흘낏 쳐다보는 짧은 시간이라 했잖아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