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라티 수도원의 아카데미와 성 니콜라스 성당

2020. 4. 8. 06:00조지아 2019/쿠타이시

겔라티 수도원은 새로운 아테네라고 부르기도 하고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중세 시대의 조지아에서 이곳은 문화와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수도원이 생기게 된 것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겔라티 수도원 단지 안에는 성 니콜라스 성당과 성 조지 성당,

그리고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는데 두 개는 이미 보았습니다.

오늘은 제일 마지막으로 제일 작은 규모의 성당인 성 니콜라스 성당을 구경합니다.

바로 위의 사진의 앞쪽에 보이는 건물로 1층은 회랑으로 된 곳입니다.

 

2층 성당으로 올라가는 곳은 반대편 외부 계단을 통해서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특이한 모습으로 생각되네요.

성 니콜라스 성당으로 오르는 계단이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를 오르는 계단처럼 보이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말고...

 

홍교로 생각되는 무지개 다리처럼 두 개의 크고 작은 아치가 있고...

그 아치 위로 계단을 걸쳐 놓은 듯한 모습에서 연상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자랑인

불국사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佳人의 엉뚱한 상상일까요?

 

위치는 가장 큰 성당인 성모 마리아 성당 서쪽에 보이는 2층 규모의 성당이 바로

성 니콜라스 성당으로 이렇게 세 개의 성당이 한 수도원 단지 안에 있습니다.

제일 아래층에는 특이하게도 위의 사진처럼 회랑으로 되어있고 예배당은 2층에 있네요.

 

2층에 올라보니 성당 규모는 무척 작아 마치 개인을 위한 예배당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동방정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예수의 모습을 그리는 그림 기법은 위의 사진처럼 왼손은 정의 또는

공의의 손으로 거의 성경책을 든 모습이고 오른손은 긍휼과 축복의 손으로 엄지와 약지가 만나

원을 그리며 이는 인성과 신성의 만남을 의미하며 무한대를 상징하며 나머지

세 개의 펴진 손가락은 삼위일체를 의미한다지요.

 

최후의 만찬을 그린 것이겠지요?

오른쪽에 세 번째 앉은 사도는 쟁반까지 손이 닿지 않아 안쓰럽게 보입니다.

식탐이 있었던 사도인가 다른 사도 모두는 머리 뒤로 후광을 그렸는데 야박하게도 빼버렸습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데 너무 차린 게 없어 단식투쟁하듯 모두 시무룩한 표정입니다.

 

역시 우리는 지금 조지아를 여행 중임을 인식시켜주는 그림입니다.

성 조지와 성녀 니노의 모습이 이곳에도 어김없이 보입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서쪽 제일 끝에 있는 긴 건물이 보이네요.

이 건물은 외양은 별로 볼 것도 없지만, 조지아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바로 교육기관이었던

아카데미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이 지어질 시기에는 문맹자도 많았을 것이고 글자를 아는 사람은

귀족계급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다비드 4세는 내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가 아니라

이곳에 교육기관을 설립했을 겁니다.

그가 재임했을 때부터 조지아의 황금기라고 하지요.

황금기라는 것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바로 이런 왕이 있어 왕립학교를 설립할 정도로 열의가 있고 능력이 있어야

호시절이 오는 게 아니겠어요?

실사구시의 능력도 없으면서 정치적인 술수로 왕의 자리에 오른다고 다 왕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요즈음 정치인은 요설로 무장해 여린 백성의 눈과 귀를 현혹시켜 권력을 잡지만...

 

아카데미라고 부르는 건축물 내부는 위의 사진처럼 직사각형으로 생긴 휑하니 비어있는

공간뿐으로 보여 줄 것도 없고 보여주기도 싫었나 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자리에 모인 꿈동이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외치며 시작했지 싶습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아카데미라고 부르는 학교가 수도원 안에 함께 세워져 있는 곳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종교시설 안에 이런 교육 시설이 함께 있는 곳은 그리 흔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우즈베키스탄을 지나오며 무슬림의 교육기관인 마드라사가

모스크 안에 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요.

 

이 당시 이곳에서 교육 시킨 금은세공 기술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는 왕이 젊은이의 미래를 교육을 통해 더 발전시키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아카데미에서는 많은 과학자, 신학자와 철학자를 배출했으며 이들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으로

조지아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던 인물이 분명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시설을 만들고 운영했던 왕은 칭찬받고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