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은 곳, 사마르칸트네요.

2019. 11. 25. 09:00우즈베키스탄 2019/사마르칸트

사마르칸트는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은 곳입니다.

어느 방향에서 어떤 시간에 바라봐도 좋습니다.

아침이면 아침대로 좋고, 밤이면 또 불을 밝혀 야경이 아주 근사합니다.

 

비비하눔 사원 건너편에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비비하눔과 티무르의 어머니가 묻힌 영묘

(Bibi-Khanym Mausoleum)가 있습니다.

원래 이 자리는 신학교가 있었는데 신학교는 빈터로만 남고 영묘만 외롭게 빈터를 지키고

있으며 이는 공사가 완공된 후 앞에 있던 비비하눔 영묘 겸 신학교가

이곳 비비하눔 사원보다 높았다고 하네요.

 

위의 사진에는 영묘만 보이고 신학교 터는 주변에 그냥 공터로만 남아있습니다.

이를 본 티무르는 크게 화를 내며 어찌 신학교가 모스크보다 높을 수 있느냐고 부수고 다시 지으라고

했으나 이 공사를 맡았던 건축가는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에

한 가지 제안을 했답니다.

 

일단, 앞에 있는 영묘와 신학교 건물은 그대로 두고 작다고 투정 부리는 비비하눔 모스크의

입구 포탈문을 증축하여 더 높게 하자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아울러 옆에 있는 미나렛도 더 높이게 되면 앞에 있는 신학교 건물을

부수지 않아도 된다고 말입니다.

 

위의 사진을 통해 보면 정말 뒤에 있는 모스크보다 포탈문의 파사드가 더 크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건축가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바람에 신학교 건물은 살아남았다네요.

그러나 지금은 영묘만 남고 신학교는 사라지고 말았지만요.

전형적인 조삼모사의 이야기가 아닌가요?

 

이번에는 멀리서 찍은 사진입니다.

왼쪽이 파사드 부분이고 오른쪽이 모스크 본관 건물입니다.

이런 일 때문에 비비하눔 모스크는 위의 사진에 보듯이 포탈문만 커다란 우스꽝스러운

기형적인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네요.

미나렛도 50m로 증축하는 바람에 일부 부서지고 지금의 미나렛은 30m만 남게 되었답니다.

 

우리가 즐겨 읽었던 삼국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요.

조조가 업성에 삼대를 짓고 첫날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들어가며

정원의 문에다가 活이라는 글자를 썼지요.

그곳에 모여있던 많은 신하는 조조가 썼다는 활이라는 글자에 대해 의미를 몰랐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양수만이 그 의미를 이해하고 문의 크기를 줄이라고 했다네요.

門 위에 活이라는 글자를 썼으니 넓고 클 䦢자로 해석해야 하기에 문이 쓸데없이

크다는 의미기에 크기를 줄여야 한다는 의미죠.

만약, 여기에 조조가 왔다면 우수꽝스럽고 언발란스한 저 출입문에다가 글을

쓰기보다는 먼저 도끼로 부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비하눔 모스크 옆으로 대단히 큰 사압 바자르(Siab Bazaar)라고 재래 시장이 있습니다.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기에 시간이 있으면 잠시 돌아보아도 좋습니다.

또 시장에서 바라보는 비비하눔의 모습도 좋습니다.

 

이 도시의 역사는 기원전 8세기경 이곳을 지배했던 아프로시압(Afrosiyob)이라는

도시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아프로시압은 페르시아어로 아프로라는 말은 위라는 의미고

시는 검다는 의미라 합니다.

 

그리고 압은 물이나 강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주거 터가 검은 강 위에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아프로시압 박물관 근처에 Afrasiyab Settlement라고 그들이 살았던 주거지 터가

발굴되어 보존되고 있네요.

이미 당시에 도시는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도로는 박석으로 깔아 포장하여

사용했다고 하며 기원전 8세기에 이미 이런 시설을 갖춘 도시라면

세계에서 가장 앞선 문명을 지닌 곳이라고 보입니다.

 

Chorsu Trading Dome이라고 부르는 건물입니다.

우리 말 철수처럼 들리는 초르수(Chorsu)라는 곳은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길

어느 곳에나 있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그게 바자르같은 재래시장일수도 있고 그냥 작은 돔처럼 생긴 바자르일 수도 있고요.

그러니 사방이라는 네 방향의 길이 만나는 지점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예전에 카라반이 낙타를 끌고 위의 사진에 보이는 타슈켄트 길을 따라 사마르칸트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들리는 곳이 초르수였기에 초르수는 대체로 낙타가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이 높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카라반이 낙타를 끌고 들어와 싣고 온 물건을 사고팔며

또 물물교환도 했던 장소라네요.

 

또 사용하는 화폐가 도시마다 달라 환전소 역할도 했던 곳이고요.

그랬기에 카라반은 우선 이곳부터 들렀을 것이고 필요한 환전과 거래를 한 후

숙소를 찾아 쉬었을 겁니다.

이곳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거점 도시라

모두 여섯 방향에서 드나들었나 봅니다.

 

위치는 레기스탄 입구에 있어 대상들의 교역 장소로 사용된 곳이라네요.

(Registan - Anсient trading center)

지금 이곳 초르수는 갤러리로 사용 중이더라고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번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며 느낀 점입니다.

이들은 외부에서 찾아온 우리 같은 이방인에 대해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사진 등을 찍자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외국인이 다가와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피해버리는데...

이는 아마도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였기에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많은 외국인이 찾아왔기에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또 이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외국인이 머물며 남기고 가는 재화나 숙박비나 음식값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을 듯합니다.

그러니 손님에 대한 예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해 있다고 생각되네요.

그랬기에 이들의 문화는 우리와는 달리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없지 싶습니다.

 

손님은 아버지보다 더 높다. (Mehmon atadan ulug: 메흐몬 아타단 울루그)

우즈베키스탄에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라고 합니다.

이러니 외국인에게 대하는 태도가 어떨지 짐작 가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