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시압 박물관(Afrasiyab Museum)에서 보았던 고구려 사신도

2019. 11. 26. 09:00우즈베키스탄 2019/사마르칸트

오늘의 첫 사진은 다섯 명의 사내로 보이는 벽화가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들의 차림새에 따라 왼쪽의 세 명과 오른쪽의 두 명으로 각각 출신국이 나누어진다고 합니다.

이프로시압 박물관(Afrasiyab Museum)에서 본 사신도를 그렸던 벽화를 찍은 사진입니다.

 

아프로시압 박물관(Afrosiyab Museum)이라고 사마르칸트에 있어 찾아왔습니다.

이 박물관은 우리나라 경상북도에서 지원해 지은 박물관이라고 합니다.

박물관의 위치는 아프로시압(또는 아프라시욥) 고대도시 주거유적지 부근이라고 하네요.

 

원래 이곳 박물관은 입장료가 있다는데 우리가 찾았던 날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대통령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방문 중이라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이 박물관에 우리나라 고구려 사신으로 보이는

사신도가 있다고 하여 찾았습니다.

 

위의 두 장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사신도가 그려진 벽(위)과 그에 대한 설명(아래)입니다.

간단하게 알아보기 쉽게 그려놓았지만,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실제 모습은 알아보기가 어렵더라고요.

이들이 제일 위에 설명으로 그려놓은 사마르칸트 왕의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네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나라 왕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나라와 연관이 있는

사신도 부분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위의 사진처럼 우리 고구려 사신의 모습만을 확대해 다시 보겠습니다.

이 모습이 어찌 고구려 사신이냐고 따지신다면?

 

위의 사진 두 장 중 위의 사진은 현장 벽화를 찍은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벽화에 대해

알기 쉽도록 설명과 그림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모자에 새의 깃털을 꼽은 조우관을 쓰고 칼을 찬 모습의 두 남자가 고구려 사신을 모시고 온

경호원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고구려 사신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이 그림 상단에 보이는 앉은 모습의 사내가

Varkhuman이라고 추정되는 인물이라고 하며 그는 우즈베키스탄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650년~670년 사이에 이곳 사마르칸트를 지배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그가 재임했던 시기가 고구려가 패망(668년)하기 전의 시기이기 때문에

고구려 연개소문이 보냈던 사신이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는 모자에 깃털을 꽂아 쓰는 조우관이 유행했기에

꼭 고구려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고구려 벽화에 조우관이 자주 보였고 그래도 지리적인 것을

고려하면 두 개의 깃털로 보아 고구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겠지요.

또 조우관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방 유라시아 기마민족에도 널리 사용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허리에 차고 있는 칼의 손잡이가 둥근 형태로 고구려 칼의 특징인

환두대도라는 칼이기에 고구려 사신으로 확실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서로 교류가 있었다는 의미로 두루 여러 가지로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멀고도 가까운 이웃으로 생각되며 박물관에는 벽화 말고도 아프로시압 주거 터에서 발굴한

위의 사진에 보이는 항아리와 곡식 등 여러 가지를 함께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프로시압 박물관의 벽화는 1965년 이 근처에서 발굴된 7세기경

소그드 왕궁의 별궁 터로 추정되는 벽에 그려진 것으로 각국에서 찾아온 사신의 모습을

채색화로 그려진 것을 떼어내 이곳 박물관에 그대로 복원해 옮겨놓은 것입니다.

완벽한 상태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많이 훼손되어 안타깝습니다.

 

위의 벽화는 수렵도로 보입니다.

말을 탄 사내가 창을 들어 맹수를 사냥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림의 설명으로는 중국인의 표범 사냥 모습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이곳을 찾아 온 이유는 1.500여 년도 지난시기에 이미 우리나라와

이곳 우즈베키스탄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거리상으로도 엄청난 먼 곳이고...

 

박물관 전시물 중 특이한 것이 있어 올려봅니다.

사람의 인골을 토기로 만든 함에 넣어 매장했나 봅니다.

당시 이 지역의 매장풍습이지 싶습니다.

채색에 예쁜 무늬까지 새겨넣어 만든 토기 함이 이채롭습니다.

 

처음 만들 때는 대단히 화려하게 채색을 했을 듯합니다.

사진 몇 장 더 보고 오늘 이야기를 끝냅니다.

 

오늘에도 우리 네 사람은 걸어 다니며 구경하지만, 함께 온 일행 중 부부 팀은

아침부터 따로 택시를 타고 다니네요.

아마도 우리와 함께 걸어 다니는 일이 힘들고 불편했나 봅니다.

같이 출발해 여행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부담 없이 상대방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만의 여행을 즐기는 것이 서로를 간섭하거나 간섭받지 않아서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여행 계획을 한 것이 아니기에 굳이 처음 여행을 준비했던

佳人의 계획대로 함께 움직일 필요는 당연히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서로 부담을 갖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만 출발 전 예약해 둔 것이기에

함께 움직이고 모든 육로 이동은 예약하지 않았기에 따로 다니는 게 서로 편리하지 싶은데...

 

벽화 속에는 수렵하는 모습이 생생히 보이고요.

바로 위의 사진은 귀부인으로 보이는 무리가 악사를 대동하고 배를 타고

뱃놀이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배 아래 오른쪽에 보이는 황새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자유를 상징하는 길조라고 하네요.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오후에 걸어 다니며 구경 중인 우리에게 따로 택시로 다니던 부부가 전화로 자기는

더 구경할 곳이 있다고 자기 부인이 피곤하다고 佳人에게 자기가 있는 곳인

비비하눔 모스크 앞으로 와서 자기 부인을 숙소에 데려다주라고 하네요.

처음에 이 전화를 받는 순간 무슨 말인가 이해를 하지 못해 한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우리도 아직 더 구경할 곳이 있고 우리 네 사람이 있는 위치가 위의 지도에서 보듯이

그 사람이 있는 곳인 비비하눔보다 숙소에서 훨씬 더 멀고 또 같이 움직이고 있는

여자 세 사람은 길도 모르는데 나만 혼자 빠져나오기 곤란하다고 거절했더니만,

잠시 후 다시 전화로 화를 내며 왜 빨리 안 오고 뭐하냐고 언성을 높이더라고요.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요?

 

위의 지도를 보면 그 부부가 있다는 곳은 지도 제일 아래 숙소에서 10분 거리인

800여m 떨어진 비비하눔 앞이었고 우리가 있던 박물관은 지도 제일 위에 보이는

아프로시압 박물관으로 숙소에서 거의 한 시간 거리인 3.5km 정도 떨어진

가장 먼곳에 있었는데...

10분만 걸어가면 숙소에 도착할 텐데 1시간 이상을 걸어와야 할 사람에게

이런 무례한 부탁을 하다니...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더군요.

 

기분이 상해 여기는 더 먼 곳이기에 갈 수 없으니 숙소가 멀지 않으니 직접 숙소에

모셔다 드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더니 이번에는 카톡으로 어디냐고 묻기에

그냥 답도 하지 않고 무시해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저녁에 숙소에서 만나니 우리를 향해 험담을 하기에

앞으로는 따로 다니자고 했습니다.

여행에서 이런 동행이 있다면 정말 황당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