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 공화국 광장

2019. 7. 1. 09:00발칸반도·모스크바 2018/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공화국 광장(Трг републике)에 위의 사진에 보이는

청동 기마상으로 왕자 미하일로(The Monument to Prince Mihailo)의 청동상입니다.

1882년에 세웠다니 제법 오래된 조형물입니다.

 

그가 이처럼 베오그라드에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400년이 넘는 기간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노예 생활을 하던 세르비아를 해방했기 때문은 아닌지요?

그는 말을 타고 손을 뻗어 검지로 오스만 제국의 파샤에게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는 듯...

 

세상의 역사는 침략과 광복의 연속인가 봅니다.

민족이 다른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은 이들에게는 필연이지 싶습니다.

 

지금은 이 광장이 만남의 장소이고 늘 인파로 넘치는 곳이라네요.

주변에 국립박물관도 보이고요.

 

주변에 많은 카페가 있고 분수도 보입니다.

먹는 물 시설도 만들어 두었네요.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핫한 장소 중 또 다른 곳인 칼레메그단 입구에는

쥐라기 파크를 만들어 어린이도 좋아할 그런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공룡이 무척 친근한 동물이죠?

 

특히 칼레메그단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인 스탐볼 문(Iner Stambol Gate)으로 들어가는

입구 양쪽에는 군사박물관을 꾸며두었습니다.

무료로 누구나 들어가 구경할 수 있네요.

 

지금은 유물처럼 보이는 재래식 무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도 기름칠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고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것은 메흐메드 파샤 분수(Mehmed Pasha Fountain)라고 하네요.
1576년 만든 베오그라드 최초의 공공 분수입니다.

그러니 주민을 위해 만든 분수라는 말이네요.

 

베오그라드는 지리적인 위치가 유럽에서 중동 아시아로 나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으로 주변 세력으로부터 많은 왕래가 있었고 또 이런 전략적인 가치 때문에

이 나라에서만 115번의 전쟁이 벌어졌고 44번이나 도시가 파괴될 정도로 시련이 많았다고 합니다.

문화가 다른 두 지역을 잇는 지점은 언제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겠지요?

 

그러나 티토가 유고 연방 안으로 주변의 여러 나라를 끌어들임으로 한때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틈바구니에서 제3의 세력으로 존재하기도 했다고 하지요.

이 시기가 아마도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시기로 보입니다.

그러나 티토 사망 후 모든 나라가 각각 독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쟁이 벌어지고...

 

종교가 달랐기에, 민족이 달랐기에 이들은 원래 하나가 되기 어려운 관계였지 싶습니다.

다른 유럽의 도시나 동유럽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는 곳입니다.

 

빛바랜 듯하며 퇴색되기도 한 회색의 도시 모습은 하얀 도시라는 의미의 베오그라드와는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는 사회주의 터널을 빠져나오며 한동안 세월이 멈춘 듯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비단 세르비아만이 아니겠지요?

 

베오그라드의 모습은 칙칙하고 을씨년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누구는 오히려 이런 모습이 친근하고 더 정감이 든다는 여행자도 많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은 도시가 다른 풍경으로 보이는 게 아닐까요?

 

그래요.

같은 곳일지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정반대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곳...

바로 베오그라드가 아닐까요?

 

그러나 신도시의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더라고요.

화려하고 현대적이고...

이래서 베오그라드는 두 얼굴을 가진 곳이라고 하나 봅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얼굴의 베오그라드.

하얀 도시라는 이곳은 두 얼굴의 도시임이 분명합니다.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늘 주변의 세력과 갈등을 겪었고,

그 갈등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잔인한 사건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