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도시 베오그라드에는 아직도 그때의 상처가...

2019. 6. 27. 09:00발칸반도·모스크바 2018/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시내를 걷다가 보았던 모습입니다.

마치 폭격을 당한 듯한 모습이 건물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왜 예전의 흉물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었을까요?

 

도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이런 모습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전쟁이 멈추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이런 모습은 인간이 만든 역사의 아픈 상처가 아니겠어요?

 

베오그라드라는 말의 의미는 9세기에 불가리아인들이 전략적 요충지인 이 도시를

다시 세우며 하얀 도시라는 의미인 벨그라데(Belgrade)를 사용함으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내를 다니다 보니 하얀 도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우중충한 회색 도시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건물 자체는 중세풍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몄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이지는 않습니까?

 

지금은 작은 도시로 전락했지만, 유고 연방으로 있을 때는

대단히 큰 나라의 수도 역할을 담당했지 싶네요.

유고 연방이 무너지고 말았지만, 지금도 세르비아의 수도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네요.

 

그때까지는 서방세계와 동방 세계의 교차점으로 당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누어진

세계에서 공산권에서 출발한 티토는 티토이즘을 내세워 다민족 여러 나라를 연합하여

 반소, 비동맹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제3세력으로 발돋움 하려고도 했더랬지요.

 

지리적인 위치도 동서양의 다리 지점이기도 하고요.

문명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와 출구 역할도 했을 것이고요.

원래 지정학적으로 반도란 그런 역할이 강한 곳이잖아요.

 

또 많은 민족이 서로 오가는 민족 간의 교류 지점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종교적인 교류가 오히려 상충하여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티토가 죽자 모든 나라는 독자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독립을 줄줄이 선언했고 이 과정에서

독립하겠다는 나라와 독립을 저지하려는 세력 사이에 많은 전쟁이 발칸반도에서 일어났으며

학살과 폭격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감으로 이 지역을 유럽의 화약고라고까지 불렀지요.

 

특히 당시 이런 전쟁의 중심에 유고연방의 대통령이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연방 잔류를

주장했던 카라지치는 무력으로 보스니아 독립을 주장하던 보스니아인을 공격함으로

수만 명을 살해했던 일은 누구나 기억하는 사건이 되었지요.

사라예보에는 그때의 흔적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에 민족주의까지 합세해

차마 인간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살상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원래 정치, 민족 그리고 종교의 3종 세트가 되면 자비란 없고 무자비한 살상만 하게 되지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모습은 벽에 남은 총탄 자국입니다.

 

그런 모습이 아직도 사라예보 시내에는 그대로 남아있더라고요.

위의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당시 유고 연방의 군사령부로 EU의 공습에 파괴되었으며

그 상처를 치유하자는 측과 그대로 보존하자는 측이 팽팽하게 대립해

아직도 그때의 모습을 그대로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금도 유고 연방에 속했던 여러 나라는 서로의 앙금이 남아있고 이들은 어떤 나라 사이에는

서로 공격하였지만, 공격해 피해 준 것은 감추고 피해 본 것만 내세워 그때를 잊지 말자는

의미의 기념물을 만들고 박물관을 꾸며놓은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이들은 일부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지요.

또 피해지이면서 동시에 일부는 가해자이기도 하고요.

발칸반도에 있는 나라는 어느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서로의 위치가

뒤바뀌기도 하는 그런 곳이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