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금산 봉수대

2017. 12. 23. 09:00금수강산 대한민국/경상남도

예전 통신시설이 없었을 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세운 것이 바로 봉수대지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횃불을 이용했다고 하여 봉(烽)이라는 단어와 연기라는 의미인 수(燧)라는 단어가 모여 봉수대라고 부른다 합니다.

 

이곳이 그때 불을 피우거나 연기를 올릴 때 사용했던 곳이네요.

그 옛날에 나라의 변경에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빨리 도성으로 전달하려는 방법으로

봉수대만큼 빠르고 쉬운 것은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제도가 기록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2~3세기경인 고려 시대부터라고 하니 무척 오래되었네요.

그러나 기록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 실제로는 훨씬 이전인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게 정설이라 합니다.

그랬던 것이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 것은 왜구의 출몰이 극심했던 고려와 조선 시대라네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산봉우리에 설치했다고 하며 보통 때는 한 번 올리고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두 번을 올리고

적이 해안에 접근하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일어나면 네 번 올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을 올릴 경우는 적이 우리나라 땅에 상륙하면 올린다고 하네요.

 

이곳 남해 금산의 봉수대는 고려 의종 때 만든 것이라 하니 무척 오래된 것으로

조선 시대에서도 계속 보수하며 사용했다 합니다.

 

이 봉수대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봉수로 다섯 군데 중 하나로 부산 동래로부터 이어지는

제2 봉수로에 있는 곳 중 하나라고 합니다.

 

지리적으로 최남단에 속하는 봉수대라고 봐야 하겠네요.

이곳을 지나 사천과 진주를 통하여 서울로 전달되었다고 합니다.